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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Feb 07. 2023

집을 가진다는 것

230207

집을 가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친구가 오늘 아파트 계약을 했다.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부동산 하락장 속에서 끝까지 고민하던 친구는 결국 마감시간 4분을 남겨놓고 계약금을 입금했다. 퇴근 후 만난 친구의 표정은 홀가분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본인이 나름 판단한 대로 행동했지만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아직도 얼떨떨해 보였다. 앉아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종일 한 끼도 먹지 못했다던 그 녀석은 샌드위치를 입에 욱여넣으면서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 계약을 마치고 아버지와 통화했다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의 고생 많았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깊게 와닿을 수 없었을 거다.


중학교 때부터 같이 운동장을 뛰어 다니던 친구가 집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덩달아 기뻤다.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괜히 대견했다. 밤새 잠도 못 자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친구의 등을 연신 두들겼다. 사회 초년생부터 친구가 얼마나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투자를 공부해 왔는지를 기억하기에 이상하리만치 내게도 감동이 밀려왔다. 성장 소설에서 주인공이 드디어 난관을 물리치고 본인의 무대에 막 오르려고 하는 장면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현재 시장의 흐름을 거슬러 본인의 선택을 해내고마는 친구가 멋있었다. 이런 역사적인 날 친구와 함께할 수 있어서 한없이 기쁠 뿐이었다.


집을 가진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일까. 내가 온전히 쉴 곳이 있다는 게 가장 클 것이다. 나의 힘으로 일군 나의 땅이 아닌가. 비싸디 비싼 서울 하늘 아래 두 자리 수의 대지권을 확보한다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를 올릴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집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내가 앞으로 살 곳이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참 편할 것 같기도 하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평생 지출하는 비용 중에서 주거비는 단연코 비중이 가장 크다. 가장 큰 숙제를 끝낸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어떤 마음의 넉넉함도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남의 집이 아니라 나의 집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과 집들이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집을 가지고 싶다.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다. 썩 열심히 했다고는 양심적으로 말 못 하겠다. 새 부서에 배치받았다는 핑계로 최근에는 퇴근하고 뻗어있기가 일쑤였다. 조금씩 본인의 목표를 이루어가더니 결국 어느덧 한 집의 주인이 된 친구를 보면서 지금 보다 훨씬 더 목표에 뾰족하게 집중할 필요를 느꼈다. 너무 내가 하고 싶은 것 위주로만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했다. 해야 할 일을 우선 끝내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다시 했다. 매번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인간이라니. 오늘도 흔들리는 삶의 균형이다.


하루하루의 경험을 통해서 삶의 무게추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나이 들어가는 게 가장 좋은 점은 이 흔들림이 더 이상 불안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이제는 기대가 된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앞으로 하게될지, 또 어떻게 바뀌어갈지 나도 궁금해지는 거다. 조금 더 정확하고 또렷해지겠다고 다짐한다. 기분이 너무 좋은 하루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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