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고객에 대응하는 자세
"뭐하냐?"
동생의 카톡.
"일"
"휴일에. 미쳤네. 애는 누가보고"
"애 아버지. 애를 나만 낳았나?"
그러더니 통화벨이 울린다
"너 사는 거 보니 난 그냥 결혼안하려고. 통보"
"어차피 애인도 없으면서 책임전가하시네"
"혼자 벌어 혼자 쓰고 살아야지. 아아주 펴언하게"
"나도 전에 그런 말을 했었지. 힘들어도 행...복하다"
"애기 장난감 발송했다. 월요일에 도착할거다. 로젠택배"
"고맙다...(또르르)"
나는 지금 국가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창 일이 많을 때는 진짜 사람 만날 시간과 에너지가 없어서
연애를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홀로 살아가는 분들이 주변에 많다)
그러다가 더이상
이렇게 사는 건 인간으로 예의가 아니다 싶어
그때 옆에 있던 한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애기를 낳았다.
아직까지는.. 애기를 낳은 것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고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가끔 남편이 미워도
이 남자를 못 만났으면 울 애기도 못 만났겠지 싶어
그냥 그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하여, 니가 무슨 일은 하노?
라고 물어본다면..
공무원의 범위도 워낙 넓은지라 딱히 한 줄로 설명하기 힘든데..
우리가 주로 만나고 도움 받는
주민센터와 보건소, 경찰서, 소방서에서 흔히 보는 공무원도 있지만
나는 주로 기관, 협회, 단체, 국회와
기타 정부부처, 지자체와 일을 한다는
차이가 있다.
흔히 보는 뉴스, '자료화면' 자막 아래 보이는 공무원은
점심시간도 아닌데 커피를 들고 바삐 걷거나
배가 나오거나
컴퓨터 화면을 끝도 없이 두드리는 일을 하고 있던데,
내가 이 마지막 일을 한다.
어렸을 땐, 무슨 일을 저리 하나 궁금도 했었다.
대답해주겠다.
그건 모두 '문서'로 하는 '대화'와 '설득'과 '읍소'와 '반성'등이다.
그리고 '기획'과 '판매'와 '말씀자료'와 'TF구성'과 '민원연장' 등이다.
대화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으면
그걸 또 '만들고' 있다.
그렇게 버스노편이 개선되고, 철도가 깔리고,
미세먼지 저감 대책이 나오고
보육시설이 달라지고 그런거다.
나에게 자료를 요구하시는 분들도 바쁘신지라
퇴근 후나 밤에 자료를 요구하는
메일, 카톡이 올 때도 있다.
덕분에 내 주위 대다수는
카톡 노이로제에 걸려있기도 하고
나 역시 새벽 4시에 울린 카톡을 보고 운 적도 있다.
같은 의도라도
요구하는 기관에 따라 형식도 변화무쌍한데
고객님은 늘 그렇지만 화려하지만 심플한 요구사항으로 가득하시다.
용어도 전문적인 것이 가득해서 공부를 따로 해야한다.
용역발주를 하게되면
거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들어오는데
내 비록 문과출신이지만 용어집을 펼쳐들고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자, 이렇게 설명해놓으니 뭔가 대단한 사람같네.
나는 조직의 클립 한톨, 스테플러심 한 알, A4용지 한 장
그리고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육두품이다.
용어가 익숙해질 때가 되면 보직이 이동된다.
법학과 1년, 건축학과 1년, 고고미술사학과 1년,
금융학과 1년, 아동복지학과 1년..
그러면 짜잔 전방위를 아우르는
통합형전문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늦은 밤 택시를 탔을 때
'정부청사 저것들은
왜 저리 불을 훤하게 켜두고 퇴근하냐고' 역정을 내시는
기사님을 두고
'저 조명은 사람이 움직임을 감지하는 절전형이라..
아무런 미동이 없으면 바로 소등됩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들락거린다는 뜻이에요.. '
라고 말 못하고
"에에에...그..러네요.."
라고 말하는 공무원이다.
아기가 말을 할 때 쯤 되서 "엄마는 무슨 일해?"
라고 하면 나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오늘도 생경한 용어와 업무 파악으로 머리를 싸매도
아기 키우면서 처음 접한 용어
니플, 스와들업, 어라운드위고, 진주종,
힙시트, 네뷸라이져보다
어렵고 까다로우며
도무지 고객님의 니즈를 알 수 없는 것들에
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