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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보배 Oct 10. 2021

누나, 이상한 옆 팀 팀장님을 어쩌죠?

후배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후배 녀석이 선배인 나에게 물어왔다.


-     누나,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같은 과 후배 녀석한테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더니 시간이 괜찮으면 물어볼 게 있단다.


-    제 후배 한 놈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현장에 갔는데요, 일이 있든 없든 밤 8시까지는 사무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가 퇴근을 해야 한대요. 일이 있어서 야근할 때는 괜찮은데 6시 땡 하고 일을 끝내도 눈치 때문에 8시까지 있어야 하는가 보더라고요.


설마, 이 정도 고민을 털어놓자고 이렇게 진지한 건 아니겠지. 다들 그러고 있는 곳에서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할 배짱이 없으면 같이 그러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니까. 내가 신입사원일 때, 그러니까 대충 13년 전쯤 했던 고민을 하는 신입사원이 지금도 있는 걸 보면 노동 환경의 개선 속도란 느려 터진 게 분명하다. 법으로 주 52시간 같은 걸 외치면 뭐하나, 그 작고 작은 조직들을 쥐고 있는 자들의 허락이 없으면 피부에 와닿지도 않을 것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후배 녀석이 말을 이었다.


-    그런데 거기 옆팀 팀장님이 ‘일반직’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다, 일에 열정이 있어야 한다, 뭐 그런 마인드라서 일찍 들어가서 숙소에서 쉬고 있으면 방까지 와서 열정이 없어 보인다고 뭐라고 하신다더라고요.


역시, 회사생활에서 숙소 생활 옵션이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아마 현장 수당이라고 좀 더 붙여 주는 돈은 이런 사생활 침해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비가 아닐까. 어쨌거나 듣고 보니 흥미진진한 인물이 하나 등장하는 것 같다. 경험상 “열정” 같은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단어와 “일반직, 계약직” 같은 민감하고 계급적인 단어들을 함부로 운운하는 사람들은 많이 이상했으니까. 역시나, 뒤따르는 설명이 심상치 않다.


-    그 친구가 현장에 비슷한 나이 직원이랑 같이 밤 8시~10시 헬스장을 다니는데, 그것도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8시까지 야근 다 하고 나가는데도 ‘야 너는 생각이 있니 없니’ 이렇게 시작하면서 왜 열정이 없냐고 한참 뭐라고 하셨대요. 그리고 걔네 팀에 계약직 중에 그 팀장님 지인이 있는데, 왜 그 친구 일을 같이 더 안 해주냐, 돈 더 많이 받는 일반직이면 일도 더 많이 해야 하는 거 모르냐 뭐 이렇게 자꾸 뭐라고 하신대요. 이번엔 걔네 팀이 회식을 하고 왔는데, 사무실 앞에서 그 옆 팀 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른 분들 들어가시고 나서 그 친구만 불러서 또 한참을 혼냈대요.

-    뭐라고 했대?

-    너 요새 열정이 왜 이렇게 없냐, 자꾸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 매장시킬 수도 있다 뭐 그런 협박 같은 말도 하셨나 보더라고요. 이 친구도 자기 나름은 일도 열심히 하고 계속 부당하게 혼나도 잘 참고 버텼는데, 이번에 그런 이야기 듣고 멘탈이 정말 나간 거 같아요. 저한테 전화 와서 이게 맞는 거냐고, 자기 너무 힘든데 원래 다 그런 거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뭐 더 할 말이 없더라고요. 예전에도 통화할 때마다 힘들다고 했었는데 참고 버티라고 했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현타가 심하게 온 거 같아서요. 제가 함부로 조언하기 부족해서 누나한테 좀 여쭤보고 싶었어요.

-    아니 근데, 걔네 팀장은 옆팀 팀장이 제 새끼를 갈구는 걸 그대로 두고 본대?

-    아, 걔네 팀장님도 전문 계약직이시라서 그 옆 팀장님한테 크게 뭐라고 못하시나 보더라고요.


참, 진짜 열정 같은 소리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지인 취업, 사내 협박, 계약형태별 힘자랑까지 골고루 섞여있다. 진짜 더럽고 치사하다. 이 정도면 훈계를 넘어 직장 내 괴롭힘 아닌가. 세상엔 참 꾸준하게 이상한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제 막 이 사회에 진입한 꼬꼬마 어른이들은 여전히 그 이상한 사람들과의 대면에서 충격받고 좌절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디어에서 MZ세대가, 90년대생이 특별하다고 쏟아내던  기사들도 결국 일부였던 건가. 호기롭게 왔다는 90 대생들도 직장이라는 세상에 진즉에 와서 죽치고 앉아 있는 정신상태 이상한 가짜 어른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분명하다.


-    그 옆팀 막내도 일반직인데, 맨날 얘랑 서로 부둥켜안고 많이 울다가 결국 사표 냈다더라고요. 그래서 얜 더 심란해하는 거 같아요.

-    흠… 걔 몇 살이니?

-    28살이여.

-    그래서, 그 28살 신입 후배는 하고 싶은 게 뭐래? 복수래? 사표래?

-    아뇨, 복수라뇨. 그런 건 꿈도 안 꾸죠. 그냥 자기 팀에서 옆 팀 팀장님 괴롭힘 안 당하면서 일 잘 배우고 싶대요. 일 하는 건 재밌대요.


참 딱하다. 이 어린 영혼에게 나는 무슨 도움 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    야, 너는 입사하고 나서 이상하고 지랄 같은 사람 안 만나봤어?

-    아, 역시, 회사에 계속 다닐 거면 버티라고 해야겠죠?


아이고. 이쯤 되면 선배라고 이 녀석에게 전화해서 고충을 토로하는 그 신입 녀석도 참 딱하고 짠하다.

-    아이고, 그냥 니 후배한테 얘기하렴. ‘안 버티면 어쩔 거니. 그냥 버텨야지. 혹시라도 사표를 낼 거면 후다닥 내라, 한 살이라도 어릴 때’라고.

-    네?

-    왜, 너무 돌직구야? 아니면 뭐,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야?

-    아뇨, 아니, 저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이 친구가 여기 회사 입사하고 나서 부모님이 울면서 좋아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솔직히 저도 그냥 버틸 수 있으면 버티라고 하긴 했는데, 그게 이 친구를 위해서 맞는 답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들어주는 녀석이나 털어놓는 녀석이나 참 한결같이 비슷하다.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부모님이 저의 입사를 너무 좋아하셔서” 내가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버티겠다는 애들이 많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비겁한 효자효녀가 과거의 나 말고도 많다는 거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유다. 그러게 치면, 다른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면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좋아하실 텐데 왜 그렇게는 하지 않는 거지? 자기 자식이 고통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무조건 버티길 바라는 부모님들은 세상에 없다. 심지어 그 이유로 부모님들을 꼽는다면 보나 마나 당장 관두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내 새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그 미친놈 이름 대라고 회사에 쫓아오실지도 모른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이 아이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다음 편에 계속...)



당신 마음에도 평화를 주고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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