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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u Aug 02. 2021

#79.언니는 능력있는 사람이자나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자리에 앉아 잠시나마 조금이라도 올랐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식창을 열어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려면 아직 10분이 넘게 남았는데 마치 회의라도 잡힌 것 마냥 본부장님 방 앞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미어캣처럼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동료들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 메아리처럼 똑같은 질문의 반복일 뿐.

"무슨 일이야?"

영문도 모른채 마치 홀린 듯이 직원들은 남은 공간을 최소화하려고 애쓰듯 본부장님실을 둘러싼채 한 곳에 자석처럼 따닥따닥 붙었다. 


본인에게 갑자기 날아든 회사의 해고통보를 전직원에게 공유하는 자리. 불안한 기류들을 조금씩 느낄 때 쯔음 역시나 회사의 결정은 냉담했고 빨랐으며 거리낌없었다. 놀란 직원들은 모두 정신이 탈출한 듯 멍한 동공속 초점 흐린 눈빛들을 보내고 있었고, 어쩔지 모르는 각자의 표정들은 마스크 안에서 무방비로 해제되고 말았다. 한 문장의 말이 겟아웃에 나온 최면에 걸린듯이 고요한 일상을 저 깊숙한 끊이없는 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혔다. 본부장님 방에서 나온 직원들은 마치 발자국 소리마저 민폐인것마냥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잠시 지금 무슨일을 해야할 지 모르는 버퍼링의 상태. 마주친 동료들의 눈빛속에 그려진 감정들은 모두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누구하나 말을 꺼내지도, 그렇다고 마땅히 해야할 말도 찾지 못했다. 이렇게 퇴사하는 임원들이 처음은 아니였지만 역시나 적응되지 못하는 일들 중에 하나였다. 


몇몇 직원은 자리를 비운채 어디론가 나갔고, 바로 일상으로 빠져나온 직원들은 했던 업무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뒤숭숭하게 떠도는 무중력의 생각 속에서 어떤 것에도 중점을 둘 수 없었다. 그렇게 호감을 갖지 못했던 본부장님이었지만 그래도 이별은 슬프긴 슬픈일이었다.


퇴사한 동생이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연락이 왔다. 이게 무슨일이냐며 나의 상황과 감정을 교류할 때 쯔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라는 걱정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도, 정년 퇴임이라는 단어도 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가는 30대 후반의 직장인. 이런 나의 큼큼한 감정상태를 알았는지 동생이 갑자기 가슴뭉클한 카톡을 보내왔다. 


"언니는 능력있는 사람이자나"


이 말에 무슨 근거로 그런말을 하냐느니, 위로의 말은 필요없다 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 말이 너무 좋아서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머쓱해하는 내 모습이 보였는지 그 동생은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언니는 늘 발전하려고 하는 사람이잖아"

배움 강박증이 다소 있는 나로써 이런 나의 모습이 그 친구에게는 그래도 좋게 보였나보다. 떨어져 가는 나의 열정에 그래도 '조금 더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라는 의지가 올라왔다. 먼지덮힌 나의 열정에 선선한 바람을 '후' 불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쁜 소식과 함께 날아온 좋은 변화점. 그래서 사람이 항상 나쁘라는 법은 없나보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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