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치이다. 나 어릴적 살던 동네에서 가끔 시내라도 나갈 일이 생기면 겁부터 났다. 시내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안으로 한블럭 두블럭.. 왼쪽 모퉁이 한번 오른쪽 모퉁이 한번 돌고 나면 그대로 미아가 된다. 돌았던 모퉁이로 내달리고, 지났던 블럭을 쫓아가듯 달려나가 보면 거긴 내가 처음 출발했던 그곳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디를 가든 오로지 아는 길로만 걸었고, 새로운 길이나 처음 마주하는 골목으론 들어서지 않았다. 내 안의 네비게이션은 빠른길 찾기 기능이 없었던 것이다.
대학생이 된 후 생애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도전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국내 비행기조차도 타 본적이 없었다. 서점에서 여행관련 책을 사서 읽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았다. 비행기 타는 법부터 검색하여 머릿속에 숙지했다. 여러 나라와 나라를 열차로 이동하기도 하고,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기도 했다. 말 그대로 신세계 였다. 행복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여기 그대로 있는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몇 년 후 나는 아마존에 가기 위해 다시 한번 비행기를 탔다. '천사의 폭포'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마을을 찾아가는데 일수로만 나흘, 비행만 서른 세 시간을 하여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6개월을 지냈는데, 미지의 인디오 마을을 탐험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몇날며칠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는데, 우리가 가야할 가장 먼 마을까지 가기 위해 일곱개의 폭포를 건너고 마지막 도보 루트로 세 시간을 걸어야만 했다. 도착해서 만난 풍경 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풍경은 어느 노할머니가 선교사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었다. 그 할머니는 "여기까지 찾아와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지금 나는 세 아이의 아빠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다 알겠지만, 내 삶은 거의 대부분 아이들이 차지하는 것 같고 '나'라고 하는 개인은 저만치 있거나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다가 일년에 한두번쯤, 이삼년엔 한두번쯤, 그때의 일들을 떠올려 보곤 한다.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마주했던 거대한 설산이 떠오르고, 아마존 검은강에 아른거리는 별빛이 떠오르고, 어둠을 뚫고 그 위를 달리는 후치선 갑판에서 샤워할때 불어왔던 바람의 느낌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면 꼭 한가지 질문이 내 안에 남았다.
'도대체 거기를 어떻게 다녀온 거지?’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일들을 다시 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곳에서 마주한 세상을 떠오르면 여전히 가슴이 뛰지만, 그보다는 어릴적 시내 한복판에서 마주한 당혹감과 두려움이 더 크다. 다시 하라면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때를 다시 잘 복기해보면, 사실 특별한 용기가 생겨서 그 길을 걸었던 것 같지는 않다. 뭐랄까. 내 마음의 열망에 집중했다고나 할까? 그 열망이 나를 길 위에 내던졌다. 새로운 골목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그것이 전부이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마음,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였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여행의 출발을 준비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일지 모르겠다. 자꾸 내 안에 ‘저 길의 끝엔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든다. ‘과연 저 길이 어디로 향해 나 있는 걸까?' 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지난 날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저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저 길은 어디로 나 있는 길일까? 를 묻고 한 여행이 아니었다. 열망. 열망에 집중하고, 그저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길에 들어서야만 알 수 있는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