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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ji Dec 04. 2023

Web 3.0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

포폴은 없고 할 말만 많은 디자이너의 하소연을 들어보세요

안녕하세요! Lianji입니다.

연말이 되면 지난 분기들을 쭉 돌아보게 되죠. 내가 또 어떤 삽질을 했더라~하며 과거의 미팅노트와 피그마 파일들을 쫙 깔아놓고 보니 제법 재밌습니다. 올 해는 이런 고민을 했고 저런 디자인을 그렸구나, 우리 팀 애 많이 썼구나. 정도의 감정이 크네요. 일의 보람이 느껴지면 좋겠지만, 괴로운 일이 멀어지니 웃어 넘길 수 있는 희극 한 편이 되었습니다. 읽는 분들도 어떤 해를 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최근엔 업무에 여유가 생겨서, 제 앞날 걱정에 더 시간을 쏟아보고자 책도 읽고 리서치도 하고 있습니다. 

몇 번을 다시 읽은 책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오픈 디자인'이에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78867


오픈 디자인은 조직이나 전문가 집단, 마케팅 인력이 아닌 실제 최종 사용자가 참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오픈 디자인은 상관 없는 개인들간의 협업에 의한 공동창작이다.

오픈 디자인은 과정이자 문화로서, 사물을 만들고 사용하고 돌보는 사람들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제가 뽑은 책의 핵심 문장인데, 정말 공감하는 바입니다. 이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러한데요.

디자인 리더들이 이끄는 프로덕트들이 거듭 성공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오픈소스 문화가 바탕이 되는 커뮤니티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션과 피그마만 봐도 그래요. 압도적인 확장성을 기반으로, 커뮤니티에서는 서로가 만든 템플릿, 디자인 시스템, 플러그인이 쏟아집니다. 오픈된 디자인 소스를 사용하는 유저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필요한 에셋을 직접 만들어 쓰고 있죠. 무수한 과정들의 집합! 완성이랄 게 없이 계속 발전하는 디자인들! 작고 거대한 협업 덕에 모두의 디자인이 상향평준화를 이루는 세상이에요, 이제 전문 디자이너는 큰 그림을 디자인하는 데에 더 시간을 들일 수 있습니다. 고유한 디자인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과 공간을 개발하는 것 또한 의미가 크다고 느낍니다. 이타적이라기보다, 지극히 실용주의적인 입장에서 오픈 디자인 문화는 모두에게 이득인 것 같아요.

이렇게 디자인에 접근하는 허들이 낮아지는 시장에서, 저 같은 Web 3.0 분야에 있는 디자이너는 또 어떤 고민을 앞서서 해야할까요?



전 메타버스란 것이 인터넷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메타버스가 언급된 최근 뉴스를 찾아보는데 죄다 AR, VR 같은 기술 얘기 뿐이더군요. 물론 이를 빼놓을 수는 없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메타버스✌️라는 것을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비주얼화해주는 게 저 기술이라 그런 걸까요? 저희는 예전부터 이런 형태의 가상 공간을 향유하며 살아왔는데, 대체 뭐가 새롭다고 난리일까요?

지금 메타버스를 표방하는 많은 플랫폼들은 버츄얼 월드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가입할 때 개인정보를 넘기고, 정해진 시나리오대로만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어요, 비유하자면 계획 도시처럼요. 편하긴 합니다, 잘 닦인 도로 따라 길을 다니면 되고, 차려진 밥상을 먹기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로블록스 같은 플랫폼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목격했죠, 부동산 거래부터 아이템 생성까지 모두, 유저들이 스스로 생태계를 확장시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렇기에 매력이 있죠. 기업에서 유저로 흐르는 탑다운 방식이 아닌 생산자, 사용자, 기여자의 구분이 없는 환경이 조성 된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거에요. 이런 방식은 꼭 3D 월드일 필요도 없죠, 지금 사용하는 브런치도 이런 문법 버전으로 발전한다면 Mirror 같은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와 구독자는 역할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웹3에서 생태계 참여자로 역할이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구독하는 작가의 글을 수집하는 것을 넘어 오너가 될 수 있고, 토큰의 유동성이나 커뮤니티 활동에 기여하는 만큼 보상을 얻어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투표권을 얻어 플랫폼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가능해지구요. 이런 가치관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운영하는 데에 블록체인 기술이 가장 유용하기 때문에 같이 부상하는 것이죠!

출처: https://a16zcrypto.com/posts/article/7-essential-ingredients-of-a-metaverse/


다음 세대 인터넷을 위해 대안을 실험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 소셜미디어 쪽 뉴스를 예로 들어볼까요?대기업에 의해 시장 독과점이 되고 있는 상태에서 규제는 심해지고, 안그래도 지겨워진 유저들은 새로운 경험을 찾아서 앱을 떠납니다. 이탈하는 유저들이 늘어나니 차라리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로 합니다. G메일에서 보낸 메일을 네이버 메일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올린 컨텐츠가 다양한 소셜 미디어에 퍼지는 게 가능해지는 '페디버스'로의 편입을 시도하고 있어요. 텀블러, 미디엄, 메타 등에서는 이를 지원하거나 협력 예정이라고 합니다.(Activitypub유저들은 쓰던 서비스를 그대로 쓰면서 더 많은 컨텐츠를 향유하고 생산할 수 있게 될 거에요.

