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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May 31. 2022

결혼과 이혼 사이. #1. 분노는 시어머니의 것(1)

처음부터 어긋난 실패의 상견례. 그리고 1년 동안 지속된 시어머니의 분노

그녀의 분노 시작 1. 실패한 상견례

겉으로 화기애애하게 끝났던 상견례는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

상견례 이후, 남편으로부터 2가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편의상 남편의 이름을 가명인 김민수라고 칭하겠다)


첫째, 친정부모님께서 상견례자리에 함께 나왔던 형부의 이름을 편안하게 부르고, 남편에게도 형부에게 하듯이 '김서방'이 아닌 '민수야'라고 불렀던 행동.

둘째, 친정부모님이 시댁 부모님을 호칭할 때, '사돈어른'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민수 엄마, 민수 아빠'라고 했던 행동.

결과적으로 양가 부모님이 처음 보는 자리인데, 예의 없이 너무 편하게 호칭을 사용했던 우리 부모님의 언행에 대한 질책이었다.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내 부모에 대해 안 좋게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 감정이 앞섰지만, 시댁 부모님이 기분 나쁘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양해와 용서를 구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언니 시댁 부모님과 네 분이서 따로 만날 정도로 친하셨고, 그때의 성공적이었던 경험이 이번에 실수로 이어진 것이라 양해를 구했다.




그녀의 분노 시작 2. 실패한 한복 맞춤

상견례 후, 나와 남편은 양가 어머니를 모시고 결혼식 때 입을 한복을 맞추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 잠시 대기 시간이 있어 차를 마시던 중, 친정엄마가 말씀하셨다.

"민수 엄마는 한복이 참 잘 어울리실 것 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리고 시어머니의 한마디.

"근데 우리가 옆집 아줌마들끼리 만난 것도 아니고, 계속 민수 엄마라고 하시는데 그 호칭은 아니에요. 우리가 옆집 아줌마로 만났나요?"

마스크가 없었다면 친정엄마의 빨개진 얼굴과 민망한 웃음이 들킬 뻔 한 순간이었다. 시어머님의 말씀은 텍스트만 보면 맞을 수도 있으나, 마치 어른이 아이 혼내듯 친정엄마를 꾸짖는 말투였다.

친정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시어머니의 말씀도 일리가 있어 나는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고, 어색한 웃음과 함께 그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한복을 다 본 후, 저녁식사를 함께 했고 커피를 마시자는 시어머니 말에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결혼식에 대해 어머니들끼리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남편과 내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셨다.

10분 정도 흐른 후, 나와 남편은 카페에 들어왔고 시어머니는 친정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민수 같은 사위를 두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정말 행운이세요."

우리 엄마는 평소 쾌활한 내공을 발휘하며 말했다.

"그럼요~ 민수 같은 아이가 제 사위가 된다니 저는 정말 너무 복 많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시어머니가 말했다.

"근데 자꾸 민수라고 하시는데, 김서방이라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 부분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서 내가 말했다.

"오빠, 김서방으로 불리고 싶어? 아니면 민수라고 불리고 싶어? 오빠가 정해."

남편은 민망한 듯 상관없다고 말했고 시어머니는 대뜸 나에게 어떤 호칭을 듣고 싶냐고 물었다.

"저는 이름 불러주시는 게 좋아요. 새아기, 아가라고 불러주시는 것도 좋고요."

그러자 시어머니는 말없이 특유의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나는 한발 양보하면서 말했다.

"그냥 어머니께서 불러주시고 싶은 호칭으로 해주세요”




그녀의 분노 결과 1. 다시는 없을 양가 부모님의 만남

그날 저녁, 남편과 소리를 지르며 싸웠던 게 지금도 기억에 난다.


내가 말했다.

"감히 엄마 뒤에 숨어서, 너네 엄마가 내 엄마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게 해? 오빠가 민수든, 김서방이든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우리 엄마한테 이야기할 것이지, 너 엄마 뒤에 숨어서 내 엄마한테까지 말하게 해? 니네 엄마는 왜 나한테 수혜라고 불러? 너 마마보이야? 누구 혼내? 우리 엄마 혼내는 거야 지금? 사람이 바른말할 때도 표정과 말투라는 게 있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열정을 불태워 남편의 자존심을 팍팍 깎았다. 그게 우리 엄마를 대신해서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많이 속상해하셨다. 언니네 시댁 부모님처럼 내 시댁 부모님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그녀의 분노 결과 2. 1년 동안 이어진 그날의 트라우마.

결혼하고 시어머니를 만나 뵈면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호칭이었다.

나에게는 '야, 너, 수혜야'라고 하시던 모습. 그리고 우리 부모님 안부를 물어볼 때 '수혜 엄마는 잘 지내시니? 수혜 아빠는 잘 지내시니?라고 하시던 모습.


본인도 똑같이 하면서 왜 우리 엄마에겐 혼내는 듯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시어머니가 친정엄마에게 했던 그 표정과 행동, 그날의 공기와 장소, 분위기까지 여전히 자주 떠오른다.




그녀의 분노 결과 3. 1년 동안 이어진 그녀의 험담.

결혼 후 1년 만에 결혼 앨범이 나왔고, 시댁 부모님께 앨범을 보여드렸다.

나는 시아버지와 함께 거실에 있었고, 남편은 시어머니와 함께 부엌에서 앨범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의 대화.

시어머니: "응? 이 집 사람들도 있네?"

남편: "(이를 악물며) 이 집 사람들이 모야? 조심히 말해"

시어머니: "아아, 사돈댁."


아, 우리 가족을 '이 집 사람들'이라고 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로 남편 혼자 결혼한 줄 알았다.

결혼식 앨범에 내 가족을 보며 ‘이 집 사람들도 있네’라니.


'얼마나 평소에도 내 부모에 대해 막 말하고, 하대하면서 생각하면 내가 거실에 앉아있는데 우리 식구를 '이 집 사람들'이라고 칭할까?'라는 생각에 분노했다.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 부모를 그런 식으로 말했으리라. 그래서 습관처럼 튀어나온 거겠지.


그녀의 분노가 결국 나에게도 전염되고 있었다.

지속적이고 강력한 분노는 주변 사람을 전염시킨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반드시 주변 사람을 물들게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치열하게 용서하고 끊임없이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분노에 전염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단지 평화롭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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