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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굿 오피스

구글 프로젝트의 증명, 리버풀의 추락과 컬처 핏

역대급 투자에도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이유

by 김홍재

지난 시즌 우승팀이었던 리버풀은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이미 리그를 제패한 강철 코어를 고스란히 유지했습니다. 특히 팀의 에이스이자 레전드인 살라(Mohamed Salah)를 지켜내며 (팀 레전드 손흥민을 둘러싼 토트넘의 상황과 대비되듯) 전력 누수 없는 절대적 안정화를 이뤘습니다. 여기에 프리미어리그 역사를 통틀어 전례 없는 8,000억 원이 넘는 규모로 역대급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핵심 전력의 누수는 전혀 없었고, 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며 플로리안 비르츠, 알렉산드르 이삭 등 이미 강력한 팀에 '슈퍼 파워업'을 추가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기본이고, 트레블(Treble)까지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의 '유능한' 선수들로 팀을 채운 셈입니다.


시즌 시작 전, 대다수의 축구 전문가들은 이 역대급 투자가 디펜딩 챔피언의 전력을 압도적으로 보강했으므로, 리버풀이 손쉽게 리그를 제패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는 마치 구글이 '최고의 인재만 모으면 최고의 팀이 될 것'이라 믿었던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 초기 가설의 스포츠 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오직 자본만으로는 부족함이 없어야 할 리버풀은 리그 중위권으로 추락했으며, 최근 공식전 3경기 연속 3골 차 완패를 당하는 등 득점력과 수비 안정성 모두에서 지난 시즌의 모습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투자와 기대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의 부진은 하나의 냉혹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바로 '개인의 뛰어남'이 곧 '팀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역설을 해부하기 위해 우리는 구글이 2012년부터 수년간 진행했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의 결론에 주목해야 합니다.


누가 아닌, 어떻게


구글이 2012년부터 수년간 진행한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팀을 결정하는 요인이 팀원의 지능이나 학벌 같은 '누가(Who)'의 문제가 아니라, 팀원들이 '어떻게(How)'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팀의 규범(Team Norms)'에 달려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이 규범의 정점에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리버풀의 현 부진은 바로 이 '심리적 안전감'과 '규범'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최고 스킬과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유능한' 선수들이 기존의 '우승 공식'과 조화되지 못했고, 아르네 슬롯 감독은 이 막대한 인재를 하나의 팀으로 묶어낼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팀워크의 비가시적인 요소들이 와해되었음을 시사합니다.


1. 전술적 '심리적 안전감'의 상실


아르네 슬롯 감독은 지난 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올 시즌 역대급 거액의 신입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기존의 견고했던 승리 공식과 팀 규범이 근본적으로 교란되었습니다. 새로운 선수들의 유입은 주전 경쟁을 심화시키고 전술 구조의 불확실성을 키웠습니다. 실수가 잦아지고 패배가 반복되면서, 선수들은 이제 경기장에서 '실수를 저지를까 두려워하는' 상태에 놓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전술적 리스크 테이킹(예: 과감한 전진 패스나 오버래핑)을 질식시키고 안전한 선택만을 고수하게 만듭니다. 최고의 역량을 가진 팀원들로 구성되었음에도, 심리적 안전감이 저하되자 그들의 잠재력과 창의성은 스스로 억제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입니다.


2. 붕괴된 '신뢰성'과 '명확한 구조'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가 밝혀낸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신뢰성(Dependability)'입니다. 이는 "내 동료가 맡은 역할을 제때, 제대로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리버풀은 수비 라인에서 가장 심각한 신뢰성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트피스 실점 증가는 개인이 아닌 팀 전체의 '구조 및 명확성(Structure & Clarity)'이 흔들렸음을 의미합니다. 누가 마크하고, 누가 커버하며, 누가 소리쳐 지시할지에 대한 규범이 충돌하거나 명확하지 않을 때, 아무리 뛰어난 수비수라도 무너집니다.


3. 투자 실패가 아닌, 이식 실패: 시스템적 거부 반응


리버풀이 8천억을 투자한 행위는 분명 '개인의 뛰어난 능력'을 구매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팀은 단순히 능력 있는 개개인의 합산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리버풀의 사례는 뛰어난 개체가 기존 시스템에 유기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이식 실패'를 겪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는 단순히 최근 강조되는 '컬처핏(Culture Fit)' 문제를 넘어, 2000년대 초반 조직 문화에서 강조되던 '동화(Assimilation)' 과정 자체가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팀의 승리 규범이라는 문화적 기반이 흔들리면, 아무리 비싼 선수라도 그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습니다.


리버풀의 리더 그룹과 코칭 스태프는 당장 누구를 팔고 살지 고민하기보다, 팀원들이 두려움 없이 소통하고 전술적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핵심 동력을 재건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시즌 초중반에 불과한 만큼, 이 부진이 단순한 일시적 슬럼프에 그칠지, 아니면 인재의 무한한 투입과 냉혹한 성과 사이의 괴리가 초래한 근본적인 시스템 문제일지는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리버풀이 보여줄 행보야말로 구글 프로젝트가 던진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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