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의문이 든다.
정말 모든 순간들이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거고 소중한 걸까?
내가 요즘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희망 품기와 애씀과 게으름과 실망과 포기, 얼마간의 우울과, 다시 희망 품기와 애씀의 반복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나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살아간다고. 나도 그냥 별로 다를 게 없는 그저 나약한 한 사람일 뿐이라고. 인간이라는 군집의 따뜻한 소속감에 안도할 때도 있긴 하다.
몽환적인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나, 무엇보다도 마음을 두드리는 에세이나 시에 흠뻑 젖어 있을 때, 내 현실은 저 멀리 밀쳐놓고 난 그 위로와 달콤함에 기대어 거짓 평화를 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그 희뿌연 안개를 휘휘 걷어내며 한 걸음 훌쩍 보폭 크게 내딛으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온몸으로 와락 달려드는, 지금 여기에서의 내 척박한 상황! 난 그만 기운을 잃고 풀썩 쓰러지고 만다. 그러고선 깨어나는 통증이 너무 커서 소리도 한 번 못 지르고 그냥 늘어져 있게 된다. 거부와 부인의 진통제 주사를 맞지 않으면 말이다.
아니 벌써? 내 삶의 끄트머리, 세상과 은둔의 경계선, 그 언저리에 놓여있다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
"기적은 간직하고 실망은 툭툭 털어내면서 맘 편히 삽니다." 이렇게 확신에 차서 적어 내려가던 날이 있었음을 또렷이 기억하는데,..
아무리 의연하게 그럴듯한 언어들로 지금의 내 심리상태를 재구성해 봐도 내 마음이 요즘 그리 편한 건 아니라는 걸 덮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 마음이란 걸, 작정하고 들여다 보아도 잘 모르겠어서 신경학자, 두뇌학자들의 강의를 열심히 들어 본다. 뭔가 이해한 것 같아 반짝거리던 마음의 빛이 잠자리 이불조차 걷어차지 못하게 하는 무릎 통증에 금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스러져 버린다.
다짐이란 걸 나 혼자서, 가끔은 말을 섞는 누군가와, 아님 브런치에, 풀어놓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영 부끄러워서 이제 결심 비슷한 정서나 낱말에는 아는 척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냥 살아지는 게 삶이 아닌데, 어쩌면 좋나?
그래서 그냥 납작 엎드린다. 또다시.
지금의 엎드림이 이런 순간의 가치를 혹시 또다시 찾아줄지도 모를 일이지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