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로 시작한 글쓰기를 출간까지 :: 이 여행이 더 늦기 전에
조금씩 싹트던 미움이 주체할 수없이 커지더니 모두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나의 첫 해외 근무지 터키에서 나와 동료들은 대부분 힘들었다. 다만 나를 힘들게 한 건 다수였고 그들을 힘들게 한 건 나 하나였다. 서로를 지옥에 몰아넣고 휘젓는 시간이었다. 누구의 의도나 잘잘못에 상관없이 수적인 열세는 불리했다. 나는 조금씩 꾸준하게 미쳐가고 있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내 모습에 스스로 당혹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친구 영아가 추천해 준 것은 다름 아닌 글이었다. 읽는 글이 아닌 쓰는 글.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소개해 주며 글을 써 보라고 했다.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던 나는 토하듯이 글을 썼다. 행복하고 따뜻했던 기억을 뒤져가며 진짜 나를 상기시키려고 발버둥 쳤다. 놀랍게도 내가 쓴 글 몇 편이 포털 사이트의 첫 화면에 소개되었다. 조회 수가 껑충껑충 뛰어 알람이 울릴 때마다 아주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글이 모였다.
지옥에서 질식해 죽기 직전 한국행을 선택했다. 기권이었다. 우선은 살고 봐야겠다 싶어 항복을 외쳤지만 짙은 열패감으로 엉망진창인 날들이었다. 터키에서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는 사이 한국에 다녀오신 분이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나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란다는 메모가 담긴 책은 꼬맹이 여행자의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라는 책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책의 뒷장에 있던 출판사에 나의 글과 기획서라 하기엔 부끄러운 소개서를 보냈다.
약속 장소에 나간 이유는 출판 계약을 향한 떨림보다 그 사람의 얼굴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만나기도 전에 전화로 내 글을 사정없이 지적하던 사람. 그래 놓고 소재와 가능성에 관심이 있으니 만나자는 사람. 이 사람이 그럴만한 능력이 있기나 한 사람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확인차 나간 자리였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바로 나의 글 사부 최연 편집장님이다.
출간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시작한 것은 수업이었다. 시와 수필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분해했다. 시어와 행, 연을 구석구석 뜯어냈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언어영역 집중 과외를 받는 기분도 들었다. 산더미같이 쏟아지는 숙제들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빨리 내 책이 나오길 바라는 조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쓴 글은 열지도 못하게 했다. 읽고 필사하고 수업을 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이 사람은 대체 왜 자기 시간과 노력을 쏟아가며 이렇게까지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나 궁금했다. 결과물 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바심이 났다가 화가 났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어서 포기하려다가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7개월을 배웠다. 내 글을 다시 보라고 허락을 받은 날, 예전의 나의 글 들을 읽어보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던 걸까.
내 글이 이상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괜찮은 글을 써내는 건 다른 얘기였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전쟁 같은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지 1년 6개월 만에 나는 책을 마무리 지었다. 반짝거리는 문장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재능이 부러웠다. 그럴 때마다 구구절절하고 판에 박힌 나의 문장들이 자꾸 쪼그라들었다. 이런 글을 남에게 책으로 묶어 내보여도 될까, 나무에게 미안한 일을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는 밤들이 길었다.
처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을 때 "작가"라는 타이틀과 나를 연결 짓지 못했었다. 그저 힘든 시간을 피해 도망가는 도피처였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예약 판매를 시작으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죽지 않기 위해 글을 쓰던 터키의 밤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국에 돌아와 속앓이를 하며 글을 다듬던 고민 깊은 밤들도 지나간다. 분명 수도 없이 쓰고 읽었던 글들인데 온라인 서점에 올라온 부분들을 읽으니 내가 쓴 글인가 싶게 어색하고 간질거린다. 오래 정성을 쏟은 만큼, 좋은 사람들에게 가서 많이 읽히기를 소망해 본다.
다독다독 나를 끌어안던 브런치는 나를 출간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읽고 쓰며 위로하고 치유받는 사람들이 많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