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에일 맥주, 그 맛을 찾아서
이번 편은 브런치 주인장의 남편이자 박사학위보다 요리에 더 관심이 많았던 자(?)가 한 번 끄적거려 보려고 한다. 제1화 'English Breakfast' 편의 주인공으로서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하곤 한다. 그런데 확실히 프랑스, 스페인 및 이탈리아 요리에 비하면 단순하고 맛없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드높은 영국인들조차 영국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흔들 정도이니까... 그러한 그들도 영국의 맥주에는 꽤 까다로운 것 같다. 한국 맥주가 북한 맥주보다 맛없다고 해서 한국 맥주회사 속을 뒤집어 놓았던 언론 기사가 문득 떠오른다. 그 기자 역시 영국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하긴 맥주 맛에 까다롭지 않아도 한국 맥주가 싱겁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으니 좋은 예는 아닐 수도 있겠다.
영국에서 약 7년 정도를 살았던 것 같지만 처음부터 영국 맥주 자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술 자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 얼굴이 금세 벌겋게 되는 것도 한 이유다 - 영국에 왔다고 딱히 맥주를 더 마시거나 덜 마신 것도 아니다. 아일랜드에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난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기사가 어디 여행 가냐고 묻자 아일랜드 간다고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기사는
"아~ 아일랜드 가시는군요?
기네스 마시러 가는 건가요? 부럽습니다."
그 말까지 들었으면서도 나는 기네스를 결코 마시지 않았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가끔 마셨던 맥주는 한국에서도 흔히 마셔 봤던 라거(Larger) 타입의 맥주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입맛, 아니 맥주에 대한 취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덜 시원하고 더 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바로 영국의 대표적인 에일(Ale)이다.
에일 맥주를 언제부터 마시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맥주를 마실 때 안주를 먹지 않으면서 시작된 것 같다. 영국의 펍에서 한국과 같은 안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말이다. 쓴 맛이 강한 에일은 안주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운동 후 시원한 한 잔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에일은 청량감을 주기에 부족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일이 좋다. 에일을 왜 좋아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다만 이 정도로 답할 수 있을 정도겠다.
맥주 그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거든요."
물론 맥주 습관 하나 바뀌었다고 내 식습관이 영국화 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저녁 집밥은 항상 한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에일을 자주 마실수록 그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맥주에 관한 전문가는 아니다. 전문가가 될 생각도 없다. 맥주는 그저 보리가 발효돼서 만들어진 술인 줄로만 알았다. 보리 맥(麥) 자를 쓰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보리 외에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 물은 일단 제외하고 - 홉(hop)이라는 식물, 아니 어떤 식물의 꽃이었다. 내가 살던 이웃 마을에서 매년 한다는 홉 축제(Hop Festival)를 이젠 더 이상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햇빛이 아직은 따가운 9월 초의 영국 남부의 파버샴(Faversham)에서의 한 때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축제 관련 사진을 몇 장 더 보면서 추억을 떠 올려 봐야겠다.
추억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
에일이 점차 세계 맥주 시장에서 사라지는 이유를 찾아 보니 일단 제조하는데 품이 많이 든다고 한다. 라거 맥주에 비해 높은 온도로 마셔야 하니 보관 비용도 높기는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전통 지키기에 유달리 집착이 강한 영국인들은 CAMRA (Campaign for Real Ale)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에일 지키기에 노력한다고 한다. 마침 내가 살던 캔터베리(Canterbury)에서는 매년 CAMRA 축제가 열린다. 이 때마다 영국 전역의 펍 주인들이 에일 맥주 공급처를 찾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허름해 보이는 한 농장의 헛간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지만 맥주를 음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지했다. 옆자리에는 런던에서 펍을 운영하는 한 할아버지가 친구들을 데리고 이 곳에 왔다고 한다. 볼펜을 꺼내 들고 행사 팸플릿에 적힌 맥주 이름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맥주의 맛을 꼼꼼히 정리하고 있다. 일행인 듯 보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 가며 맥주의 맛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데 그 광경이 낯설기는 했다. 그저 맥주를 맛 보고 포크 파이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이 곳은 그들에게 우리의 킨텍스나 코엑스처럼 제품설명회이자 계약을 맺는 곳이었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했던 고민 아닌 고민 중의 하나가 그 맛없다는 한국의 맥주였다. 영국에서도 약간은 비싼 에일이었지만 병맥주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맥주 또한 에일이었다. 별 문제없이 마셔왔던 한국 맥주였지만 일단 에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한국 맥주가 싱겁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싱겁다. 이제는...
어~ 그런데 다행이다. 한국을 떠나 있던 그 몇 년간 한국인들의 입맛도 꽤 바뀐 것 같다. 대형 마트에 가도 에일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이태원 정도에서나 팔던 에일도 신촌, 홍대, 종로 및 강남 등지의 전문점에서 판다. 그리고 굳이 에일이 아니더라도 맛있는 맥주집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생긴 것 같다. 맛만 따져 보면 오히려 내가 즐기던 영국의 에일보다 우월한 곳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오래 살면서 거의 정해진 펍만 다녀봤던 나는 한국의 어떤 에일 혹은 맥주에게도 좋은 점수를 주기 꺼려진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 같다.
저는 에일을 마시면서 영국에서의 추억을 같이 마십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찾았던 그 소소한 행복 말입니다.
어떤 맛있는 에일이 오더라도 그 추억을 이겨낼 수는 없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그 맛과 추억인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