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쓰는 편지이자 첫 수필
“다녀왔습니다”
익숙한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다녀왔습니다”
다시 한번 말해보았지만 다시금 돌아오는 건 내 목소리뿐이었다. 익숙한 대답과는 다른 낯선 대답에 나는 그 익숙함이 그리워졌다.
“맞다. 엄마 입원했지..”
병원에서 오는 길이었음에도 나는 며칠째 이 패턴을 반복 중이었다. 사실은 그 익숙한 대답이 그리워서, 계속 엄마를 불러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
텅 빈 집안을 한숨으로 채운 뒤,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아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엄마가 못 해줘서 미안해”
“집에 엄마가 사다 둔 낙지볶음밥 많이 있어서 괜찮아 걱정하지 마요 엄마”
“맨날 그것만 먹으면 어떡해. 엄마가 얼른 가서 맛있는 거 해줘야 하는데 우리 아들”
아까의 대화가 기억나서 일까. 나는 고민 없이 냉동고 문을 열고 낙지볶음밥을 꺼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듯 능숙하게 조리를 마친 뒤, 조리한 후라이팬 통째로 내 자리에 가져와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비어있는 앞자리가 엄마 자리여서였을까. 나는 비어있는 앞자리를 보고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든 반복되면 익숙해진다고 하는데, 익숙한 배경의 낯선 상황들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익숙함이 채워져야 할 자리에는 낯선 기분들이 밀려들어왔고, 그 낯선 기분들은 익숙했던 상황들을 불러들였다.
“잘 먹네 우리 아들 맛있어?”
“응 맛있어. 엄마 이거 엄마가 한 거야?”
“아니 이거 아까 동네 아줌마들이랑 이마트 가서 장 보는데, 그게 요새 트렌드라고 해서 엄마도 한번 사봤어.”
“요새 이런 것도 있어? 엄마 완전 센스쟁이네 진짜 맛있어”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다음 말이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를 무너뜨렸다.
“나중에 혼자 있을 때 해 먹어. 그냥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볶아서 먹으면 돼”
‘혼자 있을 때 해 먹어’ 엄마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 와중에도 아들 밥은 챙겨주려고 사놓았던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방증하는 듯 쌓여있는 낙지볶음밥 상자들을 보며 나는 엄마의 배려가 밉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항상 그랬다. 오늘 아침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아들, 나는 아들이 고3이었으면 수술받지도 않았을 거야”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조심스레 물었다.
“왜?”
“아들 공부하는데 신경 쓰이잖아. 중요한 시점에서 엄마가 짐이 되면 어떡해”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는 엄마를 보며 나는 화를 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냐고, 엄마는 엄마 생각을 안 하냐는 내 말에 엄마는 빙긋 웃으며 답해주었다.
“엄마가 수술했는데 아들이 조금이라도 엄마한테 신경 써서 원하는 결과 못 얻어서 아들이 힘들어하면 엄마가 더 힘들 거 같아서 그랬어.”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다. 그건 감동 따위의 감정이 아니었다. 나를 생각하지 않은 그 배려가 너무 미웠다. 엄마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생각도 안 하냐고 불평하고 싶었지만, 괜찮다는 듯 웃는 엄마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원은 사실 나 때문에 한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갑상선암 말기. 진행 기간 최소 2년. 내가 고 3이었던 시절. 수험생보다 더 힘든 수험생 부모. 이러한 사실들이 조각조각 맞춰지면서 거대한 사실을 만들어냈고, 내 머릿속에서 다른 이유들이 설자리는 없어졌다. 게다가, 당시 수험생이었던 나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물었다.
“아들 무슨 생각해? 이제 그만 가봐 아들 바쁘잖아”
바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 밖을 나와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지만,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져서 발걸음마저 무거워졌다. 그러다 결국에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어서 눈에 보이는 아무 건물 화단에 앉았다. 앉자마자 나와 세상은 단절되었다.
‘대체 내가 뭐라고.. 엄마는 왜..’
‘나는 이때까지 왜 엄마가 아픈 걸 몰랐을까..’
이런 생각 속에 갇힌 지 얼마나 흘렀을까 요란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나는 겨우 그런 생각 속에서 벗어 나올 수 있었다.
“여보세요? 어 엄마”
“아들 집 가고 있어? 엄마가 아까 까먹고 말을 안 했는데 부탁이 있어서”
“응 엄마 아무거나 다 말해”
“엄마가 이모랑 주부 체험단 했었는데 거기서 문서 작업을 하래 근데 엄마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아들한테 부탁하려고. 옛날 같았으면 엄마가 다 할 수 있었는데... 집 가서 좀 부탁해 아들 바쁜데 미안해”
말투에서 느껴진다. 몇 번을 고민했던 목소리. 이런 사소한 부탁도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더 신경 쓰였던 건 마지막 말
“옛날 같았으면 엄마가 다 할 수 있었는데...”
엄마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EBS의 모체가 되는 교육 개발원을 다니면서 스스로 번 돈으로 대학도 다녔다. 대학에서 전공한 독일어 공부를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자 엄마는 모든 일을 접어두고 가사에만 전념했다.
내가 엄마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엄마는 예전의 일상이 그립지는 않을까? 교육개발원에서 일을 하고, 독일어 공부를 했다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지금의 EBS를 생각한다면 엄마의 커리어 선택은 옳은 길이었고 지금쯤 상당한 사회적 성공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이 모든 게 아쉽지는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경숙이 이모, 남주 이모 가족들과 휴가를 떠난다. 엄마가 일할 당시에 팀장이었던 엄마와 팀원이었던 경숙이 이모, 남주 이모는 셋 다 동갑이어서 일까, 친구처럼 지냈고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엄마와는 달리 교육개발원에서 계속 일을 하는 경숙이 이모는 가끔 일 얘기를 했었고, 엄마와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 얘기도 하곤 했다.
바보처럼 나는 ‘엄마 엄마가 팀장이었고 경숙이 이모가 팀원이었는데 지금 경숙이 이모가 지금 본부장 정도면 엄마는 부사장 정도 됐겠네?’라고 물었고,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대신 아들이 있잖아.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엄마는 아들만 있으면 오케이야”.
진심이었다. 이게 엄마의 진심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물음은 정말 멍청한 짓이었고 잘못된 행동이었다. 엄마의 선택의 결과인 내가 엄마에게 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 꼴이었으니 그걸 들은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도 이 물음으로 아까의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그리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엄마의 선택은 ‘나’였다. 엄마의 진심이 느껴지면서 나는 아까와는 다른 감정들이 생겨났다. 자책하기보단 엄마의 선택의 결과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엄마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까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더 이상 밥은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선, 엄마가 부탁한 문서작업부터 끝내야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았다. 식은 낙지볶음밥을 입안에 대충 털어놓고는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엄마가 부탁한 것은 간단한 문서 작업이었다.
‘옛날의 엄마였으면 정말 금방 했겠지..’
이런 생각도 잠시, 아까 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엄마가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당장은 이루지 못할 일이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성취해야 하는 나의 꿈. 그리고는 엄마한테 달려가 말하고 싶다. 엄마의 배려 이제 내가 갚겠다고, 일 대신 나를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당연한 일을 왜 고마워하냐며 부끄러워할 엄마의 모습이 상상되어서일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항상 나를 맞이해주던 그 자리에서 이제는 내가 엄마를 배웅해주고 싶다. “다녀왔습니다” 가 아닌 “다녀오세요”를 하는 날을 기대하며 나도 모르게 허공에 소리쳤다.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