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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ji Oct 08. 2019

Personal OKR을 고민하다 쓴 주저리

디자이너가 처음으로 '주체적인 업무'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소제목 때문에 글을 쓴다. 일을 하다가, 이 생각은 글로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어서 일기처럼 적고 있다.

지금은 스타트업의 UX/UI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일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 난 도대체 학교다닐 시절에 뭘 했나 싶다. UX 수업을 너무 흘려들어서 후회 하는 중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품이나 공간쪽 일을 꿈꿨으니...너무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문제였나. 


'주체적'이라는 말 자체가 참 포괄적이기도 하고 좋게 포장하기 좋은 말이라, 아무데나 갖다 붙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난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지"하고 착각하기 쉽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회사의 구성원이 되었을 땐 달라질 수 밖에. 이 와중에 OKR 이야기를 왜 하느냐?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4번째 만에 OKR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http://www.ciokorea.com/news/39501


지금 회사에서는 분기마다 회사의 OKR을 다함께 의논해 작성하고, 그에 따른 personal OKR을 따로 작성한다. 난 아무생각 없이 회사 OKR 중에 나한테 할당된 게 내 personal OKR이겠거니...하고 복붙을 했더랬다. 이렇게 적고 일을 하니 주어진 일만 하는 일개 사원이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일은 일이다. 시키는 거 하면 시간이 참 잘 가고, 적은대로 '완료' 체크를하면 난 이번 분기에 일을 참 열심히 했구나, 한다. 

여기서 끝날 거면 학부생때 알바나 디자인 외주를 했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사실 이렇게 산 시간이 길었던 지라 다른 생각을 못했나 싶기도 하다. 시장이 원하는 디자인을 빠르게 쳐내는 일이 나에겐 너무 흔했고, 내 주관을 섞은 디자인은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배제한 작업을 하며 일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게 디자이너로 일할 때 너무나도 당연한 상태가 되었던 것 같다. 건강하지 못하게도, 그렇게 되었다.


생각을 바꾸게 된 건, 요 근래에 만나게 된 분들의 힘이 컸다. 난 운이 좋다고 인정한다. 이전까지 다운된 상태로 일했던 경험이 컸던 지라, 난 나 자신을 더 작은 존재로 평가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 돈 주는 사람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살아서. 나이가 어려서. 경력이 없어서. 제 값을 못 받은 작업이 늘어가고, 초면부터 반말을 들으며 일을 한다던지 하는 경험이 쌓여서. 그런데 1년 새에 만난 이 분들은 날 한 명의 전문가로서, 함께 성장해 나갈 구성원으로서 대해 주셨는데, 이런 게 처음이라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이렇게 걸렸다. 그래서 OKR이 중요했다. 이건 누가 해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내가 이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체크할 수 있는 목록이 되는 것이다.


personal OKR을 작성할 땐 회사의 OKR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소화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엔 일을 대하는 관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고민한다. 해야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번 Q4 personal OKR의 main objective로는 '근거가 있는 Product를 만들 것'이라고 적어두었다. 근거가 단단해야 설득력 있는 결과물이 탄생하는 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난 그 근거를 쌓는 과정을 일로 소화해 본 경험이 부족하다. 디자인은 설득의 과정인데, 난 부연 설명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쉽고, 명료한 디자인을 하는 게 학부생 때부터 목표였다. 그래서 이번 분기엔, 최적의 디자인으로 향하는 과정인 리서치와 기획에 초점을 두는 것 부터 시작하려 한다. 


지금은 기존의 플랫폼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Q3에는 현재 서비스 중인 플랫폼에 대한 Design Sprint를 회사 구성원들과 진행했다. 그 결과 이 플랫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하나의 주제로 agree 되었다. 그 주제를 이룰만한 피처를 PM님과 함께 판단한 다음 구체적인 디자인에 들어갔다. 현재는 그 첫 번째 피처를 프로토타이핑해서 User interview까지 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래서 난 'Create foundation for Next stage'로 첫 세부 Objective를 시작했다. 이번 분기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중심으로, 이렇게 세부 objective를 쪼개고, 그 하위로 구체적인 task를 채웠다. 성격이 급한 편이라 가급적이면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것부터 우선순위를 두었다.


말하자면 아래처럼 쭉쭉 적어나가는 것인데(정말 정말 주관적인 예시이다. 내 일이기 때문에.), 모든 항목들이 이뤄지면 나의 Main Object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모든 항목들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Main O : 근거있는 Product를 만들 것
Sub O(1) : Create foundation for Next stage
              P0 유저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디자인 할 것
                    - 핵심 기능의 visual communication 정립
                    - 정립된 내용을 설계와 디자인에 적용
                        1. Prototyping (Major functions first)
                               - key screen 1
                               - key screen 2
                               - key screen 3
                        2. User Research
                               - minimum 5-6 people
                               - 인터뷰 리포트 정리
                        3.  보완한 핵심 기능에 대한 Onboarding 기획
                        ......                     


주의할 점은, 나만의 Objective를 설정한다고 해서 너무 주관적으로 파고들 게 아니라, 회사의 Mission과 함께 엮는 것이다. 구성원들과 agree된 지점들, 그러니까 플랫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정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내가 하는 작업들을 체크해보는 것이다. 난 이에 대한 피드백을 자주 받는 것 또한 OKR에 적어놓았다. Main Objective도 꼭 이번 분기에 이뤄야 하는 목표일 필요는 없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어도 된다. 그리고 분기가 끝나면 항목마다 점수를 메기고, 평균을 낸다. 평균 7점 정도 나오면 만족하는 편이다.


분기마다 적는 이 OKR은 건설적인 업무 수행에 당연히 도움이 되고, 기록이 쌓여 돌아봤을 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누가 정해주는 일이 아닌, 내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묘한 사명감이 생긴다. 최소한 내가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지 싶어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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