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살이 이야기
고흥에 와서 도시에서 살 때와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마 첫번째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놀러 나간 아이들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 도시에서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을 엄마나 아빠 없이 집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이십미터 남짓한 복도와 출입구를 나서면 곧바로 차들이 오가는 주차장이요,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어린이집과 어린이집 옆 놀이터 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집에서 살림을 하다 보면 문득 집이 조용하다는 걸 알아챈다. 보통 가을이는 그 시간 낮잠을 자고 있고 다른 두 아이들은 밖에 나간 것이 틀림 없다. 한낮에 나간 아이들을 찾을 새도 없이 살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서쪽 산 너머로 넘어갈 기세이다. 그제서야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봄아! 여름아!”
그렇게 몇 번 허공에 대고 소리 치고 나면 저 멀리 어디선가 공기를 타고 메아리 쳐 들려 온다.
“응 아빠!”
오늘은 이웃집 호영이 어머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민소매 차림의 여름이의 손을 잡고 걸어 오신다.
“늦가을 이렇게 추운데 여름이는 자기 혼자 아직도 여름인가 봐요”
낸들 어쩌랴. 입혀 내보내 놓으면 돌아올 때 보면 벗고 오는 것을. 남이야 속사정을 모르니 아이를 너무 안 챙기는 아빠가 되어 버린들 별 수가 없다. 그제서야 털옷을 한겹 두겹 입혀 놓고 나니 다시 주섬주섬 신을 신는다고 걸터 앉는 여름이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 하늘이 참 예쁘지 않아?”
“뭐라고?”
“하늘 말야. 예쁘지 아빠? 어? 저기 텔레비전이 있네?”
그제야 겨우, 네 살 아이의 말뜻을 알아채고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 본다. 파아-란 하늘에 흰 물감을 툭툭 묻혀 놓은 듯 구름이 찍혀 있다. 정말 네모난 텔레비전 모양의 구름도 보이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에서야 아이들이 잘 배우고 있음을 느낀다. 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이 많아 다행이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