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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머대디 Nov 22. 2022

고흥에서 만난 퍼머컬처 실천가

고흥살이 이야기

고흥에 와서 가장 감사한 일은 마을의 작은 교회를 통해 좋은 어르신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기 위해 걸어서 처음 마을 교회에 간 날이 떠오른다. 어린이들이 따로 예배를 드리거나 놀만한 공간은 처음부터 없었기에 우리는 세 아이를 데리고 조심스레 예배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몇 분 되지 않아 아이들의 비비 꼬는 소리로 난처해졌다. 아이쿠 어쩌나...


그런데 예배가 끝난 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어르신들은 하나 같이 우리 가족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모두들 예배 중 들린 아기 울음소리에 잘 못 들은 줄 아셨다는 것이다. 한 어르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교회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게 몇십 년 만이요. 정말이지 너무 고맙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본다. 우리는 결혼하여서부터 세 아이가 곁에 있는 지금까지, 아이들 덕. 분. 에. 얼마나 많은 고마움을 경험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보석 같다. 아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이 어르신들께 아낌없는 환대를 받고 있으니까. 그러니, 귀향한다면, 혹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이 어릴 때 터를 잡는다는 것은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의 여전도회장으로 섬기고 계신 이 권사님께서 우리 가족을 집으로 초대하신 것이다. 권사님 댁은 교회 주변에 비선이라고 하는 마을인데, 마을길을 따라 가장 높은 언덕 끝자락까지 올라가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아이들 데리고 가서 모처럼 재롱 보여드리며 기쁘게 해 드리자는 마음이었는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그곳은 정말이지 내가 배우고 실현해 보고 싶었던 퍼머컬처의 원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 전 경매로 허물어져 가는 집을 구입하여 뼈대만 남기고 하나하나 고치고 가꾸고 보살핀 흔적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없고 쓰레기 더미였다는 이곳은 이제 수많은 나무와 꽃 풀과 벌레들이 저마다 제자리를 찾은 듯 평온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 분들은 퍼머컬처나 먹거리 숲, 숲밭 등등의 말들을 들어본 적이 없으시다. 하지만 이미 이런 것들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그렇게 살고 계셨던 것이다. 


영월의 샛강 김영미 선생님의 말씀이 바람처럼 귓가를 스쳤다. “퍼머컬처가 뭔지도 모르고 사시던 어른들 중에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들이 하던 게 퍼머컬처라는 걸 알게 된 분이 많지!” “다른 거 다 접어 두고 그냥 시골 어르신들 집터에 조그맣게 가꾸시는 텃밭을 잘 관찰해보세요. 거기 다 있으니까


그렇구나! 퍼머컬처는 책에 나오는 관념이 아니다. 사실 퍼머컬처는 어떤 특별한 뭔가도 아니다. 퍼머컬처는 '사랑'이다. 사람을, 살아있는 꽃나무벌레들을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하며 살면서 다른 것에 욕심내지 않고 있는 것에 족함을 누릴 줄 아는 넉넉한 마음 말이다. 그런 시선으로 살고 보살피는 것. 그것 자체가 퍼머컬처이다. 다시,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써 퍼머컬처로부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나 철학으로써 퍼머컬처는 다름 아닌 사랑이지 싶다. 나만 먹고 살 게 아니라 같이 더불어 나누며 사는 마음. 퍼머컬처는 그렇게 시작하고 그것으로 완성이다. 


얼마 전 권사님 댁을 다시 찾았다. 권사님의 남편 되신 장선생님께선 오늘도 아낌없이 감이며 유자며 아름답기 그지없는 열매들을 소쿠리에 담아 주신다. 그분은 내가 고흥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퍼머컬처 실천가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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