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한 줄
동네 마트에 갈 때면 항상 옆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곤 했다. 그 길이 마트에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마트를 가기 위해 옆 아파트 출입구를 향했는데 출입문이 세워져 있었다. 아파트 주민만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카드를 대거나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열리는 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단지를 돌아 마트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도 출입문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우리 아파트는 외부인의 통행로가 아닙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고, 엘리베이터 게시판에는 아파트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출입문을 만든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지금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 이 장소는 단독 주택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동네 주민에게 주택 사이의 골목길은 마트나 시장, 옆 동네로 가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이제는 길마저 막고 있는 형국이다. 이전 지름길은 사라지고 대단지를 빙 돌아서 걸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얼마나 부당하고 폭력적인 일인가.
장소에 대한 권리를 부정하는 상징적 행동들(내쫒기, 울타리 둘러치기, 문 걸어 잠그기, 위협이나 욕설 등)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되곤 한다. ‘여기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다. 당신은 이곳을 더럽히는 존재이다.’
-<사람, 장소, 환대> 중에서
<사람, 장소, 환대>에 따르면,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며,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곧 이 장소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파트 단지를 지나칠 권리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치솟는 아파트 매매가만큼이나 아파트 구성원의 이기심도 치솟는 듯하다. 단지 밖 사람들을 안정성을 해치는 외부인으로 취급하고 나와 함께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동네 주민과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를 향한 적대를 거두어들이고 그에게 접근을 허락”해야 하지만 갈 길은 막막하다.
*한국농어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