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12월은 사람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달이다. 크리스마스를 비롯해 각종 송년회로 어깨가 들썩거리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해가 떠나간다는 생각에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연말 기분을 내면서 그간 ‘글로벌 반려통신’을 통해 전한 오스트리아 소식들을 돌아봤다. 수지와 함께 살며 느낀 이 나라의 좋은 제도들이 한국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혹시 과장되거나 일방적으로 좋은 부분만 부각한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물론 동물보호법을 비롯한 각종 제도나 시민들의 인식 측면에서 오스트리아 반려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세계 최고 수준’은, 그만큼 제도가 치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의 동물 관련 법 조항은 단순히 동물에게 친화적일 뿐 아니라 법적으로 동물의 한계 또한 명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앞선 글에서 “오스트리아의 거의 모든 장소와 시설에는 반려동물 동반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 구역은 별도로 ‘반려견 금지’(Hundeverbot)라고 표시한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반려동물 천국 오스트리아가 반려동물들에게 절대 허용하지 않는 곳은 어떤 장소일까?
1. “이곳은 엄격하게 보호할 ‘문화재’입니다”
빈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꼭 찾는 명소 중 하나인 '벨베데레 궁전'은 실내·외에 반려동물의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픽사베이
빈 시내 중심에 위치한 ‘브리스톨 호텔’, ‘자허 호텔’등 고급 호텔을 비롯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단골손님이었다는 ‘카페 첸트럴’(Cafe Central),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역 케이블카와 스키장과 같은 관광명소에도 반려동물 동반은 가능하다. 이처럼 관광객이 찾는 장소에는 반려견에 대한 규제가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성, 또는 궁전(Schloss)이라는 단어가 붙는 장소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빈을 대표하는 명소라면 '쉔브룬 궁전'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등이 전시된 '클림트 박물관'이 있는 '벨베데레 궁전'을 꼽을 수 있다. 두 곳 모두 빈을 찾은 관광객들이라면 꼭 한 번은 방문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반려동물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물론 아름다운 쉔브룬 궁전을 배경으로 한가로이 꽃밭을 산책하는 반려견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름다울 것 같다. 하지만 꽃밭 주변 곳곳에 반려동물의 배설물들이 놓여있다면 어떨까? 반려견이 금지되는 몇몇의 장소(성당,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도 반려견을 품에 안고 입장하거나 실외 공간까지 한정적으로 반려견 입장을 허용하는 곳도 있지만, 성에서는 이마저도 엄격하게 입장을 통제한다.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엄과 화려함을 상징하는 장소들이기에, 유적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반려동물 동반 출입을 막는 것이다.
2. “말이 되네~” 동물 보호구역의 ‘반려동물 출입 금지’
자연공원 혹은 생태 동물원은 빈 시 외곽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파란색 선이 빈 시의 경계선이며 붉은색으로 표시한 곳이 자연공원이다. 이곳은 산책 외의 다른 행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구글 지도 캡처
‘동물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울타리를 쳐놓은 곳에서 동물을 관람하는 인공적인 동물원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 ‘티어가르텐’(Tiergarten·동물원)이라고 하면 인공적으로 조성한 동물원은 물론이고 자연 속의 생태 동물원 모두를 포함한다. ‘생태 동물원’이란 숲에 사는 동물들을 자연 그대로 보호하며 놀이터, 오솔길 등을 조성해 사람에게 개방한 곳을 말한다. 이를 티어가르텐 또는 ‘나투어 파크’(Natur Park·자연공원)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식물을 채취하거나 동물을 수렵하는 등의 행동이 금지돼 있으며 음식을 조리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화기 또한 쓸 수 없다.
자연공원, 생태 동물원이라는 이름만 보고 수지와 함께 걷기 좋은 곳이겠다 싶어 방문했지만, 반려동물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절당했다. 생태공원이라는 취지에 ‘반려동물 입장 금지’라는 방침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원 관리인에게 반려견 동반 금지에 대한 항의 섞인 이메일을 보냈다. 공원 관리자는 이에 대해 친절히 답변해줬는데, 반려동물의 출입을 막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1)반려동물이 실종될 가능성이 있다.
