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선호 국가 캐나다의 딜레마
세계 주요국이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사회가 출산율 0.67%대에 접어들었다. 중세 흑사병 시대 수준의 출산율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보다도 낮은 수치라고 한다. 이러한 인구 절벽에 대하는 다양한 방안 중에는 출산율 증대와 함께 이민 정책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강력한 이민 정책을 통해 인구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저성장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캐나다의 사례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민 친화적인 국가이자 이민자들이 자국 사회에 통합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인 캐나다는 지난 20여 년간 경제 활성화와 인구 증가를 이유로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펼쳐왔으며, 지난해 6월 드디어 인구는 드디어 4000만 명을 넘어섰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영주권 소지자 등의 영구 이민자 유입으로, 연간 이민자 수는 40% 이상 급증, 2023년에만 43만 1천645명을 기록했다. 이는 노바스코샤 주의 수도 핼리팩스의 전체 인구와 거의 같은 숫자이다. 특히 지난 3년 동안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기존의 요구 사항과 함께 노동력 부족까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렇다고 아무나 기회를 주고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값싼 저숙련 이민자를 유치하던 캐나다는 1970년대 도입한 ‘다문화주의 이민정책’을 거쳐 고숙련 인력 유치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세계 곳곳의 고급 인력을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해외 우수 인재에게 영주권을 적극 제공하는 ‘패스트 트랙 이민정책’으로 캐나다 엔지니어의 41%가 이민자이며,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창업가의 33%, 기초과학의 근간인 물리학자의 36% 등 주요 부문에서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3년 내 145만 명 새 이민자 유치
그런데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이민 확대를 강조하던 자유당 정부가 지난 2월 갑자기 이민자 목표 동결 및 유학생 축소 정책을 발표했다. 꾸준히 늘려오던 목표 이민자 수를 2026년까지 동결하기로 했으며, 당장 3월 말까지 2개월간 유학생 비자를 전면 금지했고, 앞으로 2년 동안 국제 학생 비자 발급을 지난해보다 35% 감소한 36만 개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밖에 캐나다 이민부(IRCC)는 유학 허가를 위한 캐나다 생활비 증명(cost-of-living requirement) 금액을 1인 신청의 경우 1만 달러에서 2만 635달러로 상향하고 추가로 첫해 연도의 수업료와 여행 경비도 입증해야 하는 등 자격요건도 강화했다.
보수당 정부도 아닌 이민 수용의 확대가 차별화되는 정책 기조라고 강조하던 자유당 정부에서 갑자기 정책적 회귀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민자 확대 정책을 바라보는 캐나다 국민들의 시각이 최근 회의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는 여전히 사회 전반에 걸친 근로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민자 유치를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민 확대가 국가 경제 및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캐나다인들조차도 이민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며 늘어나는 이민자 수에 비해 정부의 정책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정책 조사 기관인 환경 관리 연구소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이민 유입이 너무 많다'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44%로 지난해 같은 조사(27%)에 비해 비율이 크게 늘었으며, 지난해 9월 나노스 리서치의 조사에서도 정부가 이민자 유치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53%로 지난해 40%와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이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주택문제와 고물가 현상의 원인으로 유학생과 외국인 근로자 등이 지목되면서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민자 증가에 따른 부정적 인식 늘어
이민자 증가로 인해 표면화된 첫 번째 문제는 주택난의 심화이다. 대량 이민을 수용하는 정부 정책은 주택 공급과 수요 간 기록적인 불균형을 만들어 냈다. 늘어나는 이민자로 인해 주택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주택을 비롯한 기반 시설 공급 속도는 이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택 가격의 상승과 살인적인 렌트비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심각해진 물가 상승과 맞물려 가계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야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캐나다는 G7 국가 중 가장 심각한 주택 부족을 겪고 있는 국가 중에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는 의료 및 교육 시스템의 붕괴이다. 캐나다는 전 국민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세금 문제와 맞물려 캐나다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민자의 급격한 유입은 가뜩이나 불만의 요소였던 의료 체계의 불안요소를 증폭시켰으며, 교육 부문에 있어서도 증가하는 신규 유입 학생 수용에 인프라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해 의료와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 양과 질의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은 이러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돌출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외국에서 태어난 의사와 주택 건설 인력의 꾸준한 유입이 의료와 주택문제를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던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 공급을 늘리거나 의료 서비스 제공을 개선하기 위한 현실적인 계획이 없다면, 매년 50만 명씩 늘어나는 인구 증가는 이 두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캐나다인들이 이민에 대한 국가적 기대를 버리지는 않고 있지만, 의료시스템, 주택 및 기타 인프라의 부족 속에서 빠른 이민 수용 속도에 대해 긴장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보이자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선 셈이다. 