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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보배 Feb 07. 2019

엄마도 환갑은 처음이라 (in 상트페테르부르크)

엄마가 행복하고 품격 있게 늙어갈 수 있도록

엄마, 환갑이 돼보니 어때?

“엄마 60살 되니까 어때? 60, 환갑 이러면서 기념 여행에 기념 선물에 엄청 받았는데! 그래 막상 된 소감이 어때? 막 엄청 달라진 거 같아?”

엄마랑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를 걸으며 물었다. 엄마랑 둘이 여행을 오면 이런 게 좋다. 손을 잡고 걷는 것. 여유 있게. 딱히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아도 그저 우리가 걷고 싶은 속도로, 평소에 안 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것, 그렇게 새로운 풍경 속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것. 여행을 하는 중에는 이런 시간 자체가 행복하고(여러 단어를 생각해 봤는데, 이건 "행복"이라는 단어가 맞다), 돌아와서는 사진을 찾아보며 글을 쓰면서도 엄마의 손의 감촉이나 체온, 우리가 같이 걸었던 그 길의 색감이나 날씨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 기분이라 그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해서 좋다. 집에서 만나면 살벌히 싸우기도 하면서, 꼭 이렇게 여행을 가거나 서로 떨어져 있을 때 그 여행을 생각하면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아~니~! 그런 건 없어~!” 

“그럼 뭐가 달라진 거 같아?”

“음.. 뭐랄까. 나이를 먹을수록 좀 느려지는 게 있어. 생각하는 것도 느려지는 것 같고, 동작도 굼떠지는 거 같고. 옛날보다 이해도 좀 느려지는 것 같고, 빨리빨리 못 알아듣겠고. 잘 못 알아들으니까 귀가 안 들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늙어서 좀 바보 같아지고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런 게 좀 다르지. 근데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물어보면 다들 그렇대. 이젠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 보면 행동도 다 느리고 왜 걸을 때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그러잖아? 그게 이해가 간달까.”

“아 그래? 그래도 염여사 걷는 건 엄청 빠르잖아”

“나이 먹을수록 빨리 걷는 게 안된다고 연습 하래잖아~ 그래야 오래 산대~치매도 안 오고. 근육이 빠지면 안 되니까 또 운동도 해야 한대잖아. 얼마 전에 수영장 언니들 만났더니 나 수영 한 1,2년 쉰 사이에 우리 반 젊은애들이 요새 날아다닌다고 그러잖니. 내가 예전에 그렇게 선두 서서 날아다녔는데...”


엄마가 말하는 젊은 애들이라고 해봐야 40대 후반 50대 초반 아줌마들을 두고 젊은 애들이라고 하는 것일 텐데 그래도 힘 차이가 무시 못할 정도라고 세월 가는 게 아쉬운 소리를 한다. 조그만 동네 수영장에서 최고급반인 것도 게 중에서는 또 부러움을 사는 일인가 본데, 그중에서 누가 제일 앞에 선두를 서서 가는 게 뭐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인가 싶지만, 그것도 일등이라고 못하게 된 게 아쉬운 모양이다.(모를 일이지, 염 여사라면 가서 선두 서고 남을 근성) 

“ ‘아이고 언니~ 나는 오래 쉬어서~ 이제 다시 가면 제일 꽁찌 서야지, 따라가지도 못할 텐데 뭐~’ 했더니 ‘다~그렇게 세월 앞엔 어쩔 수 없는 거란다’하더라” 라면서 엄마보다 나이가 더 있으신 분과 나눈 이야기를 해주신다. 


“어이구, 그래도 나이 60 먹어도 혼자 비행기 타고 ‘소련’도 찾아오고, 염여사는 아직 창창하네”

“야~그럼~!! 뭐 60, 환갑 뭐 그런 게 요새 별거니~? 아직 아주 크게는 별로 잘 못 느끼겠어~!”

또 이렇게 금세 새침 발랄한 깜찍한 환갑 엄마를 '귀엽다' 생각하니 나도 나이가 먹었나 보다. 


길에서 막 이런 것도 잘 따라 하는 엄마. 괜찮아 아직 어려 보여!!
박물관에 가도, 미술관에 가도 갈수록 재미있어지는 엄마.


