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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Jun 11. 2022

결혼과 이혼사이 #7. 그대, 고단한 여행을 마친것처럼

나의 남편에게 전하는 편지 (1)

사랑하는 나의 남편에게


안녕. 사랑하는 나의 남편.

가끔 당신을 보면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면서 눈물이 나오곤 합니다. 그럴 땐, 갑작스러운 나의 감정을 억누르고자 벌떡 일어나 물을 마시러 가곤 해요.


당신의 어머니로 인해 용서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날 때도, 한편으로는 '불행을 공기처럼 곁에 두며 살아온 부모님 밑에서 혼자 참 잘 자라와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신은 끝까지 어머니를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내게도 그러길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어머니 때문에 칼같이 날카로운 말을 서로에게 던지며 수없이 다투었지만,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잊지 말자'라며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지요. 내게는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지만,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당신과의 미래가 설레기보단 무섭습니다. 당신과 부부의 연을 지속하면서 겪을 시어머니의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이 걱정스럽고, 그로 인해 결국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 날이 올까 봐 두렵습니다.




결혼을 결심할 때 남자는 어머니와 닮은 여자를, 여자는 아버지와 닮은 남자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시어머니와 전혀 다른 나를 사랑했죠.


당신은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보단 따뜻한 응원이 필요했고, 어머니가 바라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보단 함께하는 부부간의 든든함을 원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수십 년 동안 해오던 타인의 험담보단, 본인의 삶에 집중하고 씩씩하게 걸어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했을 거예요. 실수를 했을 땐 비난과 날 선 평가 보단, 깔깔 웃으며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옆에 있길 바랬을 겁니다.


당신에게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고, 나에게 역시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은 물통 속 서서히 번져나가는 물감처럼 나의 마음을 당신의 색으로 바꿨고, 당신의 색으로 바뀌어 버린 나는 다시 무색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의 색으로 물들였죠.




나는 당신에게 항상 말했습니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싸운다면 난 절대 그 여자 중 한 명은 아닐 거라고. 시어머니가 당신을 소유하길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 당신을 놓아줄 거라고. 나는 시어머니를 상대로 당신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하되, 시댁과 내가 모두 행복한 해피엔딩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러나 여전히 당신은 완벽한 해피엔딩을 찾는 듯합니다.




여보. 당신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부디 당신 스스로를 제일 행복하게 해 주세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고민하지 마세요. 그 대상이 나일지라도, 나는 당신이 먼저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동안 그래 왔듯, 이번에도 당신의 행복보다 시댁 식구들의 행복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오며 느꼈던 불안과 슬픔, 분노와 허탈감을 우리 가정에도 가져오게 될 거예요.


부디 내 가정에 그런 색감이 물들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아이가 생긴다면, 내 부모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존감 높고 당당한 아이로 키울 것입니다. 조언과 동시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그 아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20년 넘도록 시어머니가 당신에게 세뇌했던 책임감과 이유모를 죄책감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좋은 가정을 만들긴 어렵겠죠.


그래서 난 당신에게 헤어짐을 말한 것입니다.




나는 이미 많이 지쳤습니다.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고단한 여행은 끝났습니다. 나와 함께 새롭고 놀라운 일이 가득한 여행을 다시 떠나길 바랍니다.



-나의 남편에게 전하는 편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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