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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화 May 10. 2023

길 위에서

방랑과 자유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은 절제입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본능과 충동을 억제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절제 욕망 중 가장 원초적이고 거대한 것은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길 위에서는 길 잃고 방랑하는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방랑과 자유는 같아 보이면서도 다른 것인데, 자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에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반면에 방랑은 끊임없이 새로운 목적, 이를테면 가야 할 다음 행선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죠.


따라서 셀은 계속해서 여행하지만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여행을 하고 있어도, 여행을 하고 있지 않아도 셀은 이제 어떻게 다음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셀의 방랑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방랑을 통해 현재의 무엇인가를 바꾸고자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아닌 미래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딘은 온전히 지금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여러 아내들과의 문제, 돈 문제, 저지르는 불법에 대한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건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고,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불편도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죠.


딘이 떠도는 이유는 오직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딘은 귀찮고 불편한 문제들을 뒤로하고 등을 활처럼 구부린 채 차에 올라타 속도계의 바늘이 부러지게 달리는 것 만으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는 자유를 알고, 자유를 마음껏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딘은 멈추지 않습니다. 딘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다음 목적지 때문이 아닌, 나아가는 행위 그 자체 때문인 것이죠. 딘은 사회의 구율, 개인 간의 약속 등 자신에게 살며시 다가오는 그 어떤 올가미에도 묶이지 않는 길들일 수 없는 자유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딘의 자유는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입니다. 셀의 모습이 좀 더 현실적이죠. 우리는 올가미에 묶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억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적 억압은 그 대가로 우리에게 사회의 일부로서 누릴 수 있는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죠. 사회의 일부로써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편안합니다. 반면에 자유를 누리는 삶은 자유의 크기만큼 고독하고 힘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한때 자유를 동경하고 간절하게 소원했었습니다. 자유는 탯줄에 묶여 태어난 이래로 우리가 한 번도 온전하게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고독할지라도 한 번쯤은 사회의 울타리 밖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려보고 싶은 것이죠.  


저도 한때는 자유를 동경해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더는 자유로워지기를 포기한 것은, 자유를 위해 한 제 행동들이 모두 자유가 아닌 방랑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죠. 마음속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딘이 존재했지만, 저는 셀이었던 것입니다. 끊임없이 다음을 찾고, 미래를 생각했기 때문에 방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달픔을 참아내고 했던 모든 행동이 방랑이었음을 깨닫자, 따뜻한 억압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렇게 자유를 쫓기를 포기하고 따뜻한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울타리로 돌아온 것이죠.


이야기가 끝에 다다랐을 때, 셀은 딘은 남겨두고 떠납니다. 다른 사람들과 떠나는 셀의 차 뒤에 남겨진 딘의 모습은 어딘가 처량한 구석이 있었죠. 저는 그런 딘의 모습이 제가 과거 어딘가에 두고 온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자리에 갈망을 두고 저 또한 셀처럼 떠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비슷하게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모두 한때는 자유를 꿈꾸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길 위에서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자유를 꿈꾸었으나 결국 방랑함으로써 고통받고 외로웠던 어느 시절 우리의 이야기 말입니다. 사회의 안락한 구속 속에 앉아 책을 덮으며 왜 우리는 끝내 방랑이 아닌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없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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