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빠와 기저귀
아들은 자라서 아빠가 되었습니다
목욕을 마친 아기는
어떻게든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자연 그대로의 몸으로 달아난다.
저 놈 잡아라!!!하고 내가 명령하면
남편이 얼른 쫓아가서 아기를 잡아오는데
울부짖으며 잡혀온 아기에게
내 손수 문명인 복장이 어떠해야하는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나면
그제야 저녁 한고비가 끝난다.
이 시간이 목욕담당 남편이 제일 후련해 하는 시간이다.
아직 뽈뽈 기어다니던 시절의 아기였을 때
남편이 아기의 기저귀를 채우다가 가만히 멈춘적이 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병실에서 환자 기저귀를 갈던때가 생각났단다.
아무말 건내지 않고 자리만 비켜주었다.
아기 성장에 맞게
새로 산 유모차를 차에 영차 접으며
남편은 또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 얘기를 한다.
이 유모차는
아버지 태우던 휠체어하고 접는 방식이 비슷해서
새로운 거지만 잘 접을 수 있었다고.
우리 아부지가
흙을 곱게 씻은 고구마와 동해안에서 사온 반건조 오징어를 택배로 보내주자
내가 아버지랑 예전에 있었던 어린시절 얘기를 재잘재잘해댔다.
조금 부러워하는 목소리로 남편이 말했다.
"나는 당신처럼 아버지하고 재미있게 논 기억이 없네"
"이제 당신 아기랑 재미있게 놀아주면 되지. 지나간 걸 아쉬워말고 현실에 충실 하시게나"
표정을 보니 장난감 뺏긴 애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러고보니 남편도 아직 애 같은 면이 있구나..
남편에게도 아직 아버지가 필요하구나...
아버지는 가고
아들은 남았다
남은 아들은
이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가는 법을
(내가 설정한 진도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어쨌거나 매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 모습을 칭찬 받고 위로 받고 응원 받고 싶어하는구나 생각하니
문득 가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