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앤칩스는 마약이다.
한국의 여름은 항상 무덥지만, 영국은 그다지 덥지는 않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습도가 낮기 때문에 햇빛이 뜨겁다는 느낌만 들뿐 그늘에 가면 서늘하다. 하지만 2013년 여름은 달랐다. 7년 만의 찾아온 폭염으로 인해 에어컨, 선풍기 하나 없이 살던 우리는 서로의 열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침을 할 수 없는 날이 꽤 많아졌다. 한국의 무더운 여름이 익숙한 우리지만, 영국에서 약 몇 년 동안 큰 무더위가 없었던지라 더욱 고통스럽게만 느껴진 것 같다.
대부분의 영국 가정은 에어컨은 물론이요, 선풍기 한 대도 없는지라 그 당시에 선풍기 수요가 넘쳐 한참 기다려서 구입을 했다는 지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들 울상으로 어제 더워서 잠을 못 잤다며.. 불만 폭주.... 한낮에는 워낙 덥다 보니 현지인들은 시내 강가나 가까운 바닷가에서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여름 하면 영국 바닷가와 피쉬앤칩스가 생각난다.
아마도 대부분은 영국의 대표 음식이라고 하면 이것을 꼽는다. 물론 맞다. 영국인들조차도 그러하니까. 그럼 왜 하필 난 여름이라는 계절에 피쉬앤칩스가 떠오르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피시앤칩스 데이를 정해 행사를 가진다. 그것도 동네 가게가 아닌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 헌베이(Hernbay)라는 곳까지 굳이 가서 피시앤칩스를 먹는다. 사실 피시앤칩스 데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은 없다. 그저 피시앤칩스를 함께 먹고 바닷가 일몰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영국인들이 여름 바닷가에 오면 꼭 먹는 음식이 있다.
그렇다... 바로 "피시앤칩스"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닷가 근처에는 피쉬앤칩스를 파는 가게들이 많다. 특히 바닷가 마을에서 여름 축제라도 열리는 날이면 가게들마다 피시앤칩스를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름에는 바닷가에 있는 갈매기떼들도 잔칫날이다. 사람들이 먹고 남긴 혹은 흘린 피시앤칩스를 잘도 먹어 치운다. 갑자기 내 옆으로 크나큰 날개를 접으면서 나타난 갈매기는 그 큰 부리로 아무리 큰 조각이라도 깔끔하게 한 입, 종종 툭툭 잘라먹는 묘기도 선보인다. 왠지 내 것 하나를 더 줘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좀 무섭다. 내 것 뺏어먹을까 봐...
그럼 영국 여름과 바닷가 축제에서 꼭 먹어야 하는 피시앤칩스를 구경해 보실까?
바닷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들은 그 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피시앤칩스" 맛집으로 향한다. 길가에 피시앤칩스 가게들은 많지만, 그 곳만 유일하게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줄을 잘 서는 영국인들 답게 차례 때로 원하는 종류의 피시, 칩스 등을 골라 테이크 아웃 (영국은 Take away) 해서 나온다.
헌베이 바닷가 분위기는 마치 7~80년대 등장하는 외화의 한 장면 같다. 발전과는 거리가 먼 그런 한산하고 평화롭기 보다는 다소 심심할 것만 같은.... 과거에는 런던너들의 휴가지로 각광을 받았지만, 점점 해외 여행의 증가와 계속된 홍수로 인해 현재는 조용한 실버타운이 되어버린지 오래... 우리와 같은 주변 도시 사람들한테는 그저 바닷바람 쐬러 왔다가 피시앤칩스 먹고 가거나 지역 축제 정도 보러 오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혹시 영국인들은 피시앤칩스를 어떤 식으로 먹는지 아는가?
이들은 피시앤칩스에 반드시 첨가하는 두 가지, 바로 "소금"과 "식초"이다. (Salt and Vinegar) 얼마나 왕창 붓는지 그 모습에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전에 소금과 후추가 귀해 잘 사는 사람일수록 이것들을 많이 넣어먹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서 아낌없이 팍팍~ 뿌리는지도...
이번 행사에는 우리 둘만 유일한 동양인~~ 영국인들 사이에 우리는 끼었다. 우리는 피시앤칩스를 먹는 방식도 그들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칩스에는 꼭 케첩이나 마요네즈 같은 소스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전에 지인 분이 영국에 오셨다가 피시앤칩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로...
아니 비싼 대구를 왜 아깝게 튀겨서 먹나?
(먹은 후의 반응) 맛있긴 하네...
생선 하면 횟감이나 매운탕을 생각하는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ㅎㅎ 전에 한국인 할머니가 피시앤칩스를 먹은 후에 뭐 이런 걸 먹느냐라는 반응을 보인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어떤 이들은 피시앤칩스가 뭐가 맛있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뭐... 어디까지나 맛의 취향은 다른 법이니까...
음식을 다 먹고 난 후에는 바닷가 주변을 천천히 산책한다. 특히 일몰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오래 오래간만에 바닷바람을 쐬니 가슴이 빵~ 뚫리는 기분이다. 이렇게 이들은 매년 8월마다 피쉬앤칩스 데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헌베이의 피시앤칩스도 맛있지만, 내가 살았던 영국의 남동부 지역인 작은 도시 캔터베리에도 전통을 간직한 유명한 피쉬앤칩스 가게가 있다. 난 그 곳을 지나칠 때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느냐 나 역시도 코를 킁킁 대면서 그 곳을 쳐다보게 된다.
피시앤칩스에 잔뜩 뿌려진 비네가 향은 내 후각을 마비시킨다.
그 곳은 현지인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온 여행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다들 야외 의자가 앉거나 서서 피시앤칩스를 먹는다. 전혀 안락하지 않는 의자에 앉아서도 모두들 즐겁게 아무런 불평 없이 피시앤칩스를 먹느라 바쁘다. 일 년 365일 날씨가 좋으나 궂으나 그 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귀국을 앞두고 매일 그 곳에 갔다. 앞으로 한국 가면 이런 피시앤칩스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생각에 신랑과 점심으로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난 매일 먹어도 왜 질리지가 않을까??
제대로 먹고자 하면 케첩, 마요네즈 없이
소금과 비네가로 맛을 낸 피시앤칩스를 먹어보라.
한국에 와서도 종종 피시앤칩스의 향이 생각난다. 여름 한낮에 따가운 햇빛을 쬐며 야외 펍에서 대낮부터 여유롭게 시원한 맥주와 안주 삼아 먹었던 피시앤칩스, 한국에 치맥이 있다면... 영국엔 피맥이라(피자 맥주가 아닌 피시앤칩스와 맥주)... 여름마다 난 비네가 향이 막 풍기는 그런 피시앤칩스가 먹고 싶다.
나에게 이런 날이 또 올까? 싶어 사진으로나마 이 때를 추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