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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보배 Sep 05. 2020

문제는 '동충하초'가 아니었어

건강해지고 싶은게 아니라 외로웠던거야.

"동충하초 판매 모임 후 5개 시,도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속출했다"


뉴스에서 동충하초 사업설명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온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아니, 대체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 동충하초를 먹겠다고 이시국에 저런델 가. 저길 안가야 건강하게 오래살겠구만."


뉴스를 보던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런 사업설명회에서 퍽도 돈 될 사업이 나오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저걸 해서 돈이 벌린다고 생각하고 저런곳에 가는걸까. 질색팔색하는 내게 옆에 있던 엄마가 툭 던진말.


"야, 니가 몰라서 그래"

아니, 저 기사를 보면서 이 시점에 내가 모를게 뭐가 있는가. 우리 엄마가 지금 저 사업을 옹호라도 하려는 참인가. 기가 막혔다. 


"모르긴 뭘몰라. 딱봐도 약장수 약파는거랑 별다른거 없겠구만."

"아니, 저기 오는 사람들말이야. 사업하고 싶어서 오는거 아니고, 저거 사업설명회 아니라고"


그제서야 엄마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기가 막혔다. 엄마가 저런곳엘 가봤다는 것이다. 놀라서 화낼 타이밍도 못잡는 내게 엄마가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엄마가 뉴스화면에서 보더니 "딱 저렇게 생겼다"라고 말했던 그 장면(출처 한국일보)


때는 바야흐로 2월 말, 아직 코로나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기 전이었다. 동네에서 알고지내던 아줌마가 어딜 좀 같이 가자고 했다. '내가 언제 자기 손해보게 하드나?' 하면서 팔을 잡아 끄는데 거절할 타이밍도 놓쳐서 어쩌다보니 따라간 곳. 딱 뉴스에 나온것 처럼 생긴 곳이었다. 설명회장은 지하 1층이었다. 창문도 없는 퀘퀘한 지하에 책상과 의자가 빼곡히 놓여있었다. 몇몇의 젊은 남자 진행원들이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설명이 한참이었다. 그리고 사업을 할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할머니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우고 계셨다. 


새친구(?) 한명을 데리고 가면 데려간사람과 새로 간 사람 모두에게 큰 설탕을 한포씩 주었다. 브랜드는 없는 커다란 흑설탕이었다. 앉아서 설명을 좀 들으면 생필품을 저가에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집에서 많이들 쓰는 주방 세제가 천원, 두루마리 휴지 세트도 천원 그런 식이었다. 또 설명을 좀 더 들으면 소고기도 싸게 살수 있는 쿠폰을 줬다. 거의 반값에 주는 꼴이었다. 그런 쿠폰은 선착순이나 경쟁을 붙였고,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름 긴장감이 돌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진행하는 사람들이 만담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흥을 돋우는 곳이었다. 떡도 주고 음료수도 주고 과자도 주고. 이런 잔치집이 따로 없었다. 


집에 있어봐야 지루하게 시간은 가지 않는 할머니들이 심심하지 않게 모여드는 곳. 게다가 어차피 집에서 쓰는 물건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할머니들 입장에서는 이익보는 놀이방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생필품들을 싸게 주며 퀴즈놀이를 하다가 동충하초 같은 건강식품을 팔았다. 브랜드도 알수 없고 효능도 알수 없지만 꽤 비싼 가격이었다. 놀랍게도 그걸 사는 분들이 꾸준히 나왔다. 매일 그냥 가서 놀기 미안하니 팔아줘야 겠다 싶고, 남들도 하나씩은 팔아주는데 안사기 눈치도 보이기 때문이었다.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은게 아니라 외로움 때문이었다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은 욕심때문인줄 알았는데. 외로움 때문이었다. 말할 사람도 놀아주는 사람도 없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 그렇게라도 모여서 놀 수 있는것이 좋아서 찾아가는 곳이었다.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으로 바가지 쓰는 걸 알면서도 쓰고 노는 그런 곳이었다. 시골 할머니들의 쌈지돈은 외로움을 달래는데 쓰이고 있었다. 동네에 저런 곳이 세군데나 있다고 했다. 


처음 데려간 친구가 다음번에 또 오면 설탕보다 좋은 선물을 준다고 했다지만 엄마는 가지 않았다. 어딜 가는건지 알았더라면 한번도 가지 않았을 곳이었다. 엄마는 어쩐지 약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불쌍하다 했다. 젊은나이에 노인들 앞에서 말장난과 재롱을 피우며 약을 파는 사람도, 바가지를 쓰는줄 알면서 사는 사람들도. 모두 다 외로워 보여 불쌍하다 했다. 


내마음도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고 있지만 사회에서 일하며 쓰임받는 시간은 그대로인것 같았다. 나머지 시간은 자주 고장나는 몸을 데리고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시간인것만 같았다. 모이지 말라는 집회에 기를 쓰고 나오는 진짜 이유는 외로워서 였는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랑 여행을 많이 다니니까 나는 참 좋은 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년 365일중에 여행을 떠난날이 30일이나 될까. 나머지 330일은 일상이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에게는 지루하고 느리게 흐를지도 모를 날이었다. 특히나 전염병의 공격을 받는 요즘, 우리가 또 언제 그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설렘도 기대도 빼앗겨 버리고 두려운 날들만 계속되는 요즘. 어쩌면 이 시간이 우리보다 조금 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은 나이가 많으신 분들일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잘해야지, 아빠한테 잘해야지. 


동충하초 뉴스를 보다가 엄마를 생각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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