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골에 온 이유
일본의 스시 장인 지로의 이야기 이다.
그는 75년 동안 스시를 만들었는데, 열 개 남짓한 의자가 전부인 그의 가게에서는 오로지 스시 밖에 팔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스시를 맛보려면 최소 한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로는 말한다.
장인은 특별해지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할 뿐.
그러나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며 발전합니다.
오직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라는 이 말이 새롭게 와닿는다. 현대인이 염증을 느끼는 삶을 비유할 때 다람쥐 챗바퀴 도는 것과 같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지로가 말한 바와 같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빚어낸 평범한 스시 한 조각과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장인은 스스로의 스시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평범한 스시를 맛보는 사람들은 그것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느낀다. 이 한 조각의 스시가 담아낸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는 얼마나 거대한 우주가 있는가. 은하계 안에 수 많은 별들이 존재하듯, 스시 한 조각 안에도 얼마나 많은 별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지로는 스시를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매일 한 조각의 우주를 창조하는 신이 아닐까. 성경은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까닭을 사랑 때문이라고 말한다('보시기에 좋았더라') 사랑 때문에 세상을 창조할 수 밖에 없었던 신처럼 스시 장인도 사랑에 이끌리지 않고서야 75년을 한결같이 손바닥 위에서 생선의 살을 빚을 수 있었겠는가 싶다. 평범한 삶이 지루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평범한 삶이 지옥이다. 지옥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지하 단칸방에서 나와 마천루 꼭대기의 삶을 꿈꾸는 것일 수 없다. 조그만 생각해보면 그곳이 어디든,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삶을 살든, 사랑하지 않는 삶이 지옥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시골에 온지 일곱 달이 지난다. 이곳에 올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한편으로 격려하면서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말 줄임 응원을 건넨다. "좋은 시간이 될거야. 잘 지내!"(당분간 잘 쉬다가 올라와!) 어이쿠. 하지만 나는 이곳에 쉬러 온 것이 결코 아니다. 대단한 걸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여기도 사람이 산다. 이곳의 삶도 평범하다. 하지만 분명 다른 게 있다. 매일 아침이나 해질녁, 풀밭인지 텃밭인지 헤아릴 수 없는 흙 위를 샅샅이 살피고 누비며 새로운 존재와 마주한다. 나에겐 그 풀 한포기가 낯선 우주와도 같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머나 먼 그 우주가 나에게 말할 때(우리말로) 경이로움은 사랑으로 흐른다.
온가족이 모여 잠자리에 들기 전, 가끔 봄이가 얄궂은 질문을 던진다. "아빠,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 누굴 가장 사랑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아빠는 아빠를 가장 사랑해(가장 사랑하고 싶어)
그렇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