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하는 디자이너가 될까
17년 겨울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졸업 전시를 마친 상태였고, 쉬고 싶어서 졸업을 한 학기 유예했지만 편히 쉴 수 없었다. 겨울이 한창이던 때, 주변 환경 때문에 덩달아 조급해졌고 부담감만 커졌다. 내가 이렇게 못해서 진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자기비하까지 심해져 더욱 우울했다. 내가 정말 무엇에 특화된 디자이너인지부터 무엇에 제일 흥미를 느끼는지 조차 흐릿해졌다. 결국 나는 유예 기간 동안 전공 수업을 더 찾아 듣고, 공모전을 준비하며 무작정 포트폴리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리된 포트폴리오는 겉으로 보았을 때 있음직해 보였으나, 시장에 나오지 않은 컨셉 디자인으로 가득했던지라 나 스스로는 '이런 디자인이 세상에 통할까..? 나만 좋아하는 주제 아닐까..?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하는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첫 직장으로 스타트업이나 에이전시를 목표로 삼았다. 세상에 내 디자인을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기에, 이를 이용해 실무 경험을 빨리, 많이 쌓고 싶었다. (물론 실물 포트폴리오도 급했다.)
어느덧 19년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고 있다. 지금은 블록체인 스타트업 'Common Computer(이하 ComCom혹은 컴컴)'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게 아직도 감회가 새롭다. 아직 명함이 없다. 빨리 만들어야겠다.
덧붙여,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내 디자인 경력은 아직 새끼손톱만하지만, 한글을 떼기 전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중학생 때부터 디자이너를 꿈꿨다. 입시를 거쳐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했고,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졸업해 일을 시작했다. 음, 뭐랄까...7-8년동안 땅 속에만 있다가 겨우 나무에 올라 우렁차게 울고 있는 매미의 심정(?)이다. 오랫동안 그림만 그리다가, 드디어 디자인을 통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평생 직업이란 건 없으며, 시간이 갈수록 세상은 개인화되고 있다. 회사나 소속을 떠나서 나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할지를 수 많은 곳에서 물으며, 매체에서도 개개인의 이름과 그 사람의 컨텐츠에 더 주목한다.
나는 디자이너로 살기를 택했다.
이 직업을 오래도록 유지하려면 일단 이 직업을 사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가슴이 뛰도록 설렐 만한 동기부여가 계속되어야 한다.
난 그 출발이 주변을 항상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더 이상 없다. 그래서 난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잊고 있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예전에 길을 가다가, 엄마에게 핸드폰 그만 보고 길에 핀 꽃이 너무 예쁘니 좀 보라며 등짝을 맞은 적이 있었다. 내가 그 꽃을 못보고 지나가는 게 그렇게 아쉬우셨을까. 그 꽃은 가을마다 피는 능소화였다. 아마 자신이 느끼는 이 계절만의 기쁨을 딸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쉽게 장님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우린 항상 주변을 놓친다. 음, 만약 누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나 또한 꽃 좀 보라며 등짝을 때리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지금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주변을 듬뿍 음미할 줄 아는 사람. 디자인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건 두번째다.
그래서 내 직업에 대한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사람은 반평생 일을 해야하는데, 내 일상은 재미가 없으니 일을 하면서라도 소소한 재미를 찾아야겠다. 쓰다보니 이렇게 길어질 줄은...무튼 지금 하는 일을 재밌게 지속하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려 한다.
곧 연재할 브랜딩 콘텐츠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과정을 그대로 격주에 한 번 올리며 사람들과 공유하려 한다. (제발 좋은 결과가 탄생할 수 있길....)그리고 가끔은 아무 이야기나 늘어놓는 일기같은 글을 쓰기도 할 것 같다.글을 쓰고 기록하는 것이 일상의 좋은 자극제가 되길 기대한다.
나는 뭐하는 디자이너가 될까, 이것 저것 뭐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나는 오늘 하루나 잘 마무리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