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표류하던 그 날.
2019년 11월.
무더운 여름이 가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치는 계절.
나는 아침부터 한껏 긴장한 채 2시간 동안 거울을 보며 고민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처음 뵙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떤 옷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을 해야 단정하면서도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강동구 어느 대형 백화점.
남자 친구의 어머니가 저 멀리서 걸어오신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최대한 밝게 웃으며 예의 바르게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인사를 받지 않으시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시기만 한다.
벌써 고개 숙여 인사드린 지 3번째다.
'언제쯤 내 인사를 받아주시는 거지? 내 얼굴에 뭐가 묻은 걸까..?
밝게 웃던 입이 살짝 어색해질 찰나, 드디어 내 인사를 받으셨다. 휴.
점심식사를 마치고 야외 카페에 앉아 남자 친구와 나, 어머님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주제는 다채로웠고, 그 중 남자 친구가 어려웠을 때, 그를 많이 도와준 여자 사람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두어 번 그 이야기를 남자 친구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는 고마운 분이었다.
그리고 남자 친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러니깐, 내가 그 여자애랑 잘 좀 사귀어 보라고 하지 않았니?"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당황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 두 감정이 섞이면서 혼란스러웠다.
남자 친구는 강한 부정과 손사래를 치며, 그 여자분은 그냥 친구였고 전혀 그런 사이는 아니라고 한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나 앉혀놓고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2020년 2월.
칼바람이 몸속까지 시리게 만들던 그날.
남자 친구 가족을 보는 자리였다. 날이 많이 추웠지만 깔끔하게 보이고 싶었기에 평소 잘 입지 않는 코트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고급 호텔 안 레스토랑에서 남자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에게 인사를 했고, 아버님은 날 보시자마자 박수를 치며 호탕하게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내가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피시며 연신 예쁘다는 말씀만 하셨고,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에서 나를 그토록 칭찬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남자 친구 어머니가 아버님께 말씀하셨다.
"그렇게 칭찬하면 애 교만해져요. 그만해요."
처음 어머님께 인사드렸던 날, 그때 느꼈던 이질감과 불쾌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내 생전 교만하다는 단어를 책이 아닌, 사람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식사가 끝난 후, 내 코트를 직접 입혀주실 만큼 날 좋아해 주셨고, 입이 닳도록 '예쁘다, 참 곱다'라는 말씀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계속 아버님께 '애 교만해지니 칭찬 그만해라'라고 3번이나 더 말씀하셨다.
일주일 후.
나는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 베갯잇을 적실만큼 상처받았고, 억울했고 서러웠다. 어머님이 날 싫어하실 만큼 충분한 만남과 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내가 당신 아들의 여자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무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부모님의 자부심이자 사랑으로 아끼며 키워온 딸인데, 왜 남자 친구 어머니로부터 이러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지 화가 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남자 친구는 그제야 어머님의 무례했던 행동에 대해 내게 사과를 했고, 아버님께서도 남자 친구를 통해 내게 사과를 하셨다.
'내 아내가 아들을 결혼시킬 거라 생각하니, 아들을 빼앗긴다고 생각한 것 같구나. 진심으로 미안하다'
비록 어머님의 사과를 직접 받진 못했지만, 아버님께서 이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함과 동시에 한참 어린 나에게 사과하셨다는 것이 감사했다. '아버님이 계신다면, 그래도 결혼해서 발생될 수 있는 갈등을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2021년 2월.
남편과 2021년 2월에 결혼했다.
그리고 시어머니로 인해 무수히도 많이 싸웠다.
시어머니 역시 노력하셨으리라. 본인이 당한 시댁살이에 반절도 안 되는 집안일을 시키셨고, 딱 한번 내 회사 앞에 갑자기 찾아오신 것 말고는 전화나 문자도 하지 않으셨다. 그만큼 남편이 중간에서 고군분투한 결과였다.
나도 시어머니와 참 잘 지내고 싶었기에 평생 받으신 적 없다던 네일케어도 해드리고, 시어머니가 울면서 과거 시댁 살이 이야기하실 때 공감해드렸다. 한 달에 한번 부르실 때마다 찾아뵙고, 내가 시아버지와 함께 오순도순 함께 있는 걸 싫어하셔서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 옆에 꼭 붙어있었다.
