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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May 31. 2022

결혼과 이혼 사이. #3.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이 말은 시어머니에게 성립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는 내게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혜야. 너는 너가 옳다고 생각한 말과 행동을 할거야. 맞다. 넌 틀리지 않았어.

네가 이해하기 어렵고, 너에게 상처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기준에서 옳다고 생각한 말과 행동을 너에게 했을 뿐이다. 모두 다른것일 뿐 틀리지 않았다."


이 말은 내 귓가에 남아 삶을 사는데 진리가 되었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가족 분위기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마다 내 스스로를 고찰했다.


나 역시 여자의 인생으로 보자면, 시어머니가 안쓰러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완벽히 알 수 없는 세대였지만 그녀를 이해하려고 했고, 그 결과 남편이 내게 먼저 말하진 않았지만 스무고개처럼 내 스스로 맞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인생 한조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중매결혼이 흔했던 30년 전.

꽃같이 아름다웠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20대에 만나 2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하였다. 소위 '사'자로 끝나는 엘리트 집안이었던 그의 가족들은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그 둘은 사랑했기에 결혼을 했다.


#1. 그녀의 이야기 (나의 시어머니 편)

그의 어머니는 며느리로 들어온 그녀가 마음에 안들었던지 수십년을 부엌데기처럼 그녀를 부렸다고 했다. 심지어 그와 그녀 사이에서 낳은 아들 2명도 싫어했을만큼 참 모질게도 그녀를 괴롭혔다.


매일같이 반찬을 만들어 시어머니께 갖다 드리고, 밤 10시가 넘으면 겨우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는데 그 옛날에는 동선이 맞는 사람들과 다 같이 택시를 탔다고 한다. 그녀는 그 늦은 시간 낯선 남자들 사이에 껴서 고된 몸을 이끌고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시어머니께 갖다 드린 반찬통은 시누이들 집에서 나오곤 했다. 그녀는 시댁 식구들 모두의 부엌 였던 것이다.


제사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수십년을 모진 감옥 같은 삶에서 말없이 견뎠다. 남편과 수천번 싸웠지만 해결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시절을 견딜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첫째 아들 때문이었다(지금의  남편이다) 첫째 아들은 기질이 다정하고 성품이 착해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무심했던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그녀는 그렇게 수십년 동안, 남편에 대한 불만과 시댁살이 험담을 첫째 아들한테 말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많이 외로웠다.


그렇게 그녀의 남편 대역이자, 친구였던 첫째 아들이 어떤 여자애와 결혼하다고 한다.

아들의 나이가 30대 중반이니 결혼은 해야겠지만, 아들을 빼앗긴 것 같은 마음이 든다.




#2. 그의 이야기 (나의 시아버지 편)

그는 아내가 시댁살이를 모질게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남이었던 그는, 본인의 어머니와 누나들도 만족시키고 싶었고, 아내도 만족시키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아내의 일방적인 희생만 있었지만.


그의 형제자매는 '사'자로 끝나는 엘리트 직업을 갖고 있었고, 성악을 하고 싶었던 그의 꿈은 좌절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은행에 취업을 했고, 약 30년동안 답답하고 힘들기만 했던 직장 생활을 정년퇴임까지 했다.


그가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었다. 수십년째 이어오던 제사를 없앴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아들을 나름 사랑으로 대했지만 어디에서도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 따위를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기분좋을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한다고 표현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아들을 가차없이 때리기도 하였다.


꿋꿋하게 참고 견디어 직장에서 돈을 벌어다주면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정년퇴임을 하고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은행에서만 일했던 그는 사업실패를 하였고, 아내와 아들들에게 실망감만 주었다.


수십년  시댁살이를 당한 아내는 그를 외면했고, 아들들도 장성하여 아버지인 그와 진솔한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버지인 그의 말을 무시하고, 그를 싫어했다.

그는 많이 외롭다.


어느 , 첫째 아들이 결혼을 한다며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정말 기쁘다.

잘해주고 싶고, 예뻐해주고 싶다.




#3. 그와 그녀의 첫째아들 이야기 (나의 남편 이야기)

첫째 아들은 어렸을  기질이 여성스럽고 소심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서기를 꺼려하고 조용조용한 아이였다. 당황하거나 화가  ,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되는 스스로가 창피하고 원망스러웠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맞아 부모님께 이야기하니 조용히 지나가라고 했다. 여린 마음에 슬프고 억울하고 상처를 받았지만, 첫째 아들은 생각했다.


'맞고 들어온 내 잘못이구나'


그 아이는 엄마가 모진 시댁살이를 당하는 것을 직접 보기도 하고, 엄마에게 수시로 아빠에 대한 원망섞인 말을 들으면서 자라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친할머니가 본인을 예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싸우는 부모님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내가 잘하면 우리 엄마, 아빠가 다시 사이좋게 지낼거야'


그는 엄마의 서러운 감정을 달래주며 20년을 살아왔다. 아마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중학교 시절 때부터 그래왔던  같다. 엄마가 말했다. "내가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랑  동생 때문이야."


그는 생각했다. '역시 내가 잘해야 돼. 나는 이 집의 장남이니깐 책임감이 있어.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줘야지. 우리엄마는 참 불쌍한 사람이야'


그러던 그가 30대에  여자를 만났다. 독립적이고 자기 주장이 명확하고, 자신과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신기한 여자 아이였다. 불편할 정도로 자기 주장과 논리가 명확했던  여자 아이의 말을 꼽씹으면 사실 틀린 말은 없었다. 그 여자아이는 항상 ‘왜’와 ‘어떻게’를 고민하며 본인의 삶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신과 다르게 화기애애한 가정 속에서 사랑받고 자란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그는 그 여자에게 말한다.

"내 꿈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거야. 내가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남편과 연애 3년, 결혼생활 1년 3개월 동안 부단히 시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남편이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했기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각자의 입장에서 고민해보고 남편에게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하라고 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모아 알게된 사실을 기반으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토록 고찰을 하고 나니, 정말 세상에 옳고 그름이 사라진것처럼 느껴졌고 아랫사람으로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기대에 완벽하게 맞추진 못하더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시어머니께 잘하길 바랐다. 불쌍한 본인의 엄마에게 내가 행복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효도는 셀프라고 수천번 말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역시  잘하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에게서 받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넘치는 사랑이 살면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남편에게도 그런 빛이 되는 감정을, 그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 남편은 놀라울만큼 빠른 시간 내에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보며 희망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좋은 가정을 꾸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부모님을 험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남편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  까진 말이다.


세상에 옳고 그른것은 없다.

그러나 이 말은 내 시어머니에게 성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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