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희생은 하더라도 “나”를 잃지는 말기를.
이 시대의 가장들, 남자들의 생의 정점은 어디일까. 몇 살까지 젊음일까?
내가 20살 중반 입사를 했을 때, 내가 있던 곳의 팀장님들은 아직 불혹에 이르려면 몇 년이 더 남아있는 “과장님”들이었다. 회사일도 십여 년 해왔으니 일은 일로 자신감 넘치고, 직급이나 회사에서의 인지도도 어느 정도 선에 올라 있던 나이. 세상 물정 하나 모르고 신입으로 입사한 내 눈엔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그저 대단해 보이고, 부럽기도 하고, 내 회사생활의 목표처럼 생각했던 사람들. 외모로 보면야 그때의 내 눈에 이래보나 저래 보나 아저씨 들이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그들의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뭐랄까… 자신감이나 열정, 생기 같은 것으로 탄탄하고 살아 있음이 절로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말 그대로 “젊음”이 있었다. 이십 대 여대생들의 풋풋하고 숨만 쉬어도 생기가 넘치는 발랄한 에너지가 남자 어른들에게서 서른 후반 마흔 초반 근처에 저런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인가 싶은 “강한 에너지”가 있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 보지 못했던가 싶게 이제와 돌아보니 그러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최근 어쩌다가 그 시절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아 이렇게나 풋풋하고 어린 사람들이었나” 싶어 놀랄 정도로, 지금 내가 “오빠”라 부르는 사람들 또래의, 풋풋함마저 느껴지는 그들이 있었다.
10년이 지났더니, 이제 그분들도 내가 “진짜 멀고 먼 윗사람, 나이 아주 많은 사람, 진짜 엄청 아저씨”라고 생각했던 “부장님”들이 되었는데, 그래도 신기하게 내 눈에 비친 현재의 그들은 여전히 별로 늙지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그런가, 팀이 바뀌더라도 회사생활을 10년 가까이 해오며 오랜 시간을 옆에서 계속 알고 지냈기에 그런가…. 그냥 흰머리가 조금 더 생겼고, 아주 살짝 살이 조금 더 빠지거나 더 오르거나 했을 뿐. 여전히 나는 가늠할 수 없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고, “네 뒤엔 우리가 있다”라고 단단히 버텨주고 끌어주는 대단한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가끔 그들은 스스로를 어떤 상황 앞에서 “야, 내가 벌써 나이가 조금 있으면 오십이야”라며 퍽 늙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보통은 일 외적인 것들에서 이지만) 내가 보기엔 분명 넘치는 선택권이 있는데도, 충분한 역량이 있는 분들이 신데도 그냥 포기 해버 리거나 물러서 버리려고 하시더란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참 속상하고 안타깝다. “50? So what?! 그래서 뭐가요!! 어쨌다고요!! 나이 든 척 하기엔 엄청 젊은 나인데!!”라고 내 나이도 아니지만 반항하고 싶달까?
사실 내가 어릴 땐 몰랐는데, 나이가 50이라 해도 이제와 생각하니(역시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직 너무도 젊은 나이인데, 아직 한참 더 일할 나이이고, 무엇이든 새롭게 배우고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벌써”라는 말로 스스로를 훅 늙게 만들고, “우리도 얼마 안 남았어”이라는 말로 한번 더 스스로를 푹 숙성시켜버리는 그들은 언제부터 자신들의 “나이 듦”의 기준점을 정했을까.
인생을 두고 “나이 듦”이나 “늙는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서 “아, 50부터는 나이가 많은 거지, 한창때를 넘긴 거지”라는 개인의 기준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어쩐지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한 회사의 녹을 먹고 지내 오다 보니 이 회사의 기준으로 자신의 지위를 가늠하게 되어 버렸고, 전과 다르게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와 회사의 흐름에 따라 60이 되기 전에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떠나게 되는 선배들을 보면서 “아, 나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내가 벌써 이렇게 나이 들어 버렸구나”라고 인식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도 젊은 시절의 그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50의 중반쯤이 넘은 부장”정도의 직급은 “나이가 많고, 지는 세대이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세대”라고 생각해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월은 나만 두고 너무 빨리 흘러가 정신 차려보니 내가 그 연령대에 이미 가까이 와있어, 그 충격은 예고 없이 얻어맞은 뒤통수처럼 얼얼하고, “내가, 나도, 늙는가 보구나…”라고 아주 크게 실감해 버리는 게 아닐까.
