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한 청년 농부의 출근길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섬의 서쪽 끝에 있는 작은 농어촌 마을이다. 섬의 가장 바깥쪽이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항상 바다가 있는데, 출근길 역시 바닷길을 끼고 따라 쭉 걸어야 한다. 아침 일곱 시부터 나갈 채비를 한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버스가 한 대 있기는 하지만, 버스 배차시간이 한 시간이라 여덟 시에 오는 버스를 놓쳐버리면 큰일이다. 아홉 시 출근인데 다음 버스가 아홉 시나 되어야 오는 것이다. 그 여덟 시에 오는 버스마저도 시간표와는 달리 제멋대로 오고가는 바람에 다시 돌아 걸어가는 일이 몇 번 있고나서는 차라리 그냥 마음 편히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선크림을 두껍게 바른 뒤, 커다란 백팩을 메고 편안한 운동화를 챙겨 신는다. 시원한 물 한 병과 가는 길에 먹을 사과 한 알 손에 챙겨 쥐면 출근 준비는 끝이다. 나는 발걸음이 조금 늦는 편이라 부러 더 서둘러 걸어야 한다. 문득 ‘옛날에는 꼬박 한두 시간씩 걸어 국민학교에 다니고 그랬어.’ 했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 역시 이른 아침부터 한 시간 반 거리의 흙길을 따라 걸어 가야하니, 꼭 그 옛날 국민학교 학생이 된 것 같다. ‘그 때 그 아이들은 어떤 기분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학교 가는 그 먼 길을 매일 걸었을까’ 생각하면서 아침 바람을 맞는다.
봄이 오기는 온 모양인지 며칠 새에 바람도 제법 가벼워졌다. 길가에는 유채꽃이 잔뜩 폈고, 보라색 들꽃들도 중간 중간 예쁘게 폈다. 꽃 이름도 많이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사실 들꽃 이름 같은 것은 아직 잘 모른다. 이 들꽃은 꽃 한 다발 안에 연보라부터 진보라까지 송이마다 다 다른 색을 띄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예쁜 것 같다. 들꽃을 보니 사람들도 다 모두 자기 색을 가지고,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 조화롭고 예쁠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별 것 아닌 유치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에는 자연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다.
걷다보면 바람을 타고 온 바다 냄새가 콧잔등에 스미는데, 길이 바다와 가까워질 때에는 파도 소리도 들린다. 그러고 보니 스물여섯 살의 내가 이렇게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출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러자 제법 익숙하게 느껴졌던 이 제주도 풍경이 다시 낯설어지고, 이렇게 걷고 있는 나조차도 문득 다시 낯설게 느껴진다. 아침 한 시간 반 동안 이렇게 온전히 혼자 걸으면서 생각에 잠긴다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작년 봄 이맘때쯤, 나는 서울 상암동에 있는 방송국에 다니고 있었다. 일어나는 시간은 지금과 비슷하지만 출근하는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그 때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화장을 하고, 이 날씨라면 블라우스에 가디건, 굽이 조금 있는 구두에 숄더백을 맸을 것이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 흔히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아침 지하철의 9호선을 타고 가양역에서 내려 670번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에 모처럼 자리가 나 앉아 갈 때면 가끔씩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뭘 해야 되더라’ 같은 단순한 생각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서울에는 나와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 근처인 노량진이나 지하철, 버스 또는 회사 안과 밖으로 나와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 안에서 조금 앞서 있거나 혹은 조금 뒤쳐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비슷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일상을 살고 있으니 사실은 매일 매일이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취업이 안 돼서 저렇게 아직도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낫지’라고 위안하거나 ‘쟤는 나랑 나이가 같은데 벌써 저 자리에 있네’ 하고 초조해하면서 그 사람들 틈에서 휩싸여 어디론가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출근길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이 길 위에는 나밖에 없고, 오로지 내 힘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 위에 지하철도, 버스도, 택시도 없다는 건 다시 말해 그만큼 이 길을 가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담 여기는 누구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길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부지런히 걷는다. 아홉 시까지는 매장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 곳은 제주도 송악산 아래에 위치한 ‘알뜨르 농부시장’이라는 마을농산물 직판장이다. 나라에서 지역의 농산물 판매를 위해 지어준 매장인데, 송악산은 관광객들도 꽤 많이 찾는 곳이니 이곳에 마을 농산물을 가져다 놓고 판매하면 지역과 마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을 분들은 정작 농사짓고 생활하기에도 바쁘니 꾸준히 매장을 돌보기 힘든 데다 돈을 주고 사람을 쓰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관광지에 놀러 온 손님들에게 단호박이나 마늘 같은 농산물을 사들고 가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동안 골칫거리로 전락했던 이 매장을 지금은 나처럼 이렇게 육지에서 내려온 젊은 청년들이 함께 맡아 위탁운영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의 인건비를 받을 만큼 여유가 되지 않지만 더 많은 수익구조를 만들어, 우리도 이곳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씩씩하게 꽤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었다고 생각한다.
