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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굿 오피스

우리 오피스에 스며든 나이스함의 역설

조직문화 (ft. 속 터지는 사장님)

by 김홍재

한국 사회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갈망해 왔습니다. 리더십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상사나 선배는 권위적인 모습을 내려놓고 '나이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도 합니다. 상사의 질책이나 동료 간의 냉정한 피드백 대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나이스함'이 세련된 조직의 새로운 덕목으로 주목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친절하고 나이스한' 변화는 예상치 못한 역설을 낳았습니다. 조직 내에 '싫은 소리 하기 싫어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진 것입니다. 부하 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릴까 염려하며 직설적인 피드백을 피하고, 쓴소리를 해야 할 때조차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심지어는 우회적으로 '싫은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별도의 피드백 스킬을 배우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꼭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겉으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갈등을 피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죠.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친절함은 조직의 발전을 위한 솔직함 대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침묵의 '나이스한 카르텔'이 내재하고 있는 리스크는 무엇일까요?


실제로 최근 현장에서 접한 이야기입니다. 주니어 세대, 관리자 세대, 임원 세대 간의 관계는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주니어 세대는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일이 없고, 관리자 세대는 주니어 세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니 서로 '해피'한 조직 문화라고 느낀다는 것이죠. 임원들 역시 듣기 싫은 보고를 받지 않으니, 전반적인 구성원의 조직 생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이스함'은 결국 '갈등 회피 문화'로 이어졌습니다. 만연한 갈등 회피 현상 속에서 속이 타들어 가는 사람은 오직,,,,,, 사장님, 대표님뿐입니다. 활발한 토론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문제점을 함께 발견하고 해결하는 조직 문화가 사라져 가기 때문이죠.


모두가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조직 내에서 이러한 '갈등 회피'가 지나치게 심해지면 문제가 있어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침묵의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이를 방치하면 작은 문제가 언젠가 거대한 재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낳은 비극적인 사례로 2015년 폭스바겐 그룹의 '디젤게이트'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나이스함'에서 비롯된 갈등 회피를 경험하고 있지만, 역사가 깊은 유럽의 기업들 역시 '나이스한' 구성원들이 만든 '갈등 회피' 현상을 이미 겪었습니다. 당시 폭스바겐의 엔지니어들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배기가스 목표를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강한 위계질서와 높은 목표 달성 압박 속에서 '불가능하다'는 솔직한 의견을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몰래 불법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배기가스 수치를 조작하는 편법을 택했습니다. 문제점을 알고 있던 내부 구성원들의 침묵은 한때 세계 1위였던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를 추락시켰고, 수백억 달러의 벌금과 함께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이처럼 갈등을 회피하는 문화가 초래한 치명적인 결과는 폭스바겐 게이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1995년 파산한 베어링 은행의 사례는 침묵 문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세상에 처음으로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습니다. 오직 성과 우선주의가 만연했던 당시 금융업계에서, 28세의 젊은 '스타 트레이더' 닉 리슨은 성공적인 거래는 부풀려 알리고, 손실은 불법 가짜 계좌를 만들어 감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닉 리슨이 포장하여 드러내는 수익에만 집중했던 베어링 은행의 경영진과 상사들은 그 누구도 그의 성공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문제를 삼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잘 나가는 동료에게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가 숨겨온 손실은 은행 전체를 무너뜨릴 만큼 거대해졌습니다. 이는 단 한 명의 직원이 초래할 수도 있는 잠재된 문제에 대해 아무도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했던, 즉 침묵으로 동의했던 치명적인 결과였습니다. 성과 우선주의와 갈등 회피 현상이 결합한 최악의 사례이자 크게 드러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233년 역사의 영국 은행, 베어링은 싱가포르 지점의 28세 영국인 직원, 그리고 문제를 솔직하게 지적하지 않은 상사에 의해 파산에 이르렀고, 결국 네덜란드 ING은행에 단돈 1달러에 매각되었습니다.


폭스바겐과 베어링 은행의 사례는 조직 내 갈등 회피 현상이 단순히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행위를 넘어선, 치명적인 독과 같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외면하며 갈등을 회피하는 조직 문화는 비판적 사고를 방해하고, 결국 작은 문제조차 거대한 재앙으로 키우게 됩니다. 구성원들이 불편한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조직은 위기를 예방하고 더욱 견고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갈등 회피가 만연한 조직의 세 가지 부작용


1. 가짜 화합의 발생과 반복: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서로 항상 웃는 얼굴만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누구도 먼저 문제 상황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니 속으로는 불만과 불신, 의심이 쌓여갑니다.


2. 나이스한 침묵: 건설적인 비판이나 반대 의견이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로 여겨집니다. 모두가 갈등을 피하려다 보니, 중요한 문제나 잘못된 결정에 대해 아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게 됩니다.


3. 책임 회피: 성과가 부진하거나 문제가 생겨도 내 책임이 아니라며 회피하고 발뺌하려는 성향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나이스한 사람들로 가득한 조직을 만들면 겉으로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로 분위기가 바뀌어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중간 리더는 팀원들과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일할 사람이 없어지고, 경영진에게 솔직하게 보고하기도 어려워지는 등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합니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조직 생활을 통해 저도 경험했습니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 위력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앞으로 HRBP, 나이스한 조직 문화의 병폐('terminal niceness'), 그리고 회의 스킬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해결 방안을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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