대기업이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기보다 오히려 분산에 힘을 실어주기로 선택했다는 것은, 유저들의 권위가 더 높아졌다는 의미로도 다가옵니다. 이제 광고주가 아니라 컨텐츠 자체와 그 발행 주체 개개인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계층 없는 인터넷 세상이 올 것 같습니다. 가치의 축적은 기업이 아니라, 데이터 제공자인 유저들에게 보상되는 게 자연스러울테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냐면요 

대기업 아래의 광장에서 벗어나 더 큰 바다로 나온 유저들은 스스로 섬을 만들어 살아갈 것 같습니다. 이제 네임드라는 건 의미가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몰라요. 저마다의 필요한 소스들을 직접 만들어 쓰고 공유하며 살아갈테니까요. 이렇게 되면 세상에 흩뿌려질 자신의 창작물을 지키기 위한 어떤 장치가 필요해질 겁니다. 또한 이 섬과 저 섬을 자유롭게 오가기 위한 장치도 필요해집니다.(지금의 개인정보 기반 로그인/로그아웃 처럼, Web3 위의 가입 절차가 필요하다.)  

분산형 인터넷 세상에서 어떤 활동을 인증하거나, 소유하거나, 거래될 수 있는 형태로 포장해주는 것이 NFT입니다. 그리고 그걸 담을 수 있는 것은 지갑이죠. 한마디로 여권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웹3 세상에서의 활동 기록이 고스란히 쌓일 테니까요. 이게 자연스러워진다면 NFT라는 단어의 사용이 사라지고 다른 이름들로 대체가 되겠죠?


특히나 저희 팀이 타겟하는 시장은 AI 분야입니다. 인간의 수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AI가 탄생할 거라고 믿거든요. 최근 Open AI에서 GPTs가 런칭될 예정이라는 발표가 있었죠. 개인이 만든 챗봇이나 데이터를 사고 팔 수 있게 만드는 AI버전 앱스토어를 열겠다는 계획이었는데요. 그만큼 이제는 AI를 코딩 없이 자유롭게 커스텀하고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이미 도래했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AI는 이제 사람의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AI 에이전트라는 이름 하에, 저마다의 아이덴티티가 부여된 객체가 되어 인터넷 위의 새로운 시민이 되어줄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AI 팀원들을 꾸려서 스타트업을 차리는 게 곧 가능해지겠죠?

모두가 접근 가능한 데이터, 그를 바탕으로 탄생하는 지능들. 그 지능을 창조하기 위해 창작자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데이터를 엮어낼 줄 알아야 하겠죠. 그 권리와 기여를 인정하고 응당한 보상을 주며 창작과 보상의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은, 앞으로 올 메타버스(=Web 3.0 인터넷)에서 사용될 시스템 디자인과 저작 표준을 제안하는 일이 됩니다. 

지금까지 쓴 이야기에서 제가 느낀 바를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디자인 관점에서,

디자인 영역도 오픈소스 문화가 보편화 되고 있다

디자인은 이제 디자이너의 전유물이 아니며,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다.

작업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시스템'을 디자인 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메타버스 관점에서,

버츄얼 월드 = 탑 다운 방식으로 운영되는 계획 도시

메타버스 = 바텀 업 방식 or 비계층적으로 산개된, 독립된 섬들의 바다

크립토 지갑 = 섬의 출입부터 활동 기록까지 고스란히 쌓이는 여권이자 신분증

FT, NFT = 섬에서 사용하는 화폐부터 내 창작물을 지켜주는 저작권까지 될 수 있는 수단


이에 더해 저희가 타겟하는 AI 시장을 바탕으로 한번 더 저희의 역할을 정의하자면, 

개인 또는 공동을 통해 AI가 손쉽게 창작되고 유지되는 운영 시스템을 디자인한다.

AI를 구성하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우리만의 블록체인 시스템을 디자인한다.

창작자, 기여자, 소유자 상관없이 유저들이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보상 시스템을 디자인한다.

AI가 메타버스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디자인한다.  

나열하다보니 눈앞이 캄캄해지네요. 디자이너인 제 역할은 저런 시스템을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빚어내는 일이 되겠지요? 물론 다음 분기에 계획이 바뀔 수도 있지만요. 

출처: Tripod Design

물론 너무 이른 얘기라는 것을 압니다. 당차게 얘기했지만, 위 다이어그램에서 저희는 3번과 4번 단계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야기 같은 미래를 예측하는 아티클은 매 달 쏟아지고 있는데, 지금은 시장도 기술도 무르익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이 이야기에 열광하는, 도전을 사랑하는 초기 진입자들의 믿음에 기대야 해요. 저도 한 명의 도전자로서 수도 없이 맨땅에 헤딩을 하다가 다다른 결론입니다. 이렇듯 모두가 '개방'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이런 세상이 정말 올 것 같은데, 일찍 진입해 코 깨지면서 배운 것들을 써먹을 타이밍이 온 것 같아요. 


웹3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라를 하나 만드는 것과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저희 회사처럼 자체 블록체인과 그 위에 올라갈 프로젝트들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에는 더요. 황무지 같은 땅을 개간하고, 깃발을 꽂는 것. 이 땅에서 쓰일 언어와 규범과 화폐를 만드는 것. 사람들을 모으고 시민권을 발급하는 것. 국가의 운영 법칙을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순환되게 유지하는 것. 발 붙이고 사는 세상과 많은 문법이 닮아있다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생태를 더 면밀히 관찰하게 됩니다. 

"Open"이라는 단어가 올 해 가장 많이 쓰이고 주목된 단어이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의 OpenAI나 허깅페이스 등이 가비라면 저희는 이장원이랄까요... 저희도 참 일찍이부터 준비를 했지만 쉽지가 않네요. 삐걱 버벅대고 있지만 연습하다보면 저희만의 쪼가 생기겠죠? 

이만 남은 연차를 몰아쓰며 12월을 푹 쉬고, 다시 1월부터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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