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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Jun 03. 2022

결혼과 이혼 사이 #5. 각자의 사정이 내려앉은 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2022년 5월.

그날은 어버이날이었다.

외식 후, 시어머니는 내게 과일을 깎으라고 하셨고 참외 1개, 오렌지 1개를 정성스럽게 깎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거실에 혼자 앉아계시는 시아버지 곁으로 갔다. 시아버지와 나는 캠핑과 낚시라는 공통 취미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고, 나를 참으로 애정 하는 시아버지와의 대화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시어머니는 과일을 먹으라고 말씀하셨고, 나와 시아버지, 도련님은 배가 불러 먹지 않았다. 남편과 시어머니만 과일을 먹다가, 남편이 과일 하나를 포크에 집어 내게 갖다 주었다.

"하나 먹어봐, 맛있어"

남편이 갖다 준 과일을 한입 베어 먹었을 때, 나를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안 먹겠다는 애한테 뭐하러 주니?"


시댁에 가면 수없이도 저런 말을 듣는다. 농담 섞인 듯 가시 돋친 말들.

시어머니가 나를 조롱하고 하대하는 것을 넘어 내 부모를 남편에게 1년 동안 험담했고 그 영향이 남편에게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시어머니에게 더 이상 상처받을 것도 없었다. 그녀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수준의 인간류였고, 대화하는 것조차 불쾌했기 때문에 못 들은 척했다.


그러나 남편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는 왜 말을 꼭 그렇게 해야 돼?"


시어머니 때문에 나만 스트레스받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도 살이 빠질 만큼 힘들어했다. 남편은 종종 시어머니가 나에게 하는 언행을 보고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불쌍하고 상냥한 줄만 알았던 엄마가 자신의 아내에게 막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혼란스러워했다. 처음에는 나에게 이해를 바라던 남편도, 시어머니에게 화내는 빈도수가 점점 늘고 있었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한 남자의 고군분투였다.


남편의 성난 표정과 날이 선 말에 화가 나셨는지 시어머니는 갑자기 그릇이 깨질 것처럼 설거지를 하셨다.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곧바로 고무장갑을 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남편이 따라 들어갔다.




15분 동안, 짜증 내는 어머님의 목소리만 들릴 뿐 남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새 식구인 나를 앞에 두고,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이 벌써 2번째다.


작년 추석, 나를 보며 예쁘다고 말한 남편에게, 시어머니는 "너는 엄마한테 단 한 번도 그런 소리 한적 없으면서!"라고 말씀하셨고, 남편과 시어머니는 내 앞에서 크게 싸워었다.


이 상황이 낯설진 않았지만, 손과 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너무 곤혹스러웠고 불안했다. 아마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답답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나는 옆에 계시던 시아버지께 산책을 나가자고 말씀드렸다. 시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내 어깨를 토닥여주시며 함께 밖으로 나갔다.


"수혜야, 정말 미안하다.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아빠가 젊었을 때 엄마한테 너무 못해서, 엄마가 저렇게 변한 거야. 다 아빠 죄야. 아빠가 많이 미안해. 수혜야 정말 미안하다.."


나는 아버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 말을 듣자고 산책 나온 것도 아니라고 했다. 단지 마음이 많이 불안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에게 미안해하지 마시고, 제발 내 남편을 시어머니 남편 대역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아버님께서 시어머니랑 대화를 해보세요.'




5분 정도 산책하고 시댁에 들어가자, 남편과 시어머니는 소강상태였다.

남편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수혜야, 가방 들어. 집에 가자." 남편이 내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었다. 시댁에서 1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냉큼 가방을 들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우리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지르셨다.

"케이크를 사 왔으면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이거 먹고 가!"

어버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사둔 케이크였다.

"엄마, 우리 배부르고 케이크 안 먹고 싶어. 그냥 갈게. 나중에 이야기해."

"먹고 가! 그럼 이거 어떻게 하려고 해! 먹고 가!"


계속되는 실랑이에 도련님은 그제야 자기 방에서 나왔고, 시아버지와 도련님은 케이크 한 조각만 먹고 가라며 우리를 달랬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달래고 진정시켜야 할 사람은 시어머니 아닌가?'

남편은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케이크를 꺼내 한 조각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고, 현관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너네 때문에 반찬 싸놨는데 가져가!"

또 뒤통수에 대고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셨다.

참을 수 없었다. 창피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며느리 앞에서 이 정도로 본인의 분노를 표출해낼 수 있는 것일까? 한 가정의 가장인 내 남편을 전혀 존중해주지 않으셨다. 내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10대 아들보다 못하게 대해지고 있었다.


"내가 나중에 따로 와서 반찬 가져갈게. 오늘은 그냥 갈게" 덤덤하지만 화를 누르고 있는 남편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반찬 가져가라는 시어머니의 짜증. 나는 약 2년 동안 쌓였던 분노가 새어나가지 않게 겨우 한마디 했다.

"어머니, 제 앞에서 제 남편에게 그렇게 화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1초도 안되어 돌아온 시어머니의 말씀.

"내 아들이야!"


아뿔싸.

내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잠시 깜빡했다. 나는 내 남편이 당신의 아들임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꾸린 이 남자를 존중해달라는 의미였고 그녀에게는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나는 내 남편을 아들이 아닌 남자로 존중해달라는 의미였다.


시어머니는 지치지도 않으시는지, 끊임없이 남편에게 화를 퍼붓고 있었다.


나는 시어머니께 호소와 부탁을 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이렇게 화를 내시면, 이 사람 집에 가서 몇 주 동안 많이 힘들어하고 울어요. 그러니 그만 화내셨으면 좋겠어요."

0.1초 찰나, 그녀의 입술에서 잠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분명히.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내 착각일까?

그리고 곧바로 돌아온 시어머니의 말씀.

"우리 싸우는 거 아닌데?"


그제야 도련님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자신의 엄마를 제지하기 시작했고 나와 남편은 시댁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도련님께 처음으로 문자를 보냈다.

'도련님, 저는 이 상황이 참을 수 없는데, 시부모님과 남편을 단톡방에 초대해서 그동안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도련님은 연신 내게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시댁에서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사람은 단 1명이었는데, 그 1명을 제외한 모두가 나에게 미안함과 창피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1시간 후, 도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결혼한 후 처음으로 50여 분간 통화를 했다.

나는 그동안의 일을 간략하게 말했고, 도련님의 입장은 이러했다.


'형수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이런 집 분위기를 형수님께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고, 아직 소녀 같은 분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니랑 이야기해보니, 형수님이 아버지랑 즐겁게 대화하는 게 화가 나셨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오늘 엄마가 화난 건 형수님이나 형 때문이 아니라 아빠 때문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제발 형이랑 헤어지지 말아 주세요.'


각자 사정이 있는, 그리고 영원히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밤이 더 어둡게 짙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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