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짠 Sep 02. 2019

14. 상태는 혼수상태

엄마는 이쁘면 안되냐?

출근하고 한참 일하다가 화장실에 가보니

앞머리가 개떡이 져 있었다.


아침에 바빠서 머리를 안 감고 나왔더니

모발이 이마의 기름을 착실하게 흡수하고 흐드러져 있었다.


어린이집에 내려다놓고 빠이빠이하면서

안타깝게 나를 바라보던 아기의 눈빛은 바로

가면안돼, 엄마 머리에 떡졌어”가 아니었는지.


하지만

아직 아기는 19개월..

엄마, 아빠만 무한 반복하는지라

그런 고차원적인 말을 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이다.


괜찮다. 아가야.

엄마에겐

 ‘앞머리만 착실하게 샴푸하는 능력’이 있거든.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의 개인적인 문제는 새치다.


거울에 비친 머리는 이미 할머니였다.


한달에 한번 셀프뿌리염색을 해야하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20분짜리 염색을 놓치고

이렇게 호호할머니가 되어있는지..


나로 말하자면

만7세부터 새치가 나기 시작한 새치신동인데

고2되면서 로레알, 세븐에이트, 양귀비 등

시중에 나온 새치염색제를

두루두루 사용해보고,

어느덧 새치염색 전문가로 자리잡은지 20년차였다.


그러다가 임신을 했지.


임신하고 나선

아기를 위해서 머리 염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나는 진짜.. 흰머리가 되는지라

눈물을 머금고 가발을 샀다.


배송 온 가발을 보니,

삼복더위에 도저히 쪄죽었으면 쪄죽었지

이거 썼다가는 남아있는 머리마져 다 빠질 판국이었다.


치아에 고춧가루 묻히고는 잘 돌아다녀도

그래도 아직 머리카락만은 포기할 수 없는지라


사미자의 새치커버 제품도 사보고

유성펜도 칠할까 고민하고 이리저리 시도해봤는데

답이 없더라.


이리저리 블로그에 검색해봐도

임산부 탈모, 수유 중 탈모는 있어도

임산부 새치염색에 대해선 마땅한 이야기가 없었다.


다들, 미용을 위해 흑발을 밝은 갈색을 바꾸는

부러운 얘기들뿐..


생각에 생각이 거듭되니

별것 아닌 것을 시작으로

산전 우울이 올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내가 백발할머니가 되어야 하나.

모자를 쓰고 근무해야하나.

그냥 삭발을 할까


그러다가 예전에 다니던 미용실 언니와

통화하게되었다.


“뭔 고민이냐. 헤나 염색있잖아.”


옳거니

100% 진짜 헤나를 사서 염색을 하면 된단다.

화학제품 섞여있는 것 말고.


대신,

헤나염색을 하면 파마가 잘 안되니

참고를 하라는 미용실 언니의 친절한 말씀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임신, 출산으로 해서 2년간은 파마할 생각 없으니

 잘되었다 싶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주변에 얘기하니

‘뭘 그런 걸로 우울했냐’는 말에 더 심란해졌었다.


“엄마가 꼭 예쁠 필요는 없잖아? "

"일년만 백발이면 어때? 너도 참 성격이상하다”

“니가 연예인도 아닌데 살찌고 살트고 하는거에 우울할 필요가 있냐?”


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엄마로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으로

또 생활인으로 꾸미고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내 뜻대로 잘 안된다는 것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살이 찌고 트고 겨드랑이가 시커매지고

또 누군가는 인중에 수염이 나고..


임신 출산이란,

30년간 40년간 익숙했던 내 몸과는

전혀 다른 내가 된다는 걸..


처음 겪어보는 여자 사람은 당황한다.


그런 걸 안 겪어본 사람들에게 얘기해주려면

어느 나라 언어가 가장 적합할까?


이제는

부족한 수면시간과 아이 머리카락과 옷 신경쓰느라

뒷전이 되어버린 내 상태를 보며


스스로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져본다.


“어이, 몸, 미안해. 나는 너도 참 좋아해”

매거진의 이전글 13. 엄마의 여름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