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Jun 07. 2023

캠페인- 남자의 사랑의 여자의 가치 판단을 하지 말아요

2017년 3월 9일

* 페이스북에서는 여성 독자로 제한했던 포스팅입니다. 

     

이거 좀 클리셰이긴한데 경험해보셨을 것 같아요. '남친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표시 날 때 뿌듯한 거 있죠. 여자 친구들과 만나는데 찾아오는 멀쑥한 남친. 춥지 않아? 하면서 옷 벗어서 입혀주고 친구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는 하면서도 나만 이뻐 죽겠다는 듯 쳐다봐주고, 술 마시려고 하면 에이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마시지 마~ 하면서 뺏으려 드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좋은 선물도 센스 있게 사주는 남친. 이런 거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죠. 딴 여자들의 눈이 갈 만큼 잘생긴 남자가 스윽 찾아오고, 들이대고, 싫다 해도 계속 들이대는 그런 패턴. 결혼하고 나서는 뭐든지 해주려고 하는 그런 남자요.      

나이 들면 그런 과시 안 할 거 같은데, 하더라고요. 이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라면 더 그렇고요. 저 이 나이 됐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 앞에서 남편이 자상하게 대해주면 우쭐해요. 유치한 거 아는데 그래요. 

     

이걸 꼭 나쁘다, 반성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해요. 어릴 때부터 우린 우리를 좋아해 주는, 우리를 사랑하는 남자로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 익숙해져 왔습니다. 어떤 여자가 결혼할 때, 그 상대 남자를 보고 우리는 여자의 가치를 쉽게 판단합니다. 남편의 직급이 여자의 직급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오죠. 의사 '부인'. 판사 '부인'. 부인이 뭘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없고, 의사 부인이 회사원 부인보다 급이 높은 것처럼, 더 사랑받았으니 더 대단한 사람으로 곧잘 보죠.    

  

하나 제안하려고 합니다. 물론 사랑받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최소한 우리라도 다른 여자를 볼 때 그 여자와 사귀는 남자를 보고 평가하지는 맙시다. 남친 있는 여자가 없는 여자보다 행복하고, 결혼한 여자가 미혼보다 우월하고, 이혼한 여자는 버림받은 거고, 사랑 못 받은 여자는 불행하고 뭐 그런. 

'사랑 못 받는' 말할 때 웃기죠. 왜 꼭 남자를 생각할까요. 부모님에게도 사랑받았을 수 있고 친구에게서 엄청 사랑받을 수 있잖아요. 선배나 직장 동료들, 자식에게도 그렇고, 반려동물에게도 엄청난 사랑 받을 수 있죠. 왜 꼭 '남자'에게 '받는' 사랑으로 우리는 여자를 평가할까요. 여자가 상품으로, 재산으로 취급받던 시절에서 나온 가격 매기기에 우리는 아직 매달려 있는 거 아닐까요.      


나를 사랑하는 남자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랑할 것도 아닙니다. 그 마음이 변한다고 해서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사람의 마음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어제의 나와, 그가 사랑하는 오늘의 나와, 그가 사랑하지 않는 내일의 나는 여전히 같은 나잖아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나쁜 사람은 아니고, 내가 그의 감정의 상대가 아니라고 해서 더 못나진 건 아니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양날의 검입니다. 내가 사랑받으므로 더 가치가 있다 하면, 사랑받지 못하면 가치가 없어지죠. 그게 두려워서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의 행동을 정당화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요. 그래서 그 마음이 변할까 조마조마하면서 맞춰주려고 하게 되죠. 

나를 때리면서 네 잘못이라 하는 남자에게, 내가 더 잘 하면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되고, 너 때문에 바람을 피운다는 남자의 변명도 역시 내가 예쁘지 않아서, 더 이상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 그런 거다, 이젠 날 사랑할 사람 어차피 없을 거다 둘러대게 되기도 합니다. 받는 사람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아요. 그 사람의 행동으로 나의 가치를 재다 보니까, 조금이라도 덜 해주면 짜하게 식죠. 연인이 사랑한다며 이것저것 해줘도 고마운 마음보다는, 나는 그 정도 사랑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니까 하면서 보답은 안 하려 하죠. 내가 주면 내가 아쉬운 사람 같거든요.      


누군가의 마음이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이건 사실 저도 자주 실수합니다. 결혼 15년도 넘었는데도 결혼이라는 울타리, 남편이라는 존재로 조금이라도 더 흐뭇해질 때 있어요. 무의식중에라도 남자와의 사랑이 끝난 사람을 안됐다고 봤던 적도 있어요. 엄청난 오만 아닌가요? 내가 뭘 안다고, 단지 한 남자와 헤어졌다는 이유로 안 됐다 넘겨짚나요. 아주 좋은 친구들, 주변 사람들이 넘쳐나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용기를 내어 그 남자와 헤어져서 훨씬 더 나은 상황일 수도 있는데요. 아니라고 해도, 사랑이 끝나서 아프다고 해도 그게 다른 사람이 안쓰럽게 보고 어쩌고 할 건 아니죠.      

결혼이란 울타리, 남편의 존재에 대한 부심이 곧바로 다른 여자들에 대한 가혹한 평가에 한몫 합니다. 결혼 안 했으면 뭔가 모자라게 보는 사회의 시선에 내 눈 두 개도 더하는 셈입니다. 진정한 여자는 어쩌고 하는 개소리에,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저도 참가한 셈이 되는 거죠.      


남자에게 '선택당하는 존재'가 되지 맙시다. 한 여자를, 그의 옆에 있는 남자로 평가하는 데 참여하지 맙시다. '사랑받는' 어쩌고 할 때 그걸 꼭 남자로 치환하지 맙시다. 내가 어쩔 수 없는 타인의 감정으로 내 가치를 평가하지 맙시다. 그러면 우리 모두 조금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왜 여자는 강간을 쉽게 보고하지 못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