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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May 31. 2022

결혼과 이혼 사이. #2. 분노는 시어머니의 것(2)

그녀는 본인의 분노를 전염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내심 아버지를 이해하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둘 다 있다는 것.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어디서 오는지 연애하는 3년 동안 단 한 번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결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 작정하고 그에게 물었다.

"혹시 아버님을 싫어하는 이유 중에 어머님 말고 다른 여자가 있으셨거나, 도박을 하셨거나, 가정폭력을 하셨어?" 사실 셋 중 하나라도 이유가 있다면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이 세 가지 중 성립되는 이유는 없다고 하였다. 다만 무심하고 엄하게 자신을 키웠던 아버지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 쪽 친가 식구들이 어머니에게 모진 시댁살이를 시켰던 이야기를 했다. 친가 식구들이 어머니에게 했던 수많은 하대와 무시의 언행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면서 말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의 30년 이상 지속된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사실은 시어머니의 분노였다는 것을. 그리고 시어머니의 분노는 곧 내게도 전염될 것이란 것을.




결혼 후, 시댁에 간 어느 날.

아버님께서 날 조용히 따로 부르셔서 말씀하셨다.


"코로나 시기여서 고모들에게 인사드리러 가긴 어려우니, 네가 직접 고모들에게 문자라도 하렴, 여기 전화번호다."

앞에서는 알겠다고 했지만, 시어머니와 남편 몰래, 그것도 남편의 고모에게 내가 안부 문자를 드렸다간,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올 것 같은 강한 직감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솔직히 말했다. 혹시 필요하면 남편과 함께 전화로 인사드려도 좋고, 찾아뵙는 것도 좋지만 내가 따로 문자 드리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혼잣말로 아버지를 향해 불같이 화를 냈고, 본인이 해결할 테니 고모들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3일 후, 시어머니께 갑자기 문자가 왔다.

내 회사 근처이니 같이 점심 먹자는 문자였다. 사실 친정부모님도 딸 바쁠까 봐 단 한 번도 회사에 찾아오신 적은 없었다.

불편하고 당황스러웠지만 그날 시어머니와 1시간 30분을 함께 했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먼저 시아버지가 나를 따로 불러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물으셨고, 고모님들께 연락했냐고 물으셨다. 나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남편이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안 했다고 말씀드렸다.


"만약 며느리 네가, 나 몰래 고모들에게 연락했다면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왔다. 근데 네가 현명하게 처신했다니 잘했다." 시어머니께 처음으로 받은 칭찬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고된 시댁살이와 남편의 무정함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하셨고, 직장인이 가장 많은 낮 12시 반 강남 어느 대형 카페에서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 당시 나는 갑자기 직장 앞에 찾아온 그녀의 행동이 불편했지만,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아팠고 공감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머니 옆에서 그녀가 외롭지 않게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시댁에 간 어느 다른 날.

그날도 어머님은 아버님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었고, 내가 아버님과 재밌게 수다라도 떨면 온 집안이 떠날 것처럼 한숨을 쉬고 계셨다. 어머님 눈치를 보며 나는 다시 부엌으로 갔고, 그녀 옆에 앉았다.


시어머니가 잘 깎아진 과일을 작은 접시에 따로 담으셨다.

"못생긴 과일만 접시에 담아야지"

그리고 그 작은 접시를 내게 갑자기 주셨고, 순간 당황했던 나는 다른 생각 할 겨를 없이 '못생긴 과일은 나 먹으라고 주신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포크를 들고 먹으려던 찰나,

"왜 네가 먹니? 아버님 갖다 드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시던 아버님께 작은 과일 접시를 드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그녀의 언행은 내 생각을 마비시켰고, 옆에서 시어머니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남편조차 그 어떤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시댁의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이상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내가 생각하는 '문제'를 말했다.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싫어하시는 것은 알겠는데, 나한테 못생긴 과일을 아버님께 갖다 드리라고 하시는 건 이상한 것 같아. 우리가 애를 낳으면, 내 아이한테도 그렇게 '할아버지한테 못생긴 과일 갖다 드려라'라고 행동하실 텐데 어떻게 생각해? 내 아이한테 어머님의 분노를 전염시키는 게 맞는 것 같아? 당신은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


남편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더니,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돌아와 내게 사과를 했다. 창피하다고 했고, 항상 어머니과 아버지의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에 불편은 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분노가 시아버지에게 국한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이 맺혀 투정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이상하게도 나와 내 부모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분노를 나 몰래 내 남편에게 계속 주입시키고 있었다.


내가 알게 되었던 그 사건은,

결정적으로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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