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9일
그녀는 왜 낙태를 결심했을까. 어쩌면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었고, 한참 학업 중일 수 있겠다. 아니면 남편은 실직했고, 친정어머니는 아프실 수 있다. 아니면 원래 몸이 약해서 육아는 엄두도 못 냈을 수 있다. 어쩌면 임신 중 갑자기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고, 재정형편상 도저히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왜 피임을 안 했냐고. 남편이 콘돔을 극적으로 거부하고, 여자는 호르몬 약에 예민했을 수 있겠다. 아니면 모유 수유 중이라 임신이 안 되는 줄로 생각했거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 여자 하나만을 고려한다면, 낙태 형사처벌은 폐지되어야 한다. 친정어머니 암 투병 간병 중이고 시어머니는 안 계시고 남편도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덜컥 임신해버렸다면, 살 곳도 없다면, 그래서 낙태를 결심했다면 무슨 방법을 써서든 할 것이다. 불법이라도 할 것이고, 불법인 곳에서는 위험이 훨씬 높다. 이 기혼의 여자에게 낙태 형사 처벌은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는가? 국가는 결혼의 틀 안에서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여자에게 억지로 출산을 강요해서 무엇을 얻는가?
그녀는 왜 임신했을까. 한국에서 콘돔 거부하는 남자 엄청 많다. 그리고 예전과 같지 않게 요즘에는 연애하면 성관계를 가지는 커플들도 많다. 피임약은 호르몬제이고, 호르몬제는 부작용이 있다. 최근에 남자용 경구 피임약을 실험하다가 부작용에 중단했다던데, 그거 아주 많은 여자들이 견디고 먹는다. 우울증, 두통, 체중 증가 등등 엄청나게 종류도 많다. 그러나 이 미혼의 여자는 피임약은커녕 첫 남자친구에게 콘돔이란 말도 꺼내기 부끄러웠던 고등학생일 수 있고, 얼떨결에 강하게 밀어붙이는 선배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 여대생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직장에서 만난 동료에게 끌렸다가 폭탄주 가득한 회식 자리 이후에 실수한 여자일 수도 있고,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럭저럭 심각한 관계의 평범한 연애를 하는 여자일 수 있다. 이 모든 여성들은 지금 현재 낙태를 한다면 남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기록은 여자에게만 남는다(몇몇 남자들은 이것을 빌미로 여성을 협박한다). 이들 역시 힘든 상황에서 임신임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서든 중절을 선택할 것이고, 이것을 불법화한 곳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야매 임신중절 수술로 인한 사망률이 확 올라간다.
다른 건 다 무시하고 이들만 생각한다면 무엇이 최선일까? 낙태가 죄라는 식의 성교육은 임신한 여자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 이들의 처지만 생각한다면, 오롯이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당신은 무슨 선택을 하겠는가? 당신의 순진해 터진 딸이, 사촌 동생이, 동생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콘돔 말도 꺼내지 못했다면, 그 선배라는 놈이 술을 억지로 먹여 관계를 가졌지만 강간을 증명하기 힘들다면, 당신은 그녀에게 대한민국 출산율이 낮으니 나라를 생각하고 낳으라고 할 것인가? 몸을 함부로 굴렸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 할 것인가?
당신은 어떤 조언을 할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 형법의 요구사항은 확실하다. "(그 개 같은) 선배 동의받아야 낙태 가능함." 강간이라면 낙태가 허락될 수 있으나 강간죄를 증명하는 것은 몇 달 몇 년이고, 아이는 40주면 나온다.
피임이나 낙태를 무슨 감기약 처방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많은데, 내 장담하건대 그 어느 여자도 룰루랄라 미용실에 머리하러 가듯이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당장 임신 5주만 되도 입덧 나타나는 여자들 많다. 구토, 감정 기복, 몸 붓기, 엄청난 피로 (난 임신 첫 두 달이 제일 힘들었다. 잠이 별로 없는 편이라 하루 여섯 시간 못 자는데 이때는 열여섯 시간씩 잤다), 그 외 셀 수 없는 임신 자각증세가 있다. 몸이 급작스럽게 바뀐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후피임약도 부작용이 거세다. 그런데 5~6개월 넘어서 하는 낙태는, 임신해 본 엄마로서 확언한다. 임신 경험이 없는 당신이 가볍게 생각하는 것보다 수백 배, 수천 배 고민하고 울고 자책하다가 결정 내린다. 다섯 달이면 아이가 차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무뇌아라면? 태어나서 곧바로 죽는다면? 심각한 장애로 평생 고생할 아이라면? 이 모든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못 해본 당신이 그 여자의 몸에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도 장애아 판정 기다리면서 조마조마했던 마음 기억한다. 혹시라도 장애라면 어떻게 하지? 나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아이에게 올인할 수 있는가? 난 그때 확답을 할 수 없었고, 지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다른 이가 "쯧쯧"하면서 내 몸에, 내 인생에 권리를 행사하는 건 받아들이지 않겠다. 어떤 힘든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나의 것이어야 한다. 마음 아픔도, 그 후의 인생의 짐도, 다른 이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헌재는 낙태 형사처벌 합헌을 선언했다. 니 사정 알 거 없음. 너 형사처벌. 의사도 같이.
당신은 낙태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일 수도 있고 찬성일 수도 있다. 비난할 수도 있다. 그건 당신 자유지만 내 질문은 하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낙태를 선택하는 이들을 형사처벌 하는 것이 올바른가?
당신이라면,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이 파탄 났다면, 실직했다면, 결혼을 생각하던 남자와 관계를 가졌으나 버림받았다면, 대한민국 출산율이 낮으니 이 한 몸 희생해서 아이 낳고 키울 것인가? 남편 잘못 만나 신혼부터 얻어맞는 딸이라면, 헤어지자는 남편에게 억지 관계를 당해 임신한 친구라면, 마음이 약해 거절 잘 못하는 딸애에게 스토커처럼 달라붙어 당신 딸에게 술 먹이고 임신시켰다면 -
당신은 이들에게 "어쨌든 낳던가 아니면 형사처벌!"을 외칠 것인가? 가지기 싫고 책임 못 질 것 같고 아무런 여유 없는 이들에게 억지로 아이를 낳아라 강요하는 것이, 실제로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보육비를 보조하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가?
덧:
종교적 입장에서, 혹은 임신 초기 태아도 생명이라 봐서 반대할 수 있고, 그 반대는 존중합니다. 여아만 선별적으로 낙태하는 일이 흔한 나라에서 낙태 문제 민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 한국 법으로는 낙태는 형사 처벌되는 범죄이며, 시술시 남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콘돔 거부하는 남자는 널려 있으나 낙태가 허락되는 사유는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날 아이가 걱정되면 태어난 아이들과 열심히 키우는 부모들이나 좀 보조해주고, 지금의 거지 같은 법은 바뀌었으면 합니다.
낙태 시술의 형사처벌 폐지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