엄마랑 같이 나이 먹는 딸

나이가 들어보니 어떻냐고 묻는 딸이라니. 또 거기에 대고 무엇이 바뀌었을까 잘 생각해보고 대답해주는 엄마라니. 참 그 엄마에 그 딸이다. 나도 엄마랑 같은 속도로 세월을 먹고 있으니(엄마의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문득), 내 눈에는 그냥 우리 엄마는 엄마인데, 동네 꼬맹이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면 버럭 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는, 정작 엄마는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싶어 물어본 질문이었다. 


하긴, 그렇게 듣고 보내 젊어서의 엄마는 행동도 엄청 빨랐고, 대충 설명을 하려나 싶으면 이미 눈치로 딱 때려잡고 이미 다 이해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엔 내가 설명을 해도 못 알아 들었는데 딸내미 구박이 듣기 실어 대충 아는 척하는가 싶어 “정말로 제대로 알아들은 거야?”라고 다시 물어봐야 "아니"라고 실토할 때도 있으니. 세월이 조금은 엄마를 느리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이 늙어가는 사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10대의 시간은 10km/h로, 20대의 시간은 20km/h로, 30대의 시간은 30km/h로 간다더라 하는 말들이 있는 걸 보면 엄마의 시간의 속도는 내가 느끼는 그 시간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분명 똑같은 일분일초를 살고 있는 걸 알면서 갑자기 아 정말 그런 거면 어쩌지 싶어 마음이 덜컥. 


미리 걱정하지도, 미리 조급해하지도 말아요

가끔, 어떨 땐 좀 자주, 깜빡깜빡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카맣게 잊어버리다가 다시 기억해 내곤 “아 내가 왜 이러지”하고 스스로 조급해하고 스트레스받는 것 같은 엄마를 안심시키려 언니와 내가 서로 “아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해줄 때도 있다. 길 찾기 하나만큼은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길눈이 밝은 엄마인데, 낯선 장소에서 한 두 번 지나간 길이라 해도 몇 번은  헤매는 것이 당연할 때도 ‘길눈만큼은 최고인 내가 길을 못 찾다니’하는 좌절감에 “아 내가 나이 먹어서 이런가?”라는 말을 할 때는, "아이고~ 여기서 단번에 길을 다 외울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욕심 아냐? 난 열 번을 가도 못 찾겠구먼"하고 얘기를 해주기도 한다.(이것은 정말 진심이다. 나는 아빠를 닮았다. 길눈이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길을 찾는 눈이 없다. 신은 공평하다.)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자신의 작은 실수를 크게 생각하는 게 되는 게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엄마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스스로 의기소침해지고, 그렇게 먼저 조급하게 늙어버릴까 봐 옆에서 나는 나대로 조마조마하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충분히 젊고 총명하고 빛나는 엄마인데. 



엄마가 행복하고 품격 있게 늙어갈 수 있도록

엄마가 젊은 감각을, 나이를 잊고 사는 용기를, 나이를 들어가는 행복을 좀 더 충분히 느끼도록 언니도 나도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되야겠다. 젊은 시절 엄마가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영화나 연극, 공연 같은 문화생활도 자주 함께하고, 여행도 많이 하고, 얘기도 많이 하고. 가끔 이렇게 불쑥 혼자 "소련"까지 찾아오라는 미션을 던져 주기도 하면서. 엄마의 삶의 범위를 조금씩 확장시켜 주고 싶다. 보통은 나이가 들어가면 삶의 범위가 축소될 텐데, 엄마의 한해 한해는 조금씩 넓어지도록. 그렇게 엄마가 나이를 잊고 "즐겁고 행복하게만" 지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젊을 때 고생을 원하든 원치 않았든 사서 할 수밖에 없었으니, 나이 들어서는 충분히 편안하고 행복하도록. 드라마 속 어느 댁 우아한 사모님 만큼 끝도 없이 풍요롭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엄마가 되라고. 여느 집처럼 치열하게 엄마와 딸의 싸움도 더러 하면서. 칠순, 팔순, 그렇게 행복한 100살 할머니도 되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한 엄마와 함께,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늙는다”는 것을 온전히 마주 보는 내가 되고 싶다


엄마, 45살처럼 귀여워!! ㅋㅋㅋㅋㅋ
우리 하루를 꼬박 둘러봤던 예르미타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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