게다가 그들이 자라온 그 시대에는 “남자가 할 수 있는 것,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한 관습적 제한이 많았고, 남의 눈에 분명 자유롭지 못한 사회 분위기 었기에 남이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은 좋아 보이고 용감해 보이다가도 막상 내가 하려면 “에이 내가 어떻게…”싶어 망설여지는 듯하다. 나이 든 윗 분들을 바라보면 나는 저 그룹은 아닌 것 같은데, 또 막상 젊은 친구들을 보면 저기도 아닌 것 같은 애매한 나이 같아 자꾸 주춤주춤 하게 되고... (“야, 니가 아직 어려서 몰라”라고 하실 분이 떠오른다. 지금 그렇게 나이 드신 분들도 딱히 뭘 알고 있지 않으신 듯 한 건, 역시 내가 어려서이다. 또 이렇게 상대방은 어리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할 일이다)
10년쯤의 세월 속에 아이들은 쑥쑥 자라나서 중고생, 혹은 대학생이 되었고, 집도 장만해야 하고 아이들 학원비도 대야 하고 이것저것 내 가정을 위해 내가 갖고 싶은 것은 한번 더 참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한번 더 미루면서 가장의 자리에서 이렇게 저렇게 희생하고 났더니, 남은 건 부쩍 빠르게 다가오는 회사 정년의 나이와, 다가오는 노년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생각하고 고려해야 하는 것들은 점점 늘어나 있어서 “나”보다는 “가장”의 위치를 더 생각하다 보니, 힘들고 스트레스받을 때도 한 번씩 내 마음대로 “질러”보고 싶지만 또 스스로 한번 더 참자고 다독여야 하는 사람들이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50대 전후반의 남자 어른들이지 싶었다.
가끔 널 보면 부러워
“가끔 널 보면 부러워. 너는 하고 싶은 것도 분명하고, 생각도 분명하고 “너”라는 색깔이 확실히 있잖아. 그런데 어쩌다 가끔 날 생각해보면 나도 분명 네 나이 근처였을 땐 뭐 사는 것도 좋아했고, 어디 가는 것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내가 뭘 좋아하나… 생각하면 딱히 그런 게 없거든. 이게 내가 현재 뭘 다 이루고 다 가져서 없는 게 아니라, 보통 내가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상황에 맞춰서 참아야 했었고, 내가 이걸 참으면 또 우리 애들 뭐 하나를 더 해줄 수 있으니 그렇게 또 한 번 참고, 그냥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번 한번 참다 보니 아예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잃어버린 건가 싶더라고. 물론 그렇게 했던 것들을 후회하는 건 절대 아니고, 내 가족들을 보면 기쁘고 한데, 또 온전히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참으면서 “나 자신”은 좀 너무 놓고 지낸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하더라고… 어쨌든 애들은 커가면 또 자기 자신들의 인생을 찾아 나갈 텐데, 애들과 가족이 전부였던 삶에서 또 내 남은 인생을 생각하다 보면 이제야 “온전히 내가 좋아하던 것들, 이제는 할 여유가 조금은 더 생길 것 같으니 늦었지만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생각이 안 나서 어디부터 찾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더란 말이야”
“너랑 이런 얘기 하는 날도 오는 걸 보면, 많이 컸다~!” 하시고 웃음을 안주삼아 맥주 한잔을 하다 듣게 된 이야기가 내 일도 아닌데 괜히 속상하고 슬펐다. 자연스레 아빠가 떠오르기도 했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아빠의 젊은 날에, 우리 아빠는 어떠했을까, 어떤 마음의 폭풍을 견디고 지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훅 치고 올라와 목구멍 어딘가가 울컥했던 것도 같다.
나야 먹여 살릴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해야 하는 것도 “독거노인”이 될 것만 같은 높은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 정도이니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뱉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사고 싶은 것도 살 수 있는, 조금 더 “막무가내”일 자유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50대 가장들은 어디 그게 쉽겠는가. 하고 싶은 말이 없어 못하는 게 아닐 것이고, 내던지고 싶은 사표를 만지작만지작 또 한 번 눌러 참는 일이 더 많을 것이며, 스스로 거울을 볼 때마다 이게 내 얼굴인가 싶을 정도로 부쩍 건조 해져가는 외모마저 속상할 때가 많을 테지만 내가 지켜왔고 지켜갈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번 더 꿀꺽 눌러 삼켜 참는 것이겠지.
