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하던 나에게 선배가 공유해준 마법의 주문
음성 기반 SNS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클럽하우스’에 가입했다. 어떤 형식으로 운영되는 플랫폼인지 알아나 두자 하는 정도의 관심이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직장생활에 관련된 주제를 다룬다는 방에 들어갔다. 마침 회사 생활을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앳된 목소리의 여자분이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다. 자신도 회사에서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지나칠 정도로 힘들게 하던 상사 때문에 직장을 한번 옮겼다고도 했다. 혹시 자신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힘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상담도 받고 있다고 했다. 살벌한 직장인의 세계에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자신의 몫을 잘 해내고 싶은 그녀의 고민을 듣다보니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구경만 해보겠다던 처음 생각과 달리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데 계속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으로 힘차게 외치세요. 꺼져 삐삐야!”
나는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착한’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그래, 뭐 나쁜 아이는 아니었지. 고집이 좀 셌지만 착한 아이였다.) (잘)해야 하는 것은 열심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조차 최선을 다해 안 했으니 착한 아이가 맞다. 자라난 환경도 ‘응답하라 1988’에 나오던 덕선이네 집 정도로 무난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내가 만날 이상한 사람이라고는 어느 학교에나 있는 이상한 선생님 혹은 몇몇의 특이한 애들뿐이었다. 이상한 선생님은 1년만 참으면 학년이나 반이 바뀌면서 피할 수 있었다. 아무리 길어도 3년이면 졸업이니까. 반 애들 중에서 이상한 애들이 있으면 같이 안 놀면 그만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에 어떤 모임에 나갔는데 사람들과 너무 안 맞는다 싶으면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됐다.
현실의 무자비함을 깨달은 것은 회사에 입사한 후였다. 입사 후 3개월의 신입사원 교육을 수료한 뒤 꽤 큰 조직으로 발령을 받았다.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처럼 대부분의 날들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를 묘하게 괴롭히고 든 것은 내 덕분에 막내 자리를 벗어난 바로 위 고참이었다. 그자는 소위 말하는 ‘군기’라는 것을 잡아보려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자꾸 무엇인가(보통은 쓸 데 없는 것들) 가르치려 들었다. 하지만 본인의 실력이 변변치 않아 내 앞에서 스스로 면을 깎아먹는 일이 잦았다. 그럼 또 무안해진 그자는 한층 더 호들갑스럽게 나를 볶아댔다. 어릴 땐 조금만 버티면 학년이나 학교가 바뀌었는데,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안정적인 고용으로 긴 근속연수를 보장’하는 회사를 골라 오지 않았던가. 버티고 피해서 끝나기나 할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지간하면 맞춰주려고도 했으나 변덕이 심하고 하는 짓이 심하다 싶을 만큼 어이가 없어서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다. 평소 같으면 말이 안 되는 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에 하루하루 도 닦는 마음으로 참아내곤 했다. 더 이상한 것은 그자의 이상한 작태를 두고 누구도 그를 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쟤가 처음으로 밑에 직원을 받아서 선배 행세 하려 든다’ 면서 귀엽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긴, 그자는 내 앞에선 저 세상 미친 자 같이 굴었으나 윗사람들 아래에선 한없이 고분고분한 아랫것이었다. 그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나를 보면서는 으레 신입사원이면 겪어야 하는 일을 겪는 다는 듯 다들 신경을 무신경했다.
이쯤 되면 정말 이상한 게 저자인지 나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정말 내게 문제가 있나?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가? 내가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성향을 가졌나? 내가 일머리 없는 사람인가? 그 자의 부조리함 보다 내 자신에 대해 더 깊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다른 선배 한 명이 나를 불러냈다. 못된 그자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입사도 진급도 빨랐던 덕에 그 미친 횡포를 피한 운 좋은 선배였다.
“그자 때문에 힘들지?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 그런 놈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거니까. 대신에 속으로 이렇게 외쳐봐. ‘꺼져 병신아’ 라고.”
“네?”
느닷없는 한마디에 벙 찐 내게 그가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옛날에 전 여친이랑 헤어지고 잊지 못해서 날마다 찾아갔던 적이 있어. 앞으로 정말 잘 할 테니까 한번만 다시 만나달라고. 그러다가 하루는 그분이 정말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딱 한마디 하더라고. 꺼져 병신아! 라고”
그 순간 그는 정신이 확 들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평소의 본인이 정말 싫어했던 못난 모습을 한 자신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 이후로 그는 때때로 그 한마디를 읊는다고 했다. 스스로가 못난 모습으로 변하려고 할 때, 깜냥도 안 되는 사람들이 그의 소신을 흔들려고 할 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참아내야 할 때. 마음속으로 그 한마디를 외치면 단단하게 마음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나를 위해 자신만의 마법의 주문을 선뜻 공유해 주는 것이 어떤 위로보다 따뜻하고 고마웠다.
선배에게 마법의 주문을 받은 날부터 그자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나를 괴롭힐 때면 속으로 힘차게 주문을 외웠다. 신기할 만큼 위안이 되고 그자가 한없이 더 우스워 보였다. 그렇게 버티다가 어느 날엔가는 적당한 틈을 노려 반격도 할 수 있었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더 이상 그가 나에게 뭐라고 하지 못 할 만큼의 위치도 확보했다. 그렇게 마법의 주문과 함께 미친 자의 횡포를 견뎌냈다.
뉴스나 기사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던 이상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많다는 걸 이제는 안다. 법적으로 따져도 나쁜 놈부터 인간성이나 예의에 비추어 나쁜 놈까지 장르와 정도가 다양하다. 대놓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주 나쁜 놈 보다 약한 놈만 골라서 못되게 구는 적당히 나쁜 놈의 괴롭힘이 진짜 찐 악(惡)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그들의 괴롭힘에는 놀라울 정도의 집요함과 끈기가 있다. 당하는 사람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갉아먹으며 마침내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는 자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조직에서 만난 그자가 내 인생 1대 삐삐였다. 그자 이후로도 끝없이 삐삐들을 만나게 될 것을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언젠가 역대 삐삐들을 소개하는 글을 쓸까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가끔씩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새로 들어간 조직에서 주눅들고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하여 모두 옳지 않다. 그러니 진짜 도움이 될 만한 말을 골라 듣고 말 같지도 않는 소리는 걸러 들어야 한다. 그것을 깨닫기 까지 나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나름의 순화를 거쳐 “꺼져 삐삐야”를 외치라는 나의 조언에 클럽하우스의 그녀는 어린 시절의 나만큼이나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주문이 그녀에게도 힘이 되길 바란다. 회사에서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를 만날 때 마다 회사를 옮길 수는 없으니까.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도 분명히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삐삐들을 하나씩 헤쳐나갈 연륜 같은 것도 분명히 쌓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도 아껴둔 마법의 주문을 그녀에게 전한다.
*나쁜말을 순화하기 위해 급히 삐-처리를 하고 보니, 죄 없는 말괄량이 삐삐에게 험한 소리를 한 것 같아 미안해 진다. 동심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귀여운 꼬마아가씨 삐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