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0일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샘 프로그램, 그리고 왜 여자는 강간을 쉽게 보고하지 못하나
이전에 "그런 여자"가 되는 두려움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1]. 많은 여자들이 성추행을 당했어도 주위에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표정이 무엇인지 알아서다. 이것은 내가 성추행을 당한 것을 머릿속에서 포르노로 트는 이의 눈빛일 수도 있고, "너 이제 더러워졌구나"라는 이의 쯧쯧거림일 수도 있다. 성추행 성희롱뿐만이 아니라, 참 많은 여자들은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서는 정말 친한 친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자위하는 여성이 70%라는데, 나는 서른 넘게 내 친구 그 누구와도 자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내 20대 때만 해도 남친과 여행 간다는 말도 못하는 분위기로 기억한다. 같이 1박 이상 여행을 갔다면 "그걸" 했다는 의미고, 내 주위 사람들이 나는 이제 처녀가 아님을 알게 될 테니까. 동거도 마찬가지였다. 하여튼 성관계 경험이 있음을 연상시키게 하는 그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
지난 십 년 넘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난 지난 15년 동안 그렇게 징그럽게 글을 쓰면서도 단 한 번도 내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부부로 산다" 외의 글을 쓴 적이 없다. 만약 나와 비슷한 성향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동네방네 소문내고 고발해서 그 사람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위 사람에게 말하면 동정의 눈빛, 아이고 이제 시집 다 갔다는 주위 아줌마들의 쯧쯧거림, 강간당한 이야기를 포르노식으로 소비하는 몇몇 이들과 언론. 그딴 식으로 강간사건이 소비되면서 멘탈이 탈탈 털리는 그녀가 원하는 것은 타임머신이다. 왜냐면.
한샘 사건에서 보았듯이, '당한 피해자'는 또 다른 타깃이 된다. 그녀의 피해가 포르노식으로 포장되고 전파되면서 또다시 표적이 된다. 이것 역시 여자들은 정말 너무 잘 알고 있다. 자라면서 "강간당한 여자"이야기가 어떻게 퍼지는지를 얼마나 많이 듣고 봤는데. 몇 년 전만 해도 피해자는 말해봤자 자기만 손해고, 최선의 방법은 당한 사실을 숨기고, 혹시 피해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가치 없어진 날 사랑해줄 남자 찾아 결혼하는 것이 최고의 옵션이라 세뇌도 받았는데.
그럼에도 피해자가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거, 주변 사람들이 다 나를 '당하는 여자' 포르노 이미지로 떠올릴 것임을 각오하는 게 유리 멘탈로 가능한 줄 아나. 그런 시선 받고 그렇게 수군거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즐기는 여자가 정말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나. 도대체 강간 피해자가 강간을 고발함으로서 얻는 게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고발자가 오히려 쫓겨나고 사건은 축소되고 덮이고 경찰 역시 협조적이지 않다는 거, 그리고 처벌 가능성도 낮다는 것 익히 들어 알면서, 그럼에도 고발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분노를 바탕으로 하는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이해 불가능한가. 받아봐야 일 년 연봉도 안 되는 합의금 받으려고,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 자리를 걷어찰 거라 정말 믿는가.
그래도 합의금 받으려고, 혹은 복수로 거짓 신고한다고 하는 사람들, 당장 내일 당신이 상사를 성폭행으로 고발한다고 생각해보자. 나에 대해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떤 식으로 기사가 나갈지, 기사 썸네일 이미지는 무엇을 쓸 것인지 진정 감이 오지 않는가. 지금까지는 성경험이 있다고 오해할까 남친 이야기도 잘 꺼내지 않는 여자가, 자위 단어조차 입에 잘 안 올리는 여자가, 상대가 이상한 상상하는 게 짜증나서 성추행당한 경험도 잘 말 안하는 여자가, 모르는 사람 앞에서 어떤 식으로 가해자에게 강간당했는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는 게 정말 룰루랄라 꽃놀이라고 생각하나.
+그래도 한국의 주류 미디어에서 이렇게 다루어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변했다는 증거죠. 변하고 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그 방송 나가고 남초에서는 메라포밍 어쩌고 헛소리중이지만 -_- 그래도 변하고 있습니다. 힘냅시다!
[1] "그런 여자"의 두려움과 메갈의 공로
https://www.facebook.com/seattleyangpa/posts/1848898965395582
https://brunch.co.kr/@yangpayangpa/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