농촌으로 청년들이 내려와 힘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인력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 아니다. 인력이라면 외국인 근로자분들이나 기계로 대신 되는 일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청년 인력이 없다는 것은 그곳을 시대에 맞춰 발전시켜나갈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어르신들은 정말로 농사만 짓기에도 바쁘고 하루가 반나절처럼 지나간다. 이곳에 재능을 가진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이 농촌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활동하며 자주 사용하는 이 문구에는 포부가 담겨 있다. 가끔씩 이런 문구를 보면 ‘무슨 이상한 종교 단체냐’고 묻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농촌에서 청년들이 즐겁게 지내보겠다는 것이 터무니없고 이상적인 생각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매장 문은 여섯 시에 닫는다. 정해진 오픈 시간과 퇴근 시간은 없지만 우리끼리 규칙을 만들어 아홉 시 출근과 여섯 시 퇴근을 지키고 있다. 물론 사정이 있을 때는 빨리 닫기도 하고, 열정이 넘칠 때는 더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하기도 한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것을 썩 못마땅해 하는 터라 이런 내 생활을 두고 ‘직장 생활이 힘들다고 기껏 기어 들어가서는 또 그 촌구석 매장에서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을 하고 앉아 있느냐’고 한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이라 그 말을 듣고는 한참 웃고 말았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제주도로 쉬러 갔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직장 생활이 힘들어서 ‘제주도로 쉬러 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지내는 우리를 보며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사는 것을 못 이겨서 농촌으로 내려갔다고. 어쨌거나 누구나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여섯 시에 문을 닫으면, 아침에 걸어온 그 길을 다시 걸어 돌아가야 한다. 해가 질 무렵 두툼한 구름 사이로 가느다란 주홍빛의 햇살이 새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한 풀 꺾이는지 나른한 한숨이 샌다. 일찍 돌아가 할 일이 있을 때에는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들에게 차를 타고 데리러 와달라고 할 때도 있지만, 별 일이 없는 날에는 아침에 걸어왔던 그 길을 터벅터벅 다시 돌아 걷는다. 저녁에는 딱히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미적거리며 걷다보면 돌아가는 데에 두 시간 가까이 걸릴 때도 있다. 샛길로 빠져 바다도 한 번 보고, 길가에 핀 꽃냄새도 맡아보고, 토끼풀을 꺾어 화관도 만들어보고 하면서 걷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정말로 깜깜하게 해가 져버린 적도 있었다. 푸르스름했던 하늘에 먹물이 퍼지듯 어둑한 빛을 머금더니 쫓아갈 새도 없이 금방 깜깜해져버리고 만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는데다 차들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주위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러자 문득 ‘정말 이렇게 느린 걸음으로 계속 걸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시간이 부족해서 쓸모없는 시간을 줄여보겠다고 난리인데, 나는 고작 흙길을 따라 걷는 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길어질 즈음, 그 때 마침 같이 지내고 있는 형식이한테 전화가 왔다.
“누나, 양배추로 뭐 할 수 있는 거 있어요? 오늘 양배추 밭에서 일하고 잔뜩 받아왔는데.”
양배추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양배추 삶아서 쌈 싸먹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양배추 쌈 같은 거 싫어한단다. 다들 농촌에서 나고 자란 게 아니라, 아무래도 입맛은 어쩔 수 없이 인스턴트에 더 친숙한 모양이다. 전화 덕분에 그 전까지 생각하던 복잡한 것들은 다 털어내고, 대신 발걸음을 더 서두르기로 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은 양배추이고, 그렇다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양배추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거면 됐다. 이곳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는 그 일을 하면 된다. 그게 농촌에서 지내며 얻게 된 정직한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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