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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화 Apr 26. 2023

해피투게더

함께 행복하기 위해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아휘와 보영은 사랑합니다. 함께 폭포를 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갈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나 둘은 함께 있으면 어느샌가 싸우고 소리칩니다. 분명 시작은 웃고 끌어안는 행복한 순간 들이었을 텐데, 끝은 늘 싸움과 그로 인한 상처만 가득합니다.

견딜 수 없어지면 보영은 아휘를 버리고, 그러다 또 아휘를 그리워하며 찾아옵니다. 아휘는 그때마다 보영을 받아줍니다. 둘은 아마 이렇게 떨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수 없이 반복했을 것입니다.


보영이 언제나 아휘를 떠날 수 있는 것은 둘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서로가 미워지고, 멀리 떨어지게 돼도 돌아가면 늘 다시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보영에게는 늘 돌아갈 아휘라는 사람이 있고, 아휘의 곁에는 늘 보영을 위한 빈자리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가다 헤어지고 오랜만에 다시 재회했을 때 아휘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있었습니다. 손을 다쳐 찾아온 보영을 결국 다시 받아주고 챙겨주지만, 마음에 보영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습니다. 보영이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까닭은 손을 다쳤기 때문이고, 손이 다 나으면 언제고 또 자신을 두고 떠날 것이라는 불안을 느끼는 것이죠. 그 불안은 또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기초할 것입니다. 아휘가 보영의 여권을 숨기는 행동은 이런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입니다. 동시에 보영이 정말 또 떠날 것인가를 떠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보영이 여권을 달라고 떼쓰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보영은 여권을 되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또 아휘를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죠. 아휘는 그런 보영의 행동이 끔찍하게 괴로웠을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인데, 함께하기만 하면 관성처럼 자신에게서 튀어나가려 하니까 말입니다.   


보영은 이런 아휘의 고통을 아예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괴로워하는 아휘의 마음에 집중하지는 않았죠. 언제나 그랬듯 싸우다 지치면 떠나버리고,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함께가 그리워지면 '다시 시작하자'말하며 돌아오면 되는 일이니까요. 상처를 들여다보느니 잠깐 떠나버리는 편이 편했던 것입니다.


일하다 만났던 장이 떠나기 전 아휘에게 녹음기를 건네는 장면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목소리를 남겨달라고 말하며 장은 자리를 비워줍니다. 장은 사람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기에, 그 순간 녹음기에 어떤 말을 남기던 아휘의 마음은 장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고, 후에 장은 녹음기를 재생했을 때 어떤 감정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장이 녹음기를 건네는 행동의 의미는 '너의 진심을 전해달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진심을 들어주는 일은 아휘가 보영에게 그토록 원했으나 끝내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휘는 이토록 간단한 일임에도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은 보영이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보영을 사랑하는 자신이 슬프고 미웠을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진심을 들어주려 하는 장에게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고요. 아휘의 눈물은 그런 보영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에 대한 슬픔과 장에 대한 고마움 등 많은 감정들이 섞인 복합적인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장의 녹음기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난 뒤 아휘는 보영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을 것입니다. 아직 사랑하지만, 더는 함께하지 않는 것으로 말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려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함께한들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 더는 당연하게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보영에게 남은 것은 아휘의 흔적뿐이었습니다. 아휘가 남겨두고 떠난 여권으로 보영은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곳, 아휘의 곁에는 이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아휘는 마음을 정리하고 떠나버렸기에 함께 있을 때 행복한 순간, 아휘와의 '해피투게더'는 영영 보영의 삶에서 찾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함께 오고 싶었던 이과수 폭포에 홀로 도착한 아휘의 표정은 밝지 않았습니다. 곁에 없는 보영의 빈자리로 인한 공허를 느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허함은 보영과 함께 있을 때도 느꼈던 것이죠. 보영과 더는 함께 있지 않지만, 함께 있던 순간과 같이 아휘는 보영이 그립고 공허합니다.


아휘와 보영이 함께 있을 때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며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을 헤쳐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을 견딘 후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에 그때마다 도망쳤던 보영은 결코 도착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한다면 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함께 있음에도 아프고 힘든 지금이 행복한 그날을 위한 숙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피 투게더'는 힘든 오늘을 함께 이겨내야 찾아오는 선물 같은 내일에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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