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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Feb 03. 2022

한 쌍에 매년 100만 달러…중국의 판다외교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우람한 몸집, 동그란 얼굴에 까만 눈자위, 몸에 비해 앙증맞은 두 손으로 야금야금 대나무를 먹는 거대한 초식동물 판다는 그 특유의 귀여움 때문에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판다의 서식지는 중국이다. 중국에서 판다 밀렵꾼은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중국 정부는 희귀동물인 판다를 보호하는데 주력해왔다. 그 결과 2016년 판다는 멸종위기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못생긴 동물들이 더 빨리 멸종할 수 있다는 호주의 한 연구결과처럼, 판다가 멸종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귀여운 외모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중국 정부의 각별한 관리를 듬뿍 받고 있는 판다는 단지 동물이 아닌, 중국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를 이용해 중국 정부는 판다를 국가 간 친선의 의미를 담은 ‘선물’로 보내기도 한다. 중국의 선물을 받은 나라는 미국·영국·한국·독일·오스트리아 등 17개국으로, 18개 동물원에 오직 47마리의 판다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 중국은 17개국에 총 47마리의 판다를 선물로 보낸 상태다.

선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중국이 판다의 소유권을 완전히 넘긴 것은 아니다. 선물을 받는 나라의 동물원에 임대 형식으로 판다를 보내는 것이다. 판다를 선물 받은 나라는 중국에 매년 한 쌍에 100만 달러(약 11억7,000만원)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판다는 특정한 종류의 대나무만을 먹는데, 이 대나무 역시 중국에서 수입한다. 이러다 보니 판다 한 쌍을 동물원에서 기르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서 판다 사육을 포기하는 동물원과 국가들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임대료와 사육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판다 한 쌍을 중국으로 돌려보낸 일이 있다.

실제로 판다가 국가 이미지 개선과 경제에 가져오는 효과는 매우 크다고 한다. 판다가 중국을 대표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기에 귀엽고 친근한 판다를 통해 중국에 대한 경직된 여론을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판다를 보내면서 중국이 벌어들이는 임대료나 먹이 수입 등도 상당하지만, 판다를 전시하는 동물원의 경제 효과도 매우 크다고 한다.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 동물원은 전체 방문객의 약 80%가 판다를 보러 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중국의 판다 임대를 ‘판다 외교’라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으로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쉔브룬 동물원에도 판다가 살고 있다. 2003년 한 쌍의 판다가 쉔브룬 동물원에 온 이후 현재까지 총 5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판다의 가임기는 1년에 2~3일에 불과할 정도로 짧고 자연상태에서 번식이 어렵기 때문에 판다 가족의 탄생은 오스트리아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큰 이슈였다. 특히 2016년에는 쌍둥이 판다가 태어나 더욱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2016년 쌍둥이 출산 후 남편 판다는 자연사했고,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박제된 뒤 중국으로 송환됐다. 지난해 남은 판다의 짝이 될 다른 판다가 쉔브룬 동물원으로 보내져 현재 다시 한 쌍의 판다가 생활하고 있다.

쉔브룬 동물원에 살고 있는 700마리가 넘는 동물들 중 판다는 단연 동물원의 마스코트다. 동물원 입장권과 홍보물에는 어김없이 귀여운 판다 사진이 가장 앞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새끼 판다가 공개되던 날, 판다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새끼 쌍둥이 판다가 중국으로 송환되기 전에는 오스트리아 대통령 알렉산더 반 데어 벨렌(Alexander Van der Bellen)  내외가 동물원에 직접 방문하여 판다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판다 외교’는 정말 괜찮을 걸까? 국가 간의 교류 과정에서 동물을 선물하는 사례가 판다만의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 상태에서 판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오직 중국에서만, 그것도 쓰완성과 티베트 고산지대 등 매우 제한된 장소에서만 서식한다. 판다가 서식하는 환경을 조성하기가 그만큼 까다롭다는 뜻이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판다는 서늘한 기후의 고산지대에 서식한다. 하지만 뉴욕, 런던, 베를린, 빈 등 각국 주요 도시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판다들에게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동물원에 전시되는 다른 동물처럼, 첨단 사육시설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동물원의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일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또한 멸종위기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전 세계에 2,000여 마리에 불과한 판다는 다른 국가에 임대될 때 오직 한 쌍씩만 제공된다. 쉔브룬 동물원에서처럼 한 쌍의 판다가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해도, 임대된 판다가 낳은 새끼 역시 임대물로 간주되어 일정 기간 뒤에는 중국으로 송환된다. 외국으로 보내진 판다들의 소유권이 중국에 있는 이상, 중국이 처음 보냈던 마릿수만 동물원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쉔브룬 동물원에는 한 쌍의 판다만이 남아 있다.

살아있는 동물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임대의 형식으로 기후와 생활환경이 전혀 다른 국가에 임대하는 행위는 동물보호 관점에서 비난받을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동물보호 의식이 높다고 알려진 오스트리아에서조차 판다는 쉔브룬 동물원에서 계속 소장하고 싶은 동물로 여겨지는 듯하다. 새로운 판다의 탄생에 기뻐하고, 판다의 중국 송환에 슬퍼하고, 또 새로운 판다가 ‘배송’ 되는 것에 환호한다. 이 모든 이유는 판다가 예쁘고 귀여운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물이란 이름으로 기후도 환경도 다른 나라에서 본성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불쌍한 판다의 현실을 전하는 현지 기사는 찾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한 동물보호단체에서 동물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판다를 상품화하는 행태를 비난하기 위해 판다 탈을 쓰고 시위를 진행했다는 짧은 기사 한 줄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웃나라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시진핑 주석이 독일을 방문하며 선물한 판다를 보기 위해 하루에 1,0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동물원을 찾았다고 한다. 메르켈 총리 역시 판다를 만나기 위해 동물원을 방문하고 시진핑 주석에게 특별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몇 년 전, 쉔브룬 동물원에서 처음으로 판다를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동물원에 있는 많은 동물들 중에서도 판다 전시장에는 유독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크고 뚱뚱한 판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사람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당시엔 판다가 중국의 이익을 위해 해외에 임대되는 과정을 몰랐기에, 나도 그 귀여운 판다를 외국 땅에서 보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좋았던 감정뿐이었다.

동물원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다. 국가 간의 친선과 평화를 위해 강제 이주되는 것이 판다의 삶이라면, 어쩌면 21세기 평화의 상징은 비둘기가 아니라 판다가 가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명분이 아무리 거창하다고 한들, 살던 고향을 떠나 좁은 전시장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지내야 한다면 판다의 입장에서는 비극이 아닐까.


글·사진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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