15. 회의 후 드는 회의감
나도 예전엔 열심히 일한 것 같은데 이젠 모르겠어
회의 종료 후 KTX에 몸을 싣는다. 혼자 있고 싶어요 모드였다.
회의 대비 준비를 더 철저히 했어야 했는데, 분통터지고 너무 갑갑하고 뭔가 끌려다닌 기분을 감출수가 없다.
내가 혹시 회의에서 벼멸구 같은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이미 생긴 상처에 소금을 붓도 뜨건 물을 붓고 하는 작업을 기차 안에서 하고 또 한다.
‘나는 왜 발전이 없을까’
‘모든 걸 잘 할 수 없지’
‘결혼과 출산 후에 일에 100% 매진할 수 없는 건 애 탓인가 남편탓인가 내 탓인가’
‘그래 일이 뭐 대수냐. 잊자’
‘그래도 거기서 그런 말을 했어서는 안됐지.’
‘알맹이가 없는 회의 아니었을까’
‘다음 과정은 또 어떻게 진행하지’
이런 생각만 하다가 벌써 오송역에 다 왔다. 왠지 밥값도 못하는 쓰레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울적해졌다. 좀 뻔뻔한 썅년 기질이 많았으면 세상 살기 진짜 좋았을텐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성격인지라 혼자 고통받는다.
대다수의 여자들이 그렇지 않나? 소심한건지 현명한건지, 쉽사리 타깃이 되는 행동이나 발언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회의에 소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
결론은 내 준비가 미흡했다로 결론이 난다.공부하고 적극적으로 뛰어다녔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왠지 앞으로도 쭉 이런 무기력한 패턴이 아닐까 겁이 났다.
회사 선배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승진을 할수록 두려워져. 나를 찾는 과도 없어지는 것 같고. 일도 과거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머리도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아. 가끔이 겁이 나서 좀 쉬고 싶은데, 아이는 이제 대학생이 되네“
여기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학창시절에 ‘못한다’ ‘못났다’ 소리는 평균보다 적게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평균 이상으로 잘하고 울트라 잘난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쭈구리 심리도 많이 겪는다.
그렇게 잘하는 사람들도 더 잘하기 위해서 더 달리고 있으니..
다들 알게 모르게 업무 사춘기를 겪기도 한다.
자진해서 초과근무 수당없이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렇게 사나’ 싶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런 열정이 그리울 때도 있다.
다 잊고 애챙겨야한다.
어린이집에서 챙겨온 아기를 앉히고 “엄마도 예전엔 밤새서 열심히 일했는데, 이젠 울 애기랑 9시에 자는 사람이 되었어” 무슨 마음에선지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아기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나에게 뭐라했을까
“엄마, 다 잘 할 순 없어요. 세상 모든 것에 답하려고 하면 피곤해질 뿐이에요. ”
신청곡은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근데
난 오늘 이 노래 들을 자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