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글쎄.. 그거 산후우울증 아니고요...
이 몸은
산전 우울증도 겪었고
산후 우울증도 겪었다.(출산 후 8개월 정도까지)
그 시절
"너 산후 우울증 아니냐?"
라는 말을 들으면 더 울컥해서 막 분노가 분노가..치밀어 오르는데
눈에 뵈는게 없었다.
그 말이 너무
개인적인 책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무 유별나게 군다.. 는 늬앙스로도 느껴졌고
뭐랄까..
내 상황도 모르면서
너무 나에게만 많은 책임을 지우는 느낌이었다.
산전 우울증은
여러가지 고민과 걱정으로 가득한 색깔이었는데
내가 겪은 산후 우울증은..
호르몬만의 문제가 아니라
1. 잠을 못자고
2. 몸이 아프고
3. 분노가 치미는데
4. 도대체 도망갈데가 없는게
미치고 환장하겠는거다.
이 남편은 눈만 끔뻑이며
(뭐 저도 처음 애아빠가 됐으니 어리버리했겠지만)
도대체 너는 왜 그러냐 말하는데
그 말에 어찌그리 화가 나던지!!!!
그래도 너는
회사가서 점심은 제때 먹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사람들과 사람다운 얘기는 하잖아..
나는 갇혀서
꼴이 말이 아닌거다
손목을 어찌나 아픈지
가슴은 어찌이리 아픈지
도대체 식사다운 식사는 언제했는지..
애기가 귀여우니
모성애로 극복해보라고 얘기하는 사람, 이리 좀 와 보세요.
몇대 맞자
내가 업무 때문에 50시간을 안자고
자료 취합하고 뛰어다니고 해봤는데
상사한테 깨지고 민원인한테 욕얻어먹고
이리 저리 마음고생해봤는데
비할바가아니다.
회사에서 잠 안재우고 (아, 재우긴 재우는데 2시간 쪼금씩 잘수있는 시간을 매일 달리해서)
맨날 거래처에서 욕얻어 먹고
토요일에도 상사따라 북한산 등산가야되고
술도 못먹는데 매일 폭탄주 먹어야되고
월급은 안나오고
집에서는 월급도 안나오는 회사 뭐하러 다니냐 그러고
회사에서 다쳐도 계속 일해야하고
힘들어도 하소연할데 없고 하면
석달안에 그 회사 때려치우던가
불지르던가 하지않겠소?
육아는 그럴수가 없는거다
간신히 하루하루 거미줄같은 거 붙잡고 매달려있는
기분이었다.
5개월간은 정말 힘들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
애는 등센서때문에 몸에서 안 떨어지지
나는 잠도 못자지
하이고
둘째를 선뜻 생각못하는 이유도
'나의 생존'이 무서워서이다..
과..과연.. 내가.... 사..살아..남..을..수 있..을까?
어떻게 빠져나온 환경인데.. 다시 하라고?
친정엄마도 일을 하시니
길어야 일주일정도.. 도와주실수 있다(도와주시는게 어디냐)
일주일 이상 넘어가니
친정엄마랑 내가 싸우고
친정엄마랑 사위가 싸우고
세명이서 서로 싸우고 난리도 아니다....(그때 우린 왜 그랬을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과연 적응의 동물인지라
예전보다 적게 자도 괜찮고
아기도 환경에 적응하고
모성애라는 것도 애사심이나 애향심처럼 조금씩 생기고
(그동안 내가 투자한 시간이 격렬했던 만큼 묘한 성취감도..생기더라)
아기와 나
남편과 출산한 부인(연애때의 내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게 되어
훨씬 수월해진다.
아,
이 모든것을 초월하여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미덕은 바로,
<포기>
저는 많은 것을 포기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남편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이해를
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진즉에 깨닫고
주변사람들과 수다를 통해
남편을 간접 공격해보세요
달콤하고 스윗한 남자는
드라마에서나 존재하고(어쩌면 동백꽃 필 무렵의 황용식 경찰도 결혼하면..... 달라질지 모른다 이겁니다)
에릭남은 지구에 오직 한 사람 뿐입니다.
현실에 눈뜨세요
그리고 세상은 어차피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살아봅시다
그나저나
산후 우울증이라는 말은
그 말자체로 너무 화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막 붙인 말 아니야?
내가 겪은
정확한 표현은 육아 우울증이야!!
feat. 사피어-워프 가설 :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