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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4. 2018

"그런 여자"의 두려움

2016년 12월 20일

 강남역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갑작스레 변한 듯한 여자들에게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인데 뭐가 그리 걱정이냐고, 그렇게 성추행 성희롱이 많으면 왜 여자들이 말이 없었냐고, 이제야 쏟아져 나오는 게 이상하다, 오버하는 거 아니냐 묻는다.     


난 "그런 여자"의 두려움을 해외에서 자라면서 배웠는데,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하거나 더 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여자"의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배웠는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성적인 뉘앙스가 들어간 모든 것'에 내가 어떻게라도 연관될까 노심초사하는 두려움이다. 모르는 남자가 내 허벅지를 쓰다듬는 추행을 했다 하면, 그걸 말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릴 이미지. 남자의 손이 내 스커트 안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 그리고 난 내 피해 사실을 얘기하는데 그걸 상상하면서 묘해지는 청자의 표정, 곧바로 혐오를 보이는 몇몇의 표정, 그럼으로써 내가 이상하게 더러워진 것 같아 오소소 돋는 소름, 그렇게 나는 성적인 뉘앙스에 엮인 "그런 여자"가 된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볼 때 나로 보지 않고, 어떤 남자의 손이 허벅지를 쓸었던 "그런 여자"로 본다. 왠지 그런 여자는 여지를 좀 주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더 이상 순수하고 밝은 양갓집 규수는 아니다. 피해자도 아니고, 뭐라 해야 하나. 깨끗하게 닦인 유리창에 손자국 남은 그런 느낌이다.     


순결 교육을 빡세게 받은 기억은 없다. 부모님하고는 성교육 관련 대화를 한 기억이 별로 없고, 학교에서도 그저 정자 난자 수정란 임신 출산 정도로만 배웠다. 그런데 "그런 여자"의 두려움은 어디서 왔을까.     

누가 나에게 걸레라는 욕을 했다고 하자. '사기꾼', 혹은 '잘난 척하는 x" 이런 욕은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가 쉽게 가능하다. 누구누구나 나보고 잘난 척한다지 뭐야!? 뭐 이렇게. 그런데 "걸레"는 힘들다. 그 단어와 내가 엮이는 것이, 불특정 다수가 나를 그렇게 생각할 것이, 그렇게 "그런 여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서 말을 하지 않는다.    

 

이 두려움이 언제부터 옅어졌냐 하면 20대가 되어서다. 20대 초반만 해도 분명히 기억난다. 강간당한 여자에게 "걔는 어떻게 시집갈까"라는 우려가 흔했고, 나 자신도 "강간당한 여자는 사랑해줄 남자 찾기가 힘들 수도 있겠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여자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당했다 할 때 사람들 얼굴에 스쳐가는 표정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그래서 나는 절대로 그 표적이 되고 싶지 않다 느꼈던 것도 기억한다. 점점 더 많은 여자들이 당당하게 성폭행 가해자를 지목하고, 직장에서의 성희롱을 호소하는 이들 역시 늘어났지만 그래도 확실하지 않았다. 내가 당한다면 나는 과연 내 주위 사람들에게 다 알리고 싶을까? 누가 나에게 어떤 성적 행위를 했다고 내놓고 말하면, 그들은 그것을 다 머릿속에서 연상하며 나는 그 수많은 이들의 뇌세포에 성적인 컨텍스트로 기억될 텐데, 난 그럴 용기가 날까.   

  

메갈의 유일한 업적은 여혐 공론화라는 이들이 있던데 나는 메갈의 제일 큰 업적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남초 사이트에서는 남혐 관련 글만 엄청나게 퍼가며 메갈을 욕했으나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오는 성폭행/성추행/성차별 경험담은 하나도 안 가져가더라. 그래서 여성들 내의 거대한 분위기 변화를 눈치 채지 못 했을 것이다.     

온갖 추잡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당한 경험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네가 여지를 줬겠지" 매도 받지 않고, "너 이제 인생 망쳤다 어떻게 시집 갈래"라는 악담/걱정도 없었다. 당했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걸 야동의 한 장면으로 떠올리는지 묘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없었고, 갑작스레 '보통'여자가 아닌 '그런 여자'로 보면서 거리를 두려는 이도 없었다. 그저 위로와 공감, 가해자를 향한 찰진 욕만 있었다.     

무서워하지마. 너만 당했다고 생각했니? 아니야. 우리도 다 당하고 있었어. 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니까 몰랐던 거야. 어떤 나쁜 놈이 성기 만졌다고 하면 남친이 더럽다고 너 버릴까 봐 말 안 했지? 난 성폭행 당한 거 말하면 시집 못 갈까봐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 삼촌이 그런 거지만 엄마는 모른 척했어. 난 선생님에게 당했어. 나보고 음란한 년이라고 해서 난 내가 진짜 그런 줄 알았어. 난 사촌 오빠가 그랬어. 난 친구 오빠가. 난 친동생에게서. 난 대학 선배에게서. 그러니까 우리 앞에서 말해. 우리가 들어줄게. 너 더럽지 않다고 말해줄게.     

메갈은 피해자들을 그렇게 다독여주고, 가해자에게 욕설을 퍼부어줬다. 어떤 남초 커뮤도 그건 퍼가지 않았으나 여초 커뮤로는 그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했던 여자들은 그제야 단체적으로 이해했을지 모른다. 정말 내 잘못 아니구나. 난 나만 더럽혀진 줄 알고, 내가 여지를 준 줄 알고, 내가 바보 같아서 당한 줄 알고, 말하면 다들 손가락질하고 피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줄 알았는데, 진짜 그 새끼가 잘못한 거구나. 말해도 되는 거구나. 나 같은 여자들 정말 많구나. 깨끗하고 순수한 여자들 사이에 더럽혀진 나 하나가 숨어 있을 게 아니었구나.     


강남역 사건 이후로 여자들이 자신이 당한 피해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 난 그 덕분이라고 믿는다. 한 번도 메갈에 들어가 보지 않은 여자라도 다른 여초 커뮤니티에서 성추행/폭행은 확실한 범죄고,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전국의 여자들이 깨어난 셈이다. 진짜 말해도 괜찮다는 거. 딴 여자들도 이해한다는 거. 우리 다 이 여혐 팽배한 사회에서 사는 거 힘들었고,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겠다고 나도 모르게 강자 입장에서 서서 다른 여자들을 '그런 여자'라 비난하기도 하고, 그럴 여지를 줬겠지 욕하면서 나는 괜찮을 거라 믿고 싶었다는 것.     

이제야 여자들이 말하기 시작하니까 이거 갑자기 뭐야 싶은가. 들어가기 힘들게 꼭꼭 막아놓은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그보다 몇 배, 몇십 배의 이야기가 오늘도 계속 올라온다. 남자들에게, 가족들에게도 하지 않는 이야기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남자들이 접하는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 위의 얼어 죽은 파리 한 마리일 것이다. 어제 글에도 "한국 직장에서 저런 성추행이 있나요" 묻는 사람들 있던데;;;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오늘도, 지금 이 시간도, 초당 수십 명 수백 명에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있다. "그런 여자" 딱지따위 니 이마빡에나 갖다붙이라고 삿대질 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다.     


결론. 

우리 연대합시다. 싸웁시다. 말하고 설치고 나댑시다. 우리 다음 세대는 "왓더퍽? 너 고소!"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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