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uDu Apr 15. 2021

#77.용기내봐요


오랜만에 예전 광고대행사와 협력관계로 일할 때 친하게 지내던 부장님을 만났다. 관계가 없어지고 나서 자연스레 만남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서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터라 간간히 연락하면서 자칫 끊어져갈 수 있는 인맥을 유지해갔다. (인스타가 그런 면에서 참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머, 진짜 우리 몇 년 만이야, 잘 지내셨어요?"


반가운 마음에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그간의 지나온 시간들을 압축해가며 몇 문장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가 되는 하이라이트 소재들만 쏙쏙히 골라서. 못 본 지 3~4년은 됐는데 단순 몇 문장으로 근황이 압축되니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지만, 자연스레 현재의 상황에 대해 더 심도 깊은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원래라면 음식에 진심인 편인데, 이 날은 왜인지 모르게 미슐랭에 선정된 레스토랑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반이나 남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죽하면 직원이 와서 혹시 음식이 입맛에 안 맞으시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사실 이 언니를 만나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도, 여자 팀장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직업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지속되고 있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니까. 


그녀는 들으면 알만한 광고대행사에 일하고 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그녀는 어린 딸을 둔 일명 '워킹맘'이다. 아무래도 힘들기로 유명한 광고대행사에서 그것도 팀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야근은 부지기수. 그런 그녀의 삶의 상태가 궁금했다. 지친 일상으로 퇴직을 고민할 수도 있고, 앞으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그녀만의 해답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아기도 있고, 일하는데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주변의 많은 워킹맘들을 보며 힘들어하는걸 옆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녀 또한 워킹맘의 고충에 대하 온전히 공감하고 있지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부드럽지만 단단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저 문장이 참 좋았다.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면서 살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길다. 물론 육아라는 것이 희생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건강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본인의 행복도 육아의 범주에 있다는 것이 좋았고 응원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이런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그런지 질문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팀장님, 팀장님은 미래에 대한 설계가 되어있어요? 사실 저는 앞으로 10년 후의 저의 삶이, 아니 10년도 길다. 5년 후의 저의 모습도 상상이 잘 안돼요. 그게 답답하고요"

"음, 사실 저도 10년 후에 어떤 모습일지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게 답인 거 같아요. 내가 무슨 일을 앞으로 할지는 모르겠지만, 준비가 되어있다면 기회도 잡을 수 있는 거 같아요"


함께 일할 때도 똑 부러지게 일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었는데, 그녀의 대답이 1+1=2와 같은 명확한 답이 아닌 두리뭉실한 대답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너무나 선명한 답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현실에 대한 변화는 주지 않은 채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본인의 점프업을 위해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마흔이 넘으면 이직이 더 힘들어요.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자기 의심을 많이들 하는데, 생각보다 인간은 잠재력이 커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저도 제가 팀장직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처음엔 팀장직을 고사했어요. 근데, 제가 팀장 역할을 어느새 하고 있더라고요.

용기내봐요. 할 수 있어요"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야, 뭐든 해봐"라는 말은 자주 했지만, 그녀가 던진 저 문장이 참 다르게 느껴졌다. 안주하고 싶고, 더 편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던 내 마음에 다른 공간을 만들어 준 기분이었다. 아직 내가 정말 도전할 수 있을지 온전한 용기가 가득 차진 않지만 조금은 깊숙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내 삶과 밀접하게 계속 둘 예정이다. 


용기내보자, 그게 무엇이든.


매거진의 이전글 #76.어쩌다 보니, 이 나이가 된 것뿐인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