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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화 Jul 15. 2023

졸업

특별하기 위한 재료

1967년에 제작된 '졸업'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OST인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와 엔딩 장면은 익숙한 분이 꽤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제가 영화 속 좋아하는 장면들을 꼽을 때 자주 이야기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장면을 묘사하면 이렇습니다. 찢어진 옷차림의 남성과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버스에 올라탑니다. 버스의 승객들은 그들을 지나쳐 맨 뒷자리에 앉는 둘을 휘둥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둘은 그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밝은 웃음을 띠다 이내 어색한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봅니다.  


묘사 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결혼식 장에 난입해 끝내 함께 도망친다는 이야기는 어딘가 클리셰적이면서도 일반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서두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은 엔딩에 다다르는 순간 둘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입니다. 그저 밝게 웃으며 끝났다면 흔한 해피엔딩이었을 이야기가 이 표정 하나로 깊은 공감과 무게감을 주는 것이죠.


사실 이 장면에는 이제는 꽤나 많이 알려진 비밀이 있습니다. 둘의 표정은 계획된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감독이 컷 사인을 보내지 않아 어색하게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배우들의 표정이 담긴 것이었죠.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둘의 표정이 이 영화의 엔딩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호기롭게 결혼식을 도망친 두 남녀의 앞에 놓인, 마냥 밝지만은 않을 어려운 현실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 중에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에 대한 대리만족도 분명 있을 것이지만, 적지 않은 분들이 공감을 쫓아 영화를 관람할 것입니다. 때로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만으로 삶을 버티고 살아가는데 큰 위로와 힘이 되니까요. 


둘의 마지막 표정으로 인해 졸업이라는 영화는 그저 결혼식을 박차고 도망치면서도 웃으며 뛰어갈 수 있는 용기 있는 남녀에 대한 대리만족의 영화가 아닌, 꿈같으면서도 어딘가 현실적인, 청춘의 불안과 방황에 대한 공감을 담은 영화가 됐습니다.


갓 어른이 됐을 때 다들 기쁘면서도 마음 한편이 두렵고 불안하지 않았나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지만 용기 있게 뛰어든다면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어른의 무게가 숨 막히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버거운 무게를 마음에 지는 순간이면 어린아이처럼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위로에 필요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닌, 혼자만 이렇게 두렵고 버거운 것이 아니라, 모두 실수하고 돌아가며 고민하고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나 혼자만 버겁고 힘든 것이 아닌, 모두 한 번은 걸어가는 길이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졸업의 엔딩이 더욱 특별한 것은 NG로 만들어졌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때문 같기도 합니다. 실수로 만들어진 장면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그 과정을 바라보면 희망이 한 가닥 피어납니다. 우리의 삶도 괴롭고 부끄러울 수 있는 실수로 인해 더욱 특별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말입니다.


지금 방황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졸업을 감상하고 영화의 엔딩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지금의 힘듦과 방황, 그리고 실수가 후에 당신의 삶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만들 재료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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