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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Feb 03. 2022

'노숙자와 반려견'을 대하는 오스트리아 사회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빈 시내를 걷다 보면 골목마다 노숙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여느 나라와 비슷하게 노숙자는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 남루해진 옷차림으로 낮부터 술에 취해 있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시내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노숙자들은 불편하지만 존재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노숙자들을 자세히 보면 꽤 많은 노숙자들이 반려견과 함께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거리에서 반려견을 끌어안은 채 잠들어있기도 하고, 귀여운 반려견을 앞세워 구걸을 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사회는 노숙자를 사회에 복귀시켜야 할 도움의 대상으로 여긴다. 구호단체에서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장소에 의료지원을 나가기도 하고 한국처럼 길거리 무료급식도 지원한다. 오스트리아 노숙자 지원은 단순히 일회성 원조에 그치지 않는다. 노숙자들을 위한 구호시설을 제공하고 센터 안에서 심리치료, 직업교육과 직업 알선까지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숙자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하려는 노력은 노숙자의 반려동물에게도 마찬가지다. 빈에서 가장 대중적인 주거형태인 미트보눙(Mietwohnung · 임대주택) 중에는 반려동물이 허용되지 않는 곳도 더러 있다. 단체생활을 하는 곳은 더욱 엄격해 학생 기숙사는 수의대를 제외하고 반려동물이 허용되는 곳이 없을 정도다.

노숙자 구호 시설인 '성 요셉의 집'은 2018년부터 노숙자와 반려견의 동반 거주를 허용했다. 성 요셉의 집 홈페이지

하지만 노숙자에게는 다르다. 빈에서는 이례적으로 반려동물과 동반 출입이 가능한 노숙자 구호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빈 구호단체 카리타스(Caritas)에서 운영하는 성 요셉의 집(Haus St.Josef)에서는 2018년부터 노숙자와 반려동물의 동반 거주를 허용했다. 그 밖에도 포크스힐페 빈(Volkshilfe Wien)이라는 단체에서는 노숙자들의 반려견 교육을 돕고 있다.

빈 수의업무 및 동물보호부서(MA 60)에서 인가한 교육 시설에서 20시간 동안 반려견 교육을 받은 노숙자는 빈 시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에 반려견과 출입할 수도 있다. 빈 대학 수의학과에서도 노숙자 반려견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실시하고 '동물의 친구들'(Animal freinds)이라는 동물보호단체에서도 '노숙자 프로젝트 빈 프라터슈테른'(Obdachlosen-Projekt Wien Praterstern)이라는 구호 아래 노숙자 반려동물 구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회는 노숙자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용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보호하고 있는 동물들에게도 손을 뻗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학생 기숙사에서조차 허용되지 않는 반려동물과 동거를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노숙자와 반려견 둘을 끊어낼 수 없는 가족과 같은 관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사회는 어떤 계기로 노숙자로도 모자라 노숙자가 키우는 반려견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인권단체 어거스틴(Augustin)에서 인터뷰한 한 노숙자 사연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한 노숙자는 2015년 갑작스럽게 가족이 사망하면서 그가 키우던 반려견을 데리고 살게 됐다. 어거스틴 홈페이지

이 노숙자는 2015년 가족 중 한 명이 사망하면서 그 집에서 키우던 반려견을 데려오게 되었다. 당시 그는 이미 노숙을 하고 있었지만, 유일한 가족의 반려견이었기에 자신이 돌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 노숙자 쉼터에선 동물 출입이 금지돼 반려견도 함께 거리 생활을 하게 됐다.

값싼 숙박시설도 하루에 55유로(약 7만2,000원)였다. 그 비용을 노숙자가 감당할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개와 함께 들어갈 구호 시설도 없었다. 반려견을 포기한다면 다른 구호시설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반려견과 함께 하는 생활을 택했다. 자신에게 온 이상, 반려견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싶었고, 반려견에게 버려지는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그는 빈 시민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개와 함께 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 반려견과 함께 하는 노숙자들을 너무 욕하지는 말아 주세요.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듯 반려견이 사람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들은 분명하다. 정서적 유대감, 심리적 안정, 심지어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람이 반려견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안락한 잠자리, 영양 있는 음식,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빈의 사회 구호단체들이 노숙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으려는 것과 별개로 빈 시민 개개인들이 노숙자에 갖고 있는 인상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는 노숙자들을 무책임한 반려인으로 여기는 시선이 더 강한 듯하다.

예전에 살던 동네 공원엔 언제나 많은 노숙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 중 한 할아버지가 수지와 비슷한 나이의 반려견을 데리고 있었다.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모습과 달리, 할아버지는 친절하고 인정도 많은 분이었는데 특히나 수지를 너무나 귀여워했다.

할아버지의 반려견 ‘루빅’도 여느 반려견과 다를 바 없이 활발하고 명랑한 아이였다. 그 해 여름과 가을, 수지와 루빅은 아주 잘 어울려 놀곤 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노숙자들 발걸음이 뜸해진다. 어딘가에서 추위를 피해야 해서 길거리에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을 때, 공원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혼자였다.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만난 수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루빅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노숙자 반려견들은 목걸이는 있었도 목줄은 매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종종 목줄 없이 혼자 떠돌다가 주인에게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 곁을 떠났던 루빅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수지를 쓰다듬으며 한참을 울었다.

노숙자 할아버지에게서 반려견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는 있었다. 그런데, 반려인과 함께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거리 생활이 반려견에게도 최선인 삶일까. 미국의 유명 반려견 훈련사 시저 밀란은 노숙자의 반려견이야말로 개에게는 최고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호기심을 충족하고,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반려인과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그가 바라본 노숙자와 반려견의 삶이다.

하지만 시저 밀란의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 반려견에게 개로서 본능적인 생리를 충족시켜주는 것만이 최고의 환경일까. 반려견에게 산책이 즐거운 이유는 ‘돌아올 집’이 있어서는 아닐까. 정신없이 종일 바깥바람에 즐거워하면서도 어느 정도 산책한 후엔 스스로 집으로 돌아오는 수지를 보면, 반려견에게도 안정감이란 아주 중요한 가치인듯하다.

문제는 노숙자 문제도, 노숙자와 함께 사는 개의 삶도 모두 오스트리아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내가 노숙자와 개가 함께 사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 그들에게서 개를 뺏어올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최선은 빈 시와 구호단체가 마련해주는 ‘동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5년 난데없이 반려견과 함께 살게 된 그 노숙자는 그 이후 반려견 동반이 허용된 구호 시설에 들어갔을까? 그랬다면 그는 꽤 좋은 반려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갑자기 삶에 들어온 반려견을 포기하지 않고 노숙을 택한 그는 집은 없어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가득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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