뵙지 않는 주에는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 때 한 번씩 전화드렸다. 그 시간대에 전화드리면 시어머니 회사 동료들에게 '우리 며느리가 전화 와서~'라며 자랑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생신에는 우리 친정부모님께도 안 해드린 미역국을 끓여갔다. 그 외에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재밌는 소품으로 기쁨을 드렸고, 삭막한 시댁 집안에 웃음꽃이 폈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시댁에서 부엌데기 역할은 '혼자' 하지 않았다. 내가 시댁에서 가사 노동을 하면 반드시 남편도 '함께' 해야 했다. 친정부모를 위해 안부전화 조차도 먼저 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그리고 자기 아들만 귀중하게 생각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소심한 반항이었고, 그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2021년 10월.
한 달에 한번 만날 때마다,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나를 무시하고 비난했다. 그 상황이 반복되자 내 몸에 이상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몸이 너무 더워지면서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두근거려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조갈증이 심해 하루에 물을 3L 이상 마셔도 목이 말랐고 생전 없었던 평편 사마귀가 몸을 뒤덮었다. 밤에 잠을 자면서 생각했다.
'부디 내일은 눈뜨지 않게 해 주세요'
점차 안 좋아지는 몸과 마음에 나와 남편은 부부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부분의 고부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남편과 아내가 갈등을 풀어가는 방법의 차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3자가 부부를 흔들어도, 남편과 아내 간 신뢰를 쌓고 서로 이해하며 대화한다면 이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싸울 때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서로의 말을 곱씹고 이해하고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2021년 12월.
부부상담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1개월에 1번 갔던 시댁을 2개월에 1번 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에겐 대단한 성과였고, 격월로 시댁에 간다면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걸로 만족했다.
대신 남편이 시댁에 혼자 가는 날이 늘었다. 시댁에 다녀오면 시어머니의 부정적인 기운에 영향을 받고 오는 남편이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일 때는 누구보다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남편을 보니 괜찮다.
이대로라면, 우리 부부는 행복할 것 같다.
2022년 4월.
시어머니가 우리 부모님을 약 1년간 내 남편에게 꾸준히 험담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친정부모님을 '이 집 사람들, 저 집 사람들'하면서 무시하고 저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는 우리 엄마를 '자신과 다르게 다정한 남편 잘 만나서 호강하는 팔자 좋은 여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친정어머니에 대한 안부를 물어본 적이 없다. 친정아버지에 대해서만 물어보셨다. 시어머니가 본인의 시댁 살이에 대해 내게 종종 이야기하셨었는데, 내가 '저희 친정엄마도 참 고생하셨는데, 다들 힘드셨겠어요'라고 하면, 무작정 친정엄마의 시댁살이는 본인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셨다.
그래.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내 인생에서 시어머니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모른척 참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시어머니의 험담이 내 남편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친정아버지만 잘해서 우리 집이 화목한 것처럼 말했고, 친정어머니에 대해서는 '자신의 엄마와 달리 삶의 무게가 적고 마냥 행복한 분'이라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다. 우리 친정부모님 또한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공통점보단 차이점이 많으셨고, 내가 어릴 적 꽤 다투셨지만, 두 분이서 끊임없이 서로를 배려하셨고 이제야 편안해지신 것뿐이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30년 내내 서로를 할퀴고 상처주기 바빴지만, 우리 친정부모님은 서로 상처를 줄지라도, 미안해하고 안아주고 연민하고 배려했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친정부모님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특히 친정어머니에 대한 미묘한 반감들이 무엇인지 확실해진 것이다.
시어머니가 가장 증오하는 남편에 대한 분노를 아들에게 세뇌시킨 것처럼, 시어머니가 느끼는 내 부모에 대한 열등감을 아들에게 똑같이 세뇌시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아버지를 증오했던 마음처럼, 내 부모를 존경하면서도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꼈다.
시어머니는 결혼한 아들을 여전히 감정쓰레기통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내 가정, 내 부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행세하고 있었다.
부부상담 때 깨달았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단순히 나와 내 남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