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한샘 사전의 이면에는 '강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견이 있다. 사이코가 칼 들이대고 모텔 가자면 즐겁게 갈 사람 별로 없겠지. 사이코가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술을 마셔라 해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래서 사회는 여자에게 묻는다. 왜 사이코랑 모텔 갔어? 왜 사이코랑 술 마셨어? 아니지, 멀쩡한 회사 다니는 사람이 사이코일 리가 없으니, 너도 좋아서 간 거 아니야? 아니면 말이 안 되잖아?
실상은 그렇다. 너무나도 멀쩡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너는 내가 사이코로 보이냐 술 한 잔도 같이 못 하냐."라면서 화를 낸다. 그들은 직장 선배고 상관이고 아는 친구다. 면식범이 대부분이다. 평소에 농담하고 인사하고 날씨에 대해 불평하고 점심 같이 먹고 고민도 얘기하던 이들이다. 그들의 다른 점이라면 "술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닙니다." 논리를 쓴다는 것. "여자가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관계를 했지만 강간은 아닙니다.".
뉴욕타임스에서 강간범들의 공통점 분석이 있었다[1]. 온갖 직종과 나이와 문화를 망라하는 강간범들의 특징이라면, 강제성을 띈 관계는 했지만 강간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여자가 자신을 흥분하게 했으므로 여자에게 책임이 있다 믿기도 한다. 그들은 보통 여자에게 억하심정이 있고, 강간함으로서 그녀들을 코를 꺾는다 생각하는 것.
한국 상황에도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술과 위치, 권력을 이용해서 강제성을 띈 관계를 맺었으나 그게 강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가 옷을 야하게 입어서, 같이 술을 먹어서, 웃어줘서, 카톡에 친절하게 답해서 자신을 착각하게 했고, 흥분하게 했으니 여자의 잘못도 있다고 믿는다. 역차별을 당한다 생각하고, 김치녀, 맘충 어쩌고 여성비하 발언을 하며 그런 나쁜 여자에게 강간당해라 악담한다.
거의 대부분의 강간범은 밤거리를 헤매는 사이코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어느 우위라도 이용해서 술을 먹이고 둘만이 있는 상황을 만들려 하고, 이의제기가 힘든 상황을 악용해서 여성이 원하지 않는 관계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강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보통 남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성관계를 강요할 때 여자는 싫다고 거부하고, 그러면 그는 나를 사이코 강간범으로 보냐고 윽박지른다. 그의 뇌에서 성관계를 강요하는 자신과 사이코 강간범은 완전히 다른 존재다. 이 갭을 메우지 않는 이상 강간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1] 뉴욕타임스 분석: https://www.nytimes.com/2017/10/30/health/men-rape-sexual-assaul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