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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Feb 03. 2022

‘비건’이 존중받는 오스트리아 비건 사료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학교 조별 과제를 위해 같은 조 친구들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흔치 않은 손님 방문에 정성을 다해 카나페와 잡채, 디저트로 먹을 케이크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가 준비한 음식들을 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집을 찾은 네 명의 친구 중 두 명이 완전 채식을 실천하는 ‘비건’(Vegan)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비건 친구들은 크림이 들어간 케이크마저도 손대지 못한 채 맹물만 마시다 돌아갔다. 그제야 ‘비건 식문화’가 어떤 것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일을 겪은 뒤로 오스트리아 사회가 채식주의자를 대하는 모습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빈에서 영업 중인 음식점 대부분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따로 있었고, 맛집의 상징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빈의 식당 중 하나는 아예 채식 전문 식당이다.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비건을 위한 제품에는 표시가 따로 돼 있을 정도로 비건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식생활을 존중받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전통 요리 ‘슈니첼’을 채식 고기인 ‘세이탄’으로 만드는 식당이 있을 정도로 채식 문화가 확산돼 있다. 


비건이 사람의 식생활 중 하나로 인정받는 나라에 살다 보니 반려인으로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과연 반려견을 위해 만들어지는 ‘비건 사료’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유럽에는 다양한 종류의 비건 사료가 판매되고 있다. 조금만 찾아보면 반려견의 채식을 위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물론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반려견은 육식에 가까운 잡식동물로 여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려견도 채식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사람과 생활을 공유하는 반려견 역시 채식이 가능하고, 육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인 단백질은 다른 식물성 식재료를 통해 섭취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비건 사료를 옹호하는 이들도 무작정 식단을 전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도 채식으로 식단을 전환할 때 영양 전문가의 조언을 받듯, 반려견 역시 수의사와 상담을 통해 반려견에게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채식을 선택하더라도 단번에 사료를 바꾸는 것보다 긴 시간을 두고 동물성 사료와 양을 조절해 천천히 바꿔줄 것을 권한다. 만일, 수의사의 권고가 있다면 지체 없이 채식을 중단하라고도 권하고 있다.


반려견에게 비건 사료를 주는 게 적합한지 반려인들 사이에서도,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혹자는 채식 사료가 다른 어떤 사료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고 주장해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 수의학 박사인 우베 롬베르게(Uwe Romberger)는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의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사료가 비건 사료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에서 판매되는 사료들 중에는 100% 신선한 고기(frisch fleiß)라고 표시된 고가의 '프리미엄 사료'가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저렴한 사료는 대부분 육류 분말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소, 돼지, 닭 이외에도 말이나 칠면조 고기들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두 가지 이상의 고기가 섞인 경우도 많다. 게다가 도축되고 남은 부속물 등으로 사료를 만들기 때문에 신선한 고기가 쓰였는지도 알기 어렵다. 과연 이런 사료가 영양 면에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롬베르게 박사가 설명하는 비건 사료를 선택하는 이유는 ‘비건 사료가 우수하다’ 보다 ‘그래도 저렴한 사료를 먹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에 가깝다는 뜻이다.

물론 비건 사료가 모든 반려견에게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오스트리아 반려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반려견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채식을 시도하는 반려인들의 경험담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은 비건 사료와 일반 사료를 섞어 급여한다. 완전 비건 사료를 급여한 반려인 중에는 반려견의 피모가 그다지 좋지 않아 그만뒀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빈 수의대의 피아-글로리아 셈트(Pia-Gloria Semp) 박사는 비건 사료를 먹는 반려견 20마리와 일반 사료를 먹는 반려견 15마리를 대상으로 채식이 반려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눈에 드러나게 반려견의 건강이 나빠진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7년 이상 비건 사료를 먹어온 반려견에게서 미네랄과 비타민 등이 미세하게 부족하다는 점, 비건 사료를 먹는 반려견들이 영양제를 함께 먹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셈트 박사는 수의사로서 비건을 권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롬베르게 박사와 셈트 박사의 의견이 다소 다른 것처럼 다른 수의학자들 사이에서도 비건 사료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고기만 보면 환하게 웃음 짓는 수지를 보면서 나는 아직 비건 사료에 대해 확신을 내릴 수 없다. 필자 제공

비건이 많은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지만 수지의 산책 친구들 중 아직 ‘비건 반려견’을 보지 못했다. 궁금해서 주변 반려인들에게 물어봤다. “채식 사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그러자 “비건 사료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애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라고 답하거나, “영양이 잘 잡힌 식사를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곤 했다. 비건이 아닌 보통의 오스트리아 반려인들에게는 비건 사료가 큰 고려 대상으로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비슷하다. 사람은 자신의 사유와 의지를 바탕으로 채식을 선택한다. 하지만 반려견은 식사를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선택한다. 채식을 고민하다가도 ‘비건 사료를 급여하는 게 혹시 수지가 먹고 싶은 것을 뺏어가는 행동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앞서곤 한다. 고기라면 자다가도 부엌으로 달려오는 이 아이를 보면 그 생각은 더 강해진다. 수많은 즐길 거리를 누리는 사람도 먹는 것이 삶의 낙인데 하물며 뛰어난 후각으로 세상의 온갖 냄새를 맡으며 사는 반려견은 어떻겠는가? 그렇다고 윤리적인 고민을 아예 놓고 살 수도 없으니, 이 생각은 하면 할수록 더욱 복잡해지는 듯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지는 곁에서 신나게 고기를 뜯고 있다.

비건 사료에 대한 내 복잡한 고민을 천진하게 고기를 뜯고 있는 수지는 알고 있을까? 필자 제공


글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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