사실은 뜨거운 열정을 담았던 취미생활들도 있었는데,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마음이 있었는데, 사실은 좋아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사실은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이제와 더듬더듬 떠올려 보려 하니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무언가 새로 시작해 보려니 두려움도 생기고 막막함도 생기고, 또 한편은 그저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바탕으로 그렇게 소소히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다가오는 미래는 너무 빨리 바뀌어 가서 불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너무도 살기 고단한 세상이니, 나를 조금만 더 희생하면 금쪽같은 내 자식들에게 조금은 더 보탬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한번 참아야 할 것 같고… 이 모든 것들이 섞여 사실은 사춘기 때보다 더 격한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숨 쉬는 오늘 이 시간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 가장 젊은 시간”이라고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느 마을에 청년회장이 50이 훌쩍 넘어 환갑이 내일 모레인 아저씨인데,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 그 동네에서 아주 젊은 나이라 “청년회장”을 맡으신다는 얘기에 엄청 웃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결국 인생이란 마음먹기 나름. 요즘엔 “인생 70부터”, “120세 인생”이런 이야기들도 많이 들리는데, 지금 겨우 50살 근처 이신 가장의 짊을 지고 가시는 분들은 부디 젊은 마음을 키우길 바란다. 어린 나이 되바라졌다 할 수도 있겠으나 같이 늙어가며 바라보니, 50대 그 나이는 아직 늙었다 하기에 충분히 젊고 푸르다. 갓 자라나 온 나뭇잎의 연한 초록색 같은 씩씩한 향기는 줄었으나, 짙은 녹색의 향나무처럼 단단하고 균형감 있는 깊이 있는 향이 도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내가 본 주변의 50대들만 이러신 거라면, 내 주변의 훌륭하신 분들께 감사를…흠흠… 하지만 이 나이 때의 진상 어른들은, 굳이 이 나이가 아니셔도…그러하실 듯하다))
아직은 너무 젊은 “50살”. 기꺼이 희생은 하더라도 “나”를 잃지는 말기를.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 좁은 세상의 기준으로 “내가 벌써”, “나도 조금 있으면”, “몇 년 안 남았어”같은 말로, 가만히 있어도 막지 못할 흘러가는 세월에 가속도를 붙여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습관적으로 “내가 몇 년만 젊었어도 그거 한다” 같은 시간제한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어차피 몇 년만 젊은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세상 말도 안 되는 핑계란 소리다.), 지금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순간이라면 고작 1,2년 차이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이건 내가 30살에 해보고 후회하고 깨달은 것이다. 인생 긴데 1,2년 별 차이 없었다. 아마도 아실 텐데?) 어색하고 멋쩍더라도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좀 더 끝까지 물고 늘여져 나와 진지하게 얘기해보는 시간도 늘려보면 어떨까 싶다.(이 시대 50대 남성들이 가장 못할 것 같은 부분이지만)
“희생”으로 가족을 지켜왔지만, “나”를 잃어버리면 “나”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니까. 언제든 나를 위한 기회가 왔을 때 후회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까지 가족과 회사에서의 역할을 위해 나를 “희생”해 왔다면, 이제부터라도 “나”를 되찾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얼마 전, 언니가 10년 전쯤의 아빠 사진을 보내왔다.
“야, 아빠 너무 젊지?”
10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환갑이 지난 우리 아빠의 50살 근처 즈음의 사진 속에는 지금보다도 너무도 젊고 생생한 아빠가 있었다. 아빠가 늙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또 이렇게 사진을 보니 부쩍 아빠에게 흐른 세월이 느껴진다.
아. 이때 우리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빠는 이때 어떤 것들을 하고 싶었을까. 아빠는 무엇을 생각하며 “온전한 자신”을 희생하고 참아냈을까. 이때를 떠올리며 지금의 아빠는 또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이때의 아빠는 외롭지는 않았을까. 가장이라는 무게가 엄청 무거운 것인지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철 모르던 그 시절 아빠가 외롭지 않게 가족 모두가 충분히 마음을 나누었던가. 혹시나 아빠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제라도 모두 하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은데 60살의 지금의 아빠는 무엇을 하고 싶으실까. 만약 아빠에게 묻는다면 50살의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이번 여행, 아빠에게 한 번쯤 물어봐야겠다. 아빠의 젊은 시간은 어떠했냐고. 아빠가 포기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냐고.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냐고, 그리고 지금 행복하냐고. 그리고 우리 앞으로도 함께 행복하자고. 어차피 120살까지나 산다는데 이제 겨우 절반만큼 살았으니 우리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행복해 보자고.
그러니, 우리 아빠보다도 아직 한참 젊으신 50대의 가장들이여, 모두들 건강 잘 챙기시며 파이팅하시길 기원한다. 그리고, 50대의 아빠를 둔 아들딸들이 아주 조금은 그들을 이해 해 주길 소망한다.
어쨌거나 하루하루 다가올 나의 50대도(아직 찾아오려면 멀었다고 생각하고 픈,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속도로 찾아오고 계신 40대도) 화. 이. 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