지난 1일 '2024~2026년 이민 계획'을 발표하던 마크 밀러 이민부 장관은 2026년 이민 목표를 동결한 데 대해 "신규 이민자 수를 안정화함으로써 주택 공급, 기반 시설 계획, 지속 가능한 인구 증가의 적절한 균형을 찾고자 한다"라고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주택, 의료, 교육 등 사회 인프라에 대한 우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직까지 정부기관이나 전문가들이 언급하지 않는 불안요소 중에 일자리 문제가 있다. 고령화된 베이비붐 세대를 대체할 노동력으로써 이민자가 지닌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급격한 인구 유입과 캐나다 경제의 수용능력을 감안했을 때 결과적으로 실업률의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2차 산업의 비중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제구조를 지닌 캐나다는 늘어나는 이민자를 수용할 일자리가 충분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자유당 정부가 제시한 이민자 수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급 인력 중심의 경제 활동 이민과 함께 비숙련자의 이민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2019년도 자유당 정부의 신규 이민자 구성을 보면 경제 활동 이민(Economic class): 58%, 가족 초청 이민 (Family Sponsorship): 27%, 난민 이민 (Refugee Class): 15%를 유지하면서 가족 초청 이민과 난민 이민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경제 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비숙련 업종에 진입하면서 기존의 노동자들이 투잡, 쓰리잡으로 유지하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일반 정규직 노동 시장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알바의 대표격이었던 팀홀튼, 맥도널드는 물론 마트 카트 수거일까지 이민자가 점거하고 있다. 인사담당자 책상에는 수십수백 장의 이민자의 이력서가 쌓여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업종이나 직종을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 이로 인해 임금의 상대적 하락 또한 야기하고 있다는 불만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 선호지역 지역 편중 현상도 문제로 지적된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용이한 대도시 중심으로 이러한 주택난과 함께 이러한 일자리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높아진 선호 지역 밀집의 영향의 결과, 최근 3년간 72% 이상의 신규 이민자들은 온타리오주, BC 주 그리고 앨버타주에 정착했다. 대부분의 신규 이민자들이 대도시로의 이민을 원하며 대도시로의 이민 신청자들이 몰림에 따라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택/의료/교육/일자리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비숙련 업종 중심으로 실업률 우려
그러나 실생활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캐나다가 자랑으로 여겨왔던 다양한 문화적 통합에 대한 수용적 입장의 변화에 대한 징후들이다. 한 마디로 드러나지 않는 거부감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나라별 이민자 구성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경제 활동 이민(Economic Class)의 경우 영어에 친숙한 나라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특정 국가에 편향되는 현상을 보인다. 2019년도 나라별 이민자 구성을 보면 총 34만 명의 이민자 중 25%, 약 86,000명의 이민자가 인도 시민권자였으며 중국은 9%로 30,000명, 필리핀은 8%로 27,000명이다. 참고로 한국은 1.7%로 9번째였다.
특정 국가의 이민자 편중 현상은 수치로 보이지 않는 여러 사회적 부작용을 동반한다. 캐나다 사회 또한 문화적 다양성을 통합하고 유지하는 합의된 규범과 풍속 등이 있어왔는데. 우리가 흔히 선진 시민 의식이라 일컫던 이러한 문화적 관습, 규범 등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예컨대 문란해지는 교통질서나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사회적 합의에 대해 벌어지는 (집단적) 일탈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워낙 다양성과 다원주의적 관점을 드높이는 캐나다인들이기에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특정 국가들의 이민자 커뮤니티가 거대해지면서 '도대체 내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정도로 국가 혹은 사회의 정체성마저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에 새로 유입된 이민자들이 겪게 되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캐나다는 이민자가 증가함으로써 GDP가 증가되는 효과를 보고 있는지 모르지만, 생활고를 겪는 이민자들의 환경은 개선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근 대학 교육을 받은 캐나다 이민자 중 4분의 1 정도는 캐나다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가 더 이상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국가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회 통합에 대한 의구심 증가-이민 선호 국가 캐나다의 딜레마
대부분의 캐나다 국민은 이민 정책이 국가 경제에 실익을 가져다준다는 의견에 동의하며, 캐나다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젊은 이민자의 수용이 기성세대 지원과 세수 증대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너무 많은 이민자의 허용은 주택 위기를 초래하고 의료 및 교육 시스템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이로써 장기적으로 캐나다 사회의 전반적인 경제 위기와 문화적 통합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이민 선호 국가 캐나다의 딜레마가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인구 절벽의 위기에 처한 국가에 있어 이민 정책은 어쩌면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과 노령화 문제의 대처 방안 수립이 필요한 시기에 캐나다의 딜레마 또한 타산지석으로 삼기에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