2)반려견의 출현이 생태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인 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내 생태 동물원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왼쪽) 가정에서 주로 생활하는 수지와 이들의 생활 환경은 엄연히 다르다. 이들을 굳이 만나게 해주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오스트리아 사회의 판단이다. 필자 제공
친절한 답변을 보고 난 뒤 나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도심에서도 움직이는 것만 보면 쫓아가려고 바쁜 수지의 성격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반려견도 동물이기에 야생동물과 어울리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겼지만, 그건 내 섣부른 판단이었다. 반려인으로 살다 보면 이와 비슷한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종종 반려인은 사람과 생활을 같이하는 ‘반려견’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반려동물의 잘못이나 실수에는 동물로서의 본성으로 이해를 구하곤 한다. 반려인들 사이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장일지 모르나, 야생이 아닌 사회에서 길러지는 반려동물이라면 사람의 기준에서 상식의 선을 지키도록 반려인이 노력해야 한다. 오스트리아가 반려견으로부터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조치는 반려견을 자연상태의 ‘동물’이라기 보다 사람 곁에 있는 ‘사회적 동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3. 위생이 필요한 구역
병원, 학교 등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실내 구역들을 말한다. 특히 빈 국립대 본관은 클림트가 직접 천장에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역사가 깊어서 거의 문화재 대접을 받고 있다. 한 가지 의외인 것은 주거공간이라고 볼 수 있는 대학 기숙사에서도 반려동물 출입을 금지한 점이다. 대부분의 호텔에서 반려동물이 허용되는 것에 반해, 빈 소재 대학 기숙사는 단 한곳을 제외하고 모든 종류의 반려동물이 금지되고 있다. 기숙사를 단순 주거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부속으로 여기고 있거나, 여러 학생들이 한 공간에서 지내는 것을 감안한 조치가 아닐까 싶다. 예외로 허용된 한 곳은 빈 수의과대학 기숙사로 전공의 특수성을 인정받은 경우다. 다만 이곳에서도 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매 분기 지정된 예방접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4. '어린이 보호구역' 역시 금지구역... 이해는 가지만 고민은 클 수밖에
어린이 놀이터는 예외 없는 반려견 출입 금지 구역이다. 오스트리아의 놀이터들은 과거 한국의 놀이터처럼 모래바닥이라서 위생과 안전을 이유로 반려동물이 드나들 수 없다. 하지만 놀이터 이외에도 유치원, 학교, 어린이 놀이 위주로 조성된 공원, 패밀리 리조트 등 어린이를 주체로 하는 시설과 공간들은 대부분 반려동물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필자의 아기와 수지가 공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린이 전용 공간에서는 위생과 안전상 이유로 반려견 출입이 통제된다. 어린이를 키우는 반려견 가족은 같이 시간을 보낼 만한 공간을 찾기가 다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필자 제공
만 1세 아기와 반려견인 수지를 함께 키우는 우리 가족에게 이 부분은 상당히 곤혹스럽다. 아기가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엔 수지가 함께 할 수 없고, 반려견 놀이구역인 훈데존(Hundzone)에서는 크고 작은 반려견들이 뛰놀기에 아이를 안고만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수지에게 아기의 존재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뺏어간 연적(?) 같은 녀석이지만, 밖에서는 아기를 끔찍이 챙기는 덕에 훈데존에서조차 다른 반려견들이 아기에게 접근한 일은 다행히 없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반려견 금지는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린아이를 함께 키우는 반려견 가족이라면 스스로 대안을 찾아야 할 듯싶다.
오스트리아에서 반려동물에게 금지되는 장소를 찾는 데 굳이 긴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생활 영역에서 반려동물에게 무엇이 허용되고 금지되는지 정확한 가이드가 있는 덕분이었다. 공동체에서 반려견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는 구성원들의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 선이 애매할 때 서로의 해석이 달라서 갈등이 발생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반려동물과의 생활이 존중받는 이유는 그 기준이 명확해서라고 여긴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한 사회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