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Konzerthaus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웠다. 커피 한 잔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피로가 일상이었고, 일과 삶의 경계가 희미해져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요즘 말하는 번아웃 수준의 탈진 증상은 아니었지만, 긴 휴가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워라밸, 힐링 같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이었으니, 그 때의 감성으로는 재충전 정도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재충전을 위해 난생 처음으로 2주 휴가를 결심하고 비엔나에 도착했다. 긴 휴가를 비엔나에서만 머무르며 매일 콘서트에 가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토요일 밤 비엔나에 도착하자마자 일요일 아침 예배를 겸한 빈 소년합창단의 공연을 찾아갔고, 다른 공연 소식도 찾아다녔다.
슈타츠오퍼, 뮤지크페라인, 그리고 콘체르트하우스, 이 세 곳이 비엔나 3대 공연장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마트폰이 슬슬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던 그 무렵에는 내 휴가기간에 어떤 공연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무작정 티켓 오피스를 찾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오늘 공연’이라 적힌 보드판을 향해 달려갔다. 빽빽한 이름들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가장 아래쪽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폴리니.’
인생의 여러 순간에서 단맛, 쓴맛, 참맛, 질긴맛을 음악과 함께 한 뮤지션, 아티스트를 만나는 행운이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선생님의 새로운 음반이 발매되면, 부산 남포동 국도레코드와 서울 압구정 풍월당으로 달려가 씨디를 사들고 집으로 뛰어오던 날들이 많았다. 쇼팽 콩쿨 우승한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0년에 폴리니 선생님은 쇼팽 콩쿨을 우승했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날의 연주는 쇼팽이 아니라, 모든 음악이 태어나게 한 처음의 처음, 바흐 평균율 1권.
2022년과 2023년에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내한 공연이 기획되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었다. 그리고 2025년 첫 서울 공연이 다시 잡혔다. 1942년에 태어난 폴리니 선생님은 올해 83세가 되지만, 예정된 서울 공연은 끝내 오지 못하고 2024년 3월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그날 비엔나에서 우연히 만났던 행운은, 한 예술가와의 영원한 작별이기도, 변치 않을 영원한 위로이기도 했다. RIP, Maurizio Polini (1942-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