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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지 Dec 26. 2018

공감이 이끈 용기-<그린 북>

브런치 무비패스 05.

유쾌하면서도 슬프고, 화가 치밀었다가 다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이야기. 실화가 모티브였기 때문일까, 어느 영화보다 캐릭터에 몰입과 공감이 깊게 되었다. 러닝타임 내내 여러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좋은 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회를 통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 영화를 미리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 해당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에 선정되어 관람한 영화 <그린 북>에 관한 리뷰입니다.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그린 북>


반가운 두 배우, 마허샬라 알리&비고 모텐슨

영화 <문라이트>가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던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은 배우 마허샬라 알리였다. <문라이트>에서 그는 주인공 샤이론에게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따뜻한 존재였다. 겉으론 투박하지만 속은 따뜻했던 그의 모습이 짧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영화 <그린북>에 바로 그, 마허샬라 알리가 등장한다고 했을 때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그 기대감을 완전히 충족시켜주었다. <그린북>에서 마허샬라 알리가 맡은 역할 돈 셜리는 <문라이트> 속 그가 연기한 인물 후안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셜리는 우아하고 섬세하며,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피아니스트이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늘 절제된 그의 모습은 1960년대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흑인을 상징한다고 볼 수있다. 주먹을 믿고 살아가던 싸움꾼 토니 발래롱가를 연기한 비고 모텐슨 배우도 반가웠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라곤이 바로 그였다.(그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나 후덕해진 모습에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비고 모텐슨은 어느덧 60대 중견 배우가 되었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내공만큼 마허샬라 알리와 뛰어난 연기 합을 보여주었다. 그가 맡은 발래롱가는 이탈리아 출신 인물로 미국에서는 셜리와 같은 이방인으로 존재한다. 이 두 이방인이 보여 준 우정과 변화하는 모습은 감동 이상의 애틋함을 느끼게 했다.




그린북=공감,우정

재즈 트리오에서 피아니스트인 셜리는 공연 투어 기간 동안만 토니를 운전기사로 고용한다. 토니는 흑인을 편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토니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흑인을 위한 여행가이드 '그린북'을 건넨다. 투어 초반, 토니는 그린 북을 토대로 숙소를 정했으나 그 어느 곳도 셜리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늘 혼자 쓸쓸히 위스키를 마시는 셜리의 모습은 어딘가 외로워 보였다. 토니와 셜리는 자동차로 이곳저곳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씬에서 흐르던 재주 선율은 셜리의 피아노 연주만큼이나 극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셜리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토니를 향해 둘렀던 벽을 허물어 나간다. 토니가 건네준 치킨을 셜리가 망설이다가 끝내 먹는 장면에서 둘의 사이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담요가 더러워진다며 사양하던 셜리가 치킨의 맛을 깨닫는 장면은 관객으로서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그렇게 토니와 셜리의 우정이 진정한 가이드북이 되어간다.




재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하지.


용기=주변을 둘러싼 벽을 허무는 것

토니는 이탈리아인이지만 백인이므로 흑인을 향한 차별이 어떤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1960년대 흑인을 향한 미국의 인종차별은 심각했다. 흑인은 공연장에서 백인과 화장실을 따로 사용해야 했고, 양복점에서 옷을 미리 입어보지도 못했고 밤늦은 시각 도로에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셜리는 이 모든 차별에 억울함을 표출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다른 방안을 고안한다. 셜리가 저항할 수 없는 상황과 시대가 그저 답답할 뿐이다. 관객으로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매번 공연이 끝난 후, 셜리가 공연을 관람한 백인들을 향해 활짝 웃음을 지어 보일 때이다. 공연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 그의 슬픔이 느껴진다.


토니는 이 모든 불합리를 감내하면서도 공연을 계속해나가는 셜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토니에게 셜리와 함께하는 재즈 멤버는 이렇게 말한다. "재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하지." 백인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가 셜리에게는 커다란 용기였다. 불합리한 차별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용기는 토니로 인해 배가 되었다. 불합리한 차별이 있을 때마다 먼저 나서는 토니 덕분에 셜리는 외로움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었다. 모든 투어 일정이 끝난 후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파티가 한창인 토니의 집으로 셜리가 찾아온다. 위스키 한 병과 함께. 그에게는 이 또한 큰 용기였다. 긴 여정을 함께하며 서로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 두 인물은 서로에게 인종과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느낀다.






"나는 완벽한 백인도, 흑인도 아니고 완벽히 남자답지도 못해요"라는 대사를 눈물로 외치는 셜리의 모습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매일 밤 홀로 위스키를 마시던 셜리의 외로움이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당시에 셜리를 비롯한 흑인들이 느낀 소외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존중 또한. 울컥하는 그의 눈빛을 보며 마허샬라 알리의 연기력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셜리는 토니로 인해 더 이상 위스키를 홀로 마실 일이 없게 되었다. 실제로 토니 발래롱가와 돈 셜리는 평생 우정을